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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평양 정릉사-광법사 [하]

기자명 이학종

고구려 무덤벽화 단청 그대로 재현

옥류관 냉면 맛의 여운을 만끽하면서 광법사(廣法寺)로 발길을 재촉한다. 광법사는 지난 90년 북한이 새롭게 복원한 절이라고 해서 남쪽 불교계에서도 관심을 끌었던 절이다.

당시는 북한에서 절을 복원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던 기억이 남아 있던 터라, 광법사로 향하는 내 마음속엔 약간의 설렘이 포함돼 있다.

90년 복원된 국보사찰

광법사. 국보 제164호로 지정될 정도로 북한에서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찰이다. 지금도 외국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설사 그들이 불교관련 인사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찾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평양에 소재한 고구려 시기 창건 주요사찰은 영명사, 금강사, 광법사, 법운암, 정릉사 등 다섯 곳인데, 현재는 광법사, 법운암, 정릉사가 복원돼 남아 있다.

일행을 태운 승합차가 광법사 앞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지 수덕(修德) 스님이 벌써 알고 마중을 나와 있다. 그동안 남쪽에서 온 불자들을 적잖이 만난 탓인지 표정이나 몸짓이 자연스럽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참배를 위해 대웅전 안으로 들어갔다.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후불탱화가 불상보다 더 크고 웅장하게 그려져 있다. 불상은 가금을 사용해 개금한 탓으로 황금빛은 아니지만, 그나마 북한의 다른 절에서 본 불상보다는 밝은 편이다. 조성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 세월의 이끼를 덜 탄 때문이리라.

거대한 당간지주 천년세월 머금고

모란봉 영명사터 무상도리 일깨워

그래서 그런지, 광법사의 모든 것들이 풋풋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검은색 톤의 대웅전 외양은 물론이려니와, 8각5층 석탑도 채 석공의 체취가 지워지지 않은 듯하다. 꽃문의 문양도 새것의 느낌이 완연하고, 말끔히 정비된 도량의 마당과 뜰 역시 갓 출시된 신제품을 보는 듯하다. 오랜 고정관념 때문인가.

왠지 사찰이란 고색이 창연해야 어울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생경함도 천년 세월의 영욕을 머금은 당간지주와 탑비가 있어 훌쩍 사라져 버린다. 익산 미륵사터의 그것만큼이나 웅장한 당간지주는 광법사의 가치를 알려주고도 남음이 있다.

광법사는 고구려에 처음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창건한 절로 알려져 있다. 평양 대성산에 있던 십여 개소의 절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다고 한다. 광법사 사적비에는 보광전, 명부전, 칠성당, 삼일암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여러 번 재해를 입었으며 그때마다 다시 복구되곤 했는데, 사적비에 따르면 2층 대웅전, 동서 선승당, 동서 상실, 약사전, 십왕전, 판전, 천왕문, 조계문, 그리고 종을 매달았던 진여문 등으로 그 구성이 고착되어 그중의 일부가 근세기까지 내려왔다. 그러다가 지난 1952년 7월 한국전쟁 당시 폭격에 의해 전부 파괴됐다.

8각탑도 전형적인 고구려 양식

행정구역상으로는 평양시 대성동 구역 대성동의 대성산성 내에 위치하고 있다. 대성산은 높이 270미터 정도로 서울의 남산에 비교되는 야트막한 산이다. 광법사는 1990년 원상대로 복원하였는데 고구려의 양식에 따라 8각5층탑을 복원했다. 단청은 금단청을 입히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는데, 꽃과 기하학적 문양을 서로 연결시켜 비단무늬를 짜 놓은 모양이 특이하다.

옆에 있던 차금철 스님에게 '단청 문양이 색다른 것 같다'고 물으니, '고구려때 지어진 사찰이라 고구려 무덤벽화에서 발견된 단청의 모양을 본 떠서 입혔다'고 설명한다.

