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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편양언기의 『편양당집』 중에서

기자명 법보신문

불이법문 안에 성속이 어디 있으랴

옛날 마조가 한 번 할(喝)을 하자 백장은 귀가 먹었고, 황벽은 혀를 내둘렀다. 이 한 번의 할은 곧 염화의 소식이요, 또 달마가 처음 면목으로서 즉 공겁(空劫)의 이전과 부모가 낳기 전의 소식이다. 모든 불조의 기묘한 언구와 백천의 공안과 갖가지 방편은 여기에서 나왔다. 은산철벽이라 발붙일 곳이 없고, 전광석화라 헤아림을 용납하지 않나니 이 교외별전의 선지(禪旨)가 바로 경절문이다.

교(敎)에는 흔히 차별이 있고 부처님이 설법하신 순서에 따라 이것을 화엄, 아함, 방등, 법화로 구분한다. 그러나 마땅히 근기에는 차별이 있지만 법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만일 뛰어난 근기와 큰 지혜라면 아함을 듣고도 곧 정각을 이룰 것이요, 작은 근기와 얕은 지혜라면 화엄을 듣고도 하늘 끝으로 달아날 것이다.

선문에서는 교를 빌어 종지를 밝히는 데 이른바 성(性), 상(相), 공(空)의 3종이다. 이치의 길과 말의 길에 있어서, 그것을 듣고 이해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돈문(圓頓門)의 사구(死句)가 되나니, 이것은 의리선(義理禪)이요, 격외선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도 일정한 뜻이 없는 것이요, 다만 그 당자의 기변에 있는 것이다. 만일 말에 의해 실수하면 염화미소도 다 캐캐묵은 말에 떨어질 것이요, 만일 마음으로 얻으면 거칠고 고운 말이 다 실상을 말하는 것이다.

범부는 생사를 보고 이승(二乘)은 열반을 본다.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나와 온갖 바른 법을 말씀하시는 것은 다만 그 생사와 열반의 두 가지 그릇된 견해를 제도하려는 것뿐이요 따로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원돈문의 공부는 한 신령스런 심성은 본래 청정하며 원래 번뇌가 없는 것임을 돌이켜 비추어보아 만일 경계를 당해 분별하는 마음이 생길 때는 곧 그 분별이 일어나기 전을 향해 그것을 추궁하되 ‘이 마음은 어디서 일어나는가?’하라. 만일 그 일어나는 곳을 추궁하되 얻지 못하면 마음이 답답해 질 것이니 그것은 좋은 소식이다. 부디 놓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염불문의 공부는 다니거나 섰거나 앉았거나 누웠거나 항상 서방을 향하여 존안(尊顔)을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잊지 않으면 목숨을 마칠 때에는 아미타불이 상연대(上蓮臺)로 영접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음이 곧 육도만법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떠나 부처나 육도, 선악의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목숨을 마칠 때에 부처의 경계가 앞에 나타남을 보더라도 반가워하는 마음이 없고, 지옥의 경계가 앞에 나타남을 보더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어, 마음과 경계가 일체가 되면 이것이 바로 불이(不二)이니, 불이법문 안에 무슨 범부와 성인, 선과 악의 차별이 있겠는가? 이렇게 관찰하여 미혹하지 않으면 생사의 악마가 어디서 그를 붙잡을 수 있겠는가? 이 또한 도인이 악마를 제어하는 긴요한 가르침이니 배우는 자들은 부디 여기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편양언기는?

편양언기(鞭羊彦機, 1581~1644)은 안성에서 태어나 11세에 청허 스님의 제자인 현빈에게서 계를 받았다. 이후 금강산에 머물며 교학을 익히고 그러는 한편으로는 참선을 닦았다.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 묘향산 서산대사의 회상에 참석해 수행하며 그의 법을 이었고 중생교화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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