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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無常)의 도리 일깨워준 한국축구”

기자명 송위지
  • 기고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월드컵에 관련한 선교내용에 부쳐

월드컵의 열기가 나라를 휩쓸고 있다. 그 동안 흘렸던 땀의 결실들이 하나하나 산물이 되어 나오고 있다. 월드컵 최초의 승리에서부터 강팀이라고 하는 국가들을 연달아 이기고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즐거움 속에 가슴속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아쉬움이 생겨난다.

1997년 가을 그때도 월드컵의 열기는 대단했었다. 예선에서 승승장구하던 한국팀. 그 연승의 이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차범근 감독이 경기도중 기독교식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모 TV 방송에서 여과 없이 자주 방영하였고 이에 철학자 김용옥은 ‘기도는 골방에서 하렸다’라는 제목으로 모 일간지에 글을 쓴 것이 발단이 되었다. 이 글은 즉시 차범근 감독의 반론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김용옥과 그의 글을 실은 신문은 한동안 기독교인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김용옥과 그 신문이 아니다. 기독교 선교를 표방하는 국민일보에서 그 논쟁을 이어 받아 일방적으로 동일 신앙인의 옹호에 나선 것이었다. 그 신문은 선교 뉴스란을 통해 차범근 감독을 어려운 해외 선수 생활을 극복한 신앙인으로 칭송하였으며 같은 해 11월 3일자에는 서울대 미대 김병종 교수가 나서 당시의 월드컵 예선에서 한국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자 ‘이번 축구 경기들이 여호수아의 성전’ ‘필드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번번이 우리편 골포스트를 맞고 퉁겨져 나가는 상대편 볼’ ‘축구 경기 이면의 그 신비한 흐름과 힘’ 그리고 ‘어떤 시비와 논란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영적(靈的)인 좥차범근식 축구좦만은 흔들림 없이 이어지기 바랍니다’라는 말로 차범근 축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당시의 성적이 괜찮았던 축구와 기독교를 결부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8개월 후 프랑스로 건너간 차범근 감독은 성적이 문제가 되어 중도하차 하게 되었고 김병종 교수가 말했던 ‘축구 경기 이면의 그 신비한 흐름과 힘’은 어찌되었는지 한국팀은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귀국했다. 운동 경기 그것도 월드컵 같이 중요한 경기일수록 자신의 신앙의 대상에게 무언가 의지하려는 것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경기에서 이기고 지고의 문제는 그간에 흘린 땀의 내용과 질에 의해서 판가름 나는 것이다. 감독의 기도는 좋은 결과를 구할 수 있는 요소의 하나일 따름임에도 불구하고 그 감독이 믿는 종교를 내세워 그 종교의 우월성을 주장하려 한다면 그것은 특정 종교의 소아적이고 배타적인 신행 형태를 나타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4년. 작금의 한국 축구가 보여주고 있는 괄목할만한 성장에 대한 바른 평가는 신의 섭리가 아니라 무상(無常, anicca)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과거에는 못해서 예선 통과도 힘들었거나 아니면 본선에 가서도 지리멸렬했던 팀이 뼈를 깎는 노력의 결과로 좋은 성적을 내는 모습에서 진정한 무상의 도리를 본다. 어떤 이는 무상의 도리를 흠집내며 불교를 폄하 하려한다. 하지만 무상은 결코 기분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성적이 열등했던 학생이 노력해서 우수해지는 것도 무상이요 오늘의 한국 축구처럼 그 동안의 부진을 땀의 결정에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라는 인자를 더하여 하나의 강자로 우뚝 서는 것 그것도 무상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무상으로 충분히 설명되는 현재의 한국 축구의 상황을 신의 섭리로는 설명할 수 없다. 만일 신의 섭리로 설명하기를 고집한다면 한국전을 앞두고 미사를 드렸던 이탈리아 팀에 대해 신의 섭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번에 한국팀에게 패했던 팀들도 분발한다면 한국을 다시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무상의 도리이다.

진정으로 거짓없는 무상의 도리를 보면서 소위 사회 지도층에 있다는 분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다. 그대들이 힘을 내세워서 불공정하게 얻은 각종 이권에 대한 개입과 정치적 결탁과 패거리주의를 통해서 챙긴 각종 부도덕함이 어줍지 않은 신의 섭리 앞에서는 용인될지 모르나 무상이라는 진리 앞에서는 영원하지 못할 것을 아시라고. 그저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축구의 순위에 얽매여 한국 축구팀에게 혼쭐나는 오만한 팀들과 그대들의 얼굴이 동시에 지나간다.

무상의 도리! 삶의 올바른 설명이다. 월드컵 한국팀의 약진이라는 무상의 도리를 보며 다시 한번 부처님 말씀의 정확함을 확인하게 된다.



송위지 박사(한국외대 인문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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