무덤 속 벽화에 남아 있던 옛 고구려의 단청문양이 20세기 말 후손들에 의해 재현된 것이니 이곳의 단청은 여느 단청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법당 앞의 8각5층 석탑도 전형적인 고구려의 석탑형식을 충실히 따랐다. 고구려의 사찰을 재현하기 위해 나름대로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현재의 광법사는 2층지붕 구조로 지은 대웅전과 동서 승당(僧堂)에 해탈문, 천왕문으로 단출하게 구성되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12미터), 측면 3칸(9.6미터)으로 된 건물인데 가운데 칸들이 넓고 양 옆의 칸들은 좁다. 1층 앞면에는 꽃살문들을 달았는데, 그 조각솜씨나 색채의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나름대로 정성껏 꽃문을 만들고 장엄을 했으니 그 돈독한 마음이야 빠짐이 있으랴.

대웅전의 두공은 1,2층이 다 외3포 내5포로 되어 있고 그 위에 합각지붕을 얹었다. 건물 내부는 고주를 높이 세워 2층까지 시원하게 틔웠다. 해탈문과 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 2익공 겹처마 배집 형식을 하고 있다. 이 문들은 가운데 칸을 통로로 하고 그 좌우 칸들에는 각각 문수, 보현보살과 사천왕상을 배치했다. 그 밖의 동서 승당들은 툇마루가 있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단익공 겹처마 배집들이다.

새롭게 복원한 광법사의 전각과 탑은 사찰의 옛 영화를 보여주는 웅장한 규모의 당간지주, 탑비들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명승지 대성산의 풍치를 더욱 돋워 준다. 절이 있어 산이 더 아름답고, 산이 있어 절이 더 빛을 발하는 이치는 남과 북의 구분이 없음이다.

참배를 마치고 절을 나서는 길에 평불협 회장 법타 스님이 '가는 절마다 이렇게 주지스님이 계시니 얼마나 좋은가'라며 광법사 주지 수덕 스님과 뜨거운 포옹을 나눈다. '열심히 목탁 치고 기도하면 조국통일은 금방 이뤄질 것'이라는 인사를 남기고 절을 떠나는 우리 일행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광법사 식구들의 ' 잘 가시라 '는 배웅의 손짓은 멈출 줄 모른다.

우리 일행을 실은 승합차는 인근의 모란봉으로 향한다. 말로만 듣던 모란봉을 직접 거닐게 되었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서울 남산 공원처럼 말끔하게 가꿔져 있는데 군데군데 데이트를 즐기는 남녀의 모습이 눈에 띈다. 모란봉 오르막길 강변 쪽으로는 고려식 석축 쌓기로 만들어진 성곽의 일부가 눈길을 잡는다.

왜식 석축만이 즐비한 남쪽과는 사뭇 다르다. 전망이 빼어난 위치에는 여지없이 멋들어진 정자가 서 있는데, 그 곳에 올라 바라보는 대동강과 평양시의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남쪽에서도 잘 알려진 을밀대에 이르렀을 때 일행 중 하나가 '대동강아 내가 왔다, 을밀대야 내가왔다'로 시작되는 나훈아의 노래 ' 한 많은 대동강 '의 가사를 읊조리자 동행 이경철 씨가 '아니 왜 이 좋은 낙원에 와서 ' 한 많은 어쩌고저쩌고 합니까?'라며 퉁명스럽게 반응한다. '남북이 갈라져 오고 싶어도 못 오는 대동강을 그리워하는 뜻이니 곡해는 말라'고 해명을 했지만, 영 마뜩찮다는 표정이다.

모란봉 경관에 감탄 저절로

아무려나, 1시간 넘게 모란봉을 돌아다니고 나니 조금씩 피곤기가 엄습해온다. 날씨도 잔뜩 흐려 어둠이 한 시간 가까이 일찍 찾아오고 있다. 지금은 초대소(국빈 숙소)로 바뀐 평양 제일의 대찰 영명사 터를 바라보며 무상의 이치를 새삼 느껴 본다. 산천은 의구한데 명찰은 간곳이 없다는 그런….

북한불교 순례의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될 구월산과 정방산행이 내일 일정으로 잡혀 있어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느덧 평양시내의 정경도 눈에 익어간다. 북한에서의 일정도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반증이리라.



평양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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