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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현각 『증도가』 ④

기자명 법보신문

비난하는 자가 바로 나의 선지식

“빈궁한 부처님의 제자, 입으로 가난하다고는 하지만 몸은 가난해도 도는 가난하지가 않다. 가난하여 몸은 언제나 누더기를 걸쳐도, 도를 얻은 즉 마음에 무가(無價)의 보배를 간직하고 있다.”

‘절학무인한도인’이 여기서는 ‘부처님의 가난한 제자(窮釋子)’다. 그는 가난하게 살지만 가난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값어치를 알 수 없는 여래장 즉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가의 보배, 아무리 사용해도 다하지 않고 중생을 이롭게 할 때는 마지막까지 아끼지 않는다.” 불성의 작용은 광대무변하며 또한 중생에 대한 이타행은 끝이 없다는 것. 가난한 제자의 이 같은 빛남은, “삼신(三身)과 사지(四智)가 몸에 원만하고 여덟 가지 해탈과 여섯 가지 신통이 마음에 찍혀 있기 때문이다.” 도인은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과 분별지가 전환된 네 가지 지혜, 즉 평등한 성품, 자각으로서의 관찰, 어떠한 일도 성취, 거울 같은 지혜가 갖추어진 것이다. 또한 수행에 의해 점차 여덟 단계로 단련되어 가는 경지와 천안, 천이, 타심, 숙명, 신족, 누진 등의 신통력을 지닌 것이다. 이처럼 해탈과 신통으로 날인된 도인은 삼승사과해탈승(三乘四果解脫僧)의 여여한 모습으로 중생에게 손을 내미는 것[垂手]이다.

“상근기는 한 번에 모든 것을 결택하지만, 중하근기는 들어도 들어도 믿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때묻은 옷을 벗어 버릴 뿐, 누가 밖으로 정진을 자랑할까.” 아직 부처를 밖에서 구하는 수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의심만을 더하여 더욱 멀어져 갈 뿐이라는 것이다. 자아가 공하여 선정삼매로서 평등성지를 체득하는 것이 전부이지, 밖으로 부처를 구해서는 안된다는 것. 육조는 ‘다만 견성을 논할 일이지 선정 해탈을 논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다른 이의 비방에 맡기고 다른 이의 비난에 맡겨두라. 불로 하늘을 태운다 해도 스스로만 피곤할 뿐. 내가 듣는 것도 잠시 감로를 마시는 듯 하며 녹아서 홀연히 부사의 경계에 든다.” 참된 도인에게는 나쁜 말, 비난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상관치 말라는 것. 비방하는 자가 도리어 피곤할 뿐이라는 것이다. ‘감로’란 ‘하늘에서 내려온 양약’이다. 이같이 다른 이의 나쁜 말을 듣는 것은 양약을 마신다고 생각하여 참고 견디면 홀연히 부사의(不思議)한 경계, 즉 여래지(如來地)에 든다고 하는 것이다.

“나쁜 말은 공덕이 된다고 생각하면 이는 바로 나의 선지식이 된다. 비방으로 원한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데 어찌 무생의 자비나 인욕의 힘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비난하는 자, 곧 나의 선지식이 된다는 것. 부처님은 제자들을 ‘착한 친구(善友)’라고 하셨다. 이것이 곧 ‘선지식’이다. 즉 ‘자신의 일을 잘 알아주는 친구’라는 의미다. 비방한다는 것은 나를 위해서 라고 생각하는 것. 무생의 생으로서 사는 도인은 자비심과 인욕바라밀행을 일부러 표명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종지에도 통하고 해설에도 통하니 선정과 지혜가 뚜렷이 밝아 공의 이치에 걸리지 않는다.” ‘정혜원명(定慧圓明)’하여 종지나 언설에 막힘이 없다는 것이다. 정혜일등(定慧一等)은 육조선의 진수다. 이러한 도는 “비단 나만이 달성한 것이 아니라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의 무수한 부처님들도 모두 체득하신 바다”라고 하였다. 현각은 스스로 여래선을 이행한 남종선의 계승자임을 뚜렷이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사자의 포효 같은 두려움이 없는 교설, 뭇 짐승은 그것을 듣고 모두 뇌가 파열한다. 코끼리는 분주히 달아나 위엄을 잃고 천룡은 조용히 듣고 기뻐한다.”
『임제록』에도 ‘사자가 포효하면 들짐승들은 놀라 도망간다.’고 했다. 현각의 종통 설통에 아상만에 빠진 자들의 허둥거림을 의미한다. 우바새계경에 ‘항하를, 토끼, 말, 코끼리가 함께 건너는데, 토끼는 발을 바닥에 딛지 않고 물에 떠가고, 말은 디딜 때도 딛지 않을 때도 있으며, 코끼리는 바닥을 디디며 걷는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근기에 따른 수행에 대한 교설이다. 사자후를 들으면 향상(香象)인 보살마저 달아나 위엄을 잃지만 천룡은 듣고 환희한다는 것이다. 당시 선종계에서의 현각 자신의 입장을 명료히 밝힌 내용이다.

혜원 스님(동국대 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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