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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이 내 자성 [br]행복해지려면 염불하세요

기자명 법보신문

염불 수행 이끄는 경주 미타사 조실 법 장 스님

‘사람의 목숨은 바람 앞의 촛불과 같아서 그대로 머물기 어려우며 몸은 부싯돌의 불과 같거늘 어찌 장구(長久)할 수 있겠는가’

단청빛 어여쁜 경주 톨게이트를 지나 미타사가 있는 내남면 망성리를 향해 나아갔다. 물어물어 마침내 찾아낸 이정표. 허름한 팻말이 일러주는 대로 짙은 먹구름 사이로 연두 햇볕 일렁이는 소롯길을 따라 올랐다. 드디어 미타사다. 빽빽한 대나무 숲이 휘감고 있는 이 절은 마치 둥지에 살포시 안겨있는 새알 같은 형세다.

한갓진 이곳에 염불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것은 미타사 조실 법장 스님이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출가 후 줄곧 염불에만 전념해 온 수행자로 미타만일회를 결성해 21년째 이끌고 있기도 하다. 스님의 일과는 수행으로 시작해서 수행으로 끝난다. 새벽 4시부터 시작해 밤 10시 취침에 들기까지 늘 ‘나무아미타불’을 입에 달고 산다. 이런 까닭에 미타사를 찾는 사람들은 항상 스님의 수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님을 보면서 스스로의 나태심을 경책하고 수행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는 게 이곳을 찾는 불자들의 말이다.

염불 전념하려 출가 선택

스님은 세수로 고희를 넘겼건만 구도열정만은 그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스님의 정토법문은 머릿속 이해를 넘어서 가슴을 뒤흔드는 묘한 감동이 있다.

“무지 몽매, 암흑천지, 눈감고 걷는 세상, 제 발부리에 제가 걸려 코 깨지고 머리 터지면서도 영문을 몰라 길가의 돌멩이 탓하다가 그렇게 무명 속에 한 세상 헛매 맞고 가는 겁니다. 아는 게 많아 분별을 잘 하지만 정말 행복해지는 방법은 모르지요.”

스님은 자주 외출을 한다. 법문을 청해 오는 곳이 있으면 어디건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불연을 맺기를 발원하면서 남단 제주도에서 북녘 땅이 보이는 연평도까지 늘 길을 떠난다. 그 세월이 벌써 20여 년에 이르다보니 우리 땅 구석구석 스님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스님은 늦깎이 출가자다. 직업군인으로 공군에서 특수임무를 수행하던 스님은 주변의 숱한 만류를 뿌리치고 출가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우연히 접했던 원효대사의 삶과 사상이 기존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원효대사의 『무량수경종요』는 정토가 마음 약하고 근기 낮은 사람들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 정말 있다는 확신을 갖게 했다.

“여래장이 있는 나와 아미타불이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여래장은 말 그대로 업장이라는 곳집에, 또 번뇌라는 포승줄로 꽁꽁 묶여 있습니다. 이것을 끊어내면 내가 곧 아미타부처님이 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바로 염불이었던 거지요.”

스님은 출가자란 수행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출가 전 그만큼 굳은 각오가 필요했고 이에 스님은 독한 신심의 굴레에 자신을 가두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결행한 게 일주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합장한 채 서서 염불하는 수행. 이걸 못해낸다면 출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결연한 의지와는 달리 채 하루도 지나기 전에 206개의 뼈마디 하나하나가 모두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차라리 정진하다 여기서 죽어버리자는 생각으로 밀고나갔다. 해가 뜨고 지기를 반복했고 나중에는 몽롱해 밤낮의 구분조차 어려웠다.

천리길 마다 않고 20년째 전법

그렇게 일주일을 견뎌낸 뒤에야 비로소 산문을 향했다. 점심이 지나면 음식을 일체 금하는 오후불식을 철저하게 지킨 것도 이 때부터다. 스님의 마음은 온통 염불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수산 스님이었다. 수산 스님은 평생을 염불 수행으로 일관하면서 정토신앙의 널린 알린 분으로 철저히 계율을 지켰던 수행자의 사표였다.

몇 해 동안 수산 스님에게서 염불에 대한 이론과 수행방법을 공부한 스님은 긴 만행에 나섰다. 이 곳 저 곳 산천을 떠돌며 염불로 신심을 다져나갔다. 그렇게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던 중 발길이 닿은 곳이 지금의 경주 미타사다. 스님은 옛날 절터였던 이곳에 슬레이트를 올려 도량을 삼아 염불수행에 매진했다.

그러나 모든 수행이 그렇듯 염불 또한 쉽지 않았다. 삼매에 들듯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번뇌가 밀려오는 일이 반복됐다. 밤을 새워 용맹정진 해도 소용없었다. 이 무렵 절망의 밑바닥에서 만난 분이 중국의 관정법사다. 그는 1967년 10월 2일 중국 복건성 덕화현 미륵동굴에서 선정에 들어 6년 5개월간 극락세계를 다녀오신 분으로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법장 스님은 관정법사로부터 정토선(淨土禪)과 ‘나무아미타불’에 리듬을 넣어 반복하는 이회염불법을 익혀 수행했다. 스님은 밝은 목소리로 천천히 염불하며 귀로 들으려 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몸 안에서 저절로 염불함이 느껴졌다. 또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 염불함에 귀 기울이되 소리를 내지 않았고 그 다음부터는 돌아다니거나 앉거나 누워있거나 항상 귀를 기울여 염불소리를 들으려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동적으로 염불이 됐고 그에 따라 모든 생각은 ‘나무아미타불’ 일념에 귀착됐다. 비로소 스님은 번민의 껍질을 다 벗어버리고 그윽 미묘한 안락의 상태에 들 수 있었다.

<사진설명>법장 큰스님이 상주하는 미타사내 법당.

“염불이 익숙해져서 마음속에서 스스로 염불하게 될 때 몸 안에서 자동적으로 염불을 외우게 됩니다. 이것이 오래되면 마음 속 잡념, 망상을 흡수하고 점령하고, 개조하고, 세척하고, 정화하고, 통일되게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이 한 마디의 부처님 명호가 마음 속 만병을 치료하고, 모든 망상과 업장, 시비, 허망한 것들을 한 순간에 쓸어 버려 법신으로 변화시키게 됩니다.”

미타만일회 결성 21년째 이끌어

스님은 초심자들의 경우 하루 2~3시간가량 매일 염불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 보통 한 달이면 마음의 평안함을 느끼고, 3개월이면 즐겁고 유쾌하며, 8개월이면 마음이 맑아져 잡념이 극히 적어지고 1년이 넘어서면 마음이 허공처럼 고요해져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세계도 볼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조건으로 스님이 무엇보다 강조하는 게 바로 정성과 성실함이다.

“고통과 불행을 숙명처럼 껴안고 살아가는 중생들은 무지의 어둠에 덮여있기 때문입니다. 중생의 존재는 탐욕과 아집이며 번뇌와 무지의 덩어리입니다. 아미타불은 어둠 속 중생들에게 비추는 한 줄기 광명과 같습니다. 여러분 함께 염불하십시다.”

스님의 맑은 미소가 대숲에 일렁이는 바람만큼이나 싱그럽다. 054)745-6506

경주=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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