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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표 사이의 침묵처럼

기자명 법보신문
아름다운 음악, 음표-쉼표의 조화
올바른 충고도 적당한 때 가려야


여름 방학을 맞아 은사 스님이 계신 뉴욕의 절로 잠시 돌아 왔다. 새벽에 일어나 도량석을 하려고 나와 보니 커다란 보름달님이 하늘 중턱에서 웃고 계신다. 세상이 깨어나기 전, 이 신성한 시간에 달빛을 맞으며 치는 목탁 소리는 내 마음을 보다 밝고 고요한 의식 상태로 깨어나게 한다. 마치 먼 길을 떠났다가 마음의 고향을 찾아 돌아가는 느낌이다.

어제는 뉴욕 맨하턴 링컨 센터에서 하는 클래식 콘서트에 다녀 올 기회가 있었다. 여름 한달 동안 링컨 센터에서는 거의 매일 저녁 모차르트 음악을 주로 하는 콘서트 시리즈 (Mostly Mozart Series)가 열린다. 평소에 CD로만 즐겨 듣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생생한 라이브 공연으로 직접 듣게 된다니 기대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는 더욱 더 모차르트가 좋아진다. 아마도 그의 음악이 가지고 있는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형식과 자연스러운 흐름, 동심에 찬 맑은 화음 때문인 것 같다.

가장 싼 티켓을 사다 보니 무대 위에 임시로 설치된 의자에 앉게 되었는데, 운이 좋게도 오케스트라 바로 오른쪽 뒷자리였다. 지휘자의 얼굴은 물론 연주자 앞에 놓인 악보 음계까지도 보였다. 연주가 시작이 되자 각종 악기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선율이 무대 위로 총천연색 빛깔의 바람이 되어 관객의 귀와 눈과 몸을 휘감고 스쳐지나간다. 또한 지휘자의 미세한 손끝 떨림과 다양한 얼굴 표정은 각종 악기들과 밀고 당기는 한편의 춤을 추는 듯 했다. 바이올린 협주곡의 솔로는 유명한 유태계 연주자 길 샤함(Gil Shaham)이 맡았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명쾌하면서도 맑은지 마치 내 영혼이 그의 음악으로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사실 음악이 아름다운 것은 음표와 음표 사이에 있는 거리감과 음표들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쉼표 때문이다. 음표들이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그 공간 사이로 화음을 이루는 것이고, 음표 사이로 쉬어 주는 침묵이 있기에 음표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첼리스트 요요마(Yoyoma)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가 스스로 만족할 만한 연주는 본인의 의식이 깊은 침묵과 맞닿은 후에 나오는 소리란다. 그래서 그는 침묵의 공간으로 의식을 몰아넣기 위해 의도적으로 숨을 다 몰아 내쉬고 나서 숨이 끊어진 그 상태에서 첼로의 현을 켠다고 한다. 이러한 법칙은 비단 음악에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침묵의 시간을 통해 정화되지 않은 채 하는 말들은 번뇌 망상에 사로잡힌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마구 떠들어 대는 것에 불과하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상대방에게 달라붙어 너무 자주 쉬지 않고 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그 소리를 못 듣게 만든다. 한마디라도 도움이 되는 말을 하려면 아무리 옳은 충고라도 적당한 때를 기다려 나의 말이 상대방과 좋은 화음을 일으킬 수 있을 순간에 해야 하는 법이다.

공연을 보고 절로 돌아와 보니 절 마당에는 반딧불이 가득 했다. 반딧불의 수컷은 평생 한번 암컷과 사랑을 맺기 전에 꼬리의 빛을 발한다고 한다. 그렇게 소중한 불빛이 셀 수도 없을 만큼 허공 가득 하니 참으로 경이롭고 감사할 따름이다. 하늘을 보니 달이 구름 사이로 은은히 그의 빛을 전한다. 선선해진 저녁 바람이 어느덧 여름이 또 가고 있음을 나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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