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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이슬람 폭동에 더 이상 못살겠다”

기자명 법보신문

⑫ 말레이로 넘어가는 타이 난민들

타이 국경 난민 속출에 탁신총리는 ‘전전긍긍’

<사진설명>한때 참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말레이시아 국경 왓 포티위한 사원은 유혈 사태가 계속되면서 타이 불법 노동자들의 파난처 노릇을 하고 있다.

“분리주의자들이 위장한 짓이다.” 탁신 시나왓 타이 총리가 발끈했다.
지난 8월말, 무슬림 분리주의 분쟁을 겪고 있는 타이 남부 3개주 빠따니, 얄라, 나라티왓 지역 주민 131명이 신변위협을 호소하며 말레이시아 국경을 넘고부터 다시 방콕과 쿠알라룸풀은 총성 없는 전쟁에 돌입했다.

“타이정부가 자국의 6백만 무슬림들로부터 충성심을 얻겠다면 군사작전으로 억압하는 대신 새로운 길을 찾아야한다.”
말레이시아 외무장관 쉬에드 하미드 알바르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그리고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곧장 조사단을 현장에 파견하자, 타이 정부는 “유엔이 전쟁지역의 피난민들에게 부여하는 특수한 ‘난민’ 지위를 131명에게 부여해서 안 된다”며 짜증을 부렸다.

그런가 싶더니, 이번에는 탐마락 이사랑쿠라 타이 국방장관이 쿠알라룸풀을 향해 “타이 남부 무슬림 분쟁에 마하티르 전 총리가 개입해왔다”며 극단적인 ‘포격’을 가했다.

외교적 관례를 무시한 채 사태를 최악으로 몰아가는 타이정부의 무차별 ‘포격’을 놓고 결국 타이 내부에서도 강한 거부감이 쏟아져 나왔다.

끄라이삭 춘하반 타이 상원 외교위원장은 “국방장관의 태도는 상호협력을 강조해 온 말레이시아와 관계를 끝장내겠다는 무례한 짓이다. 즉각 말레이시아 정부에 사과하라”고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나지브 툰 라작 말레이시아 국방장관도 “타이 정부는 자국 내부 문제를 놓고 말레이시아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지 마라. 우리는 절차에 따라 피난민들을 보호할 것이다”고 맞받아치며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다.

그 동안 타이는 인도차이나전쟁과 주변국들의 불안정한 정세 탓에 캄보디아, 라오스, 버마로부터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국제사회에서 대표적인 ‘난민유입국’으로 인정받아 왔고, 따라서 타이 정부와 시민들은 ‘어쨌든’ 상당한 자부심을 느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8월말 남부 주민 131명이 말레이시아로 피난해 난민신청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난민천국’에서 졸지에 ‘난민방출국’ 꼬리표를 달게 된 타이 정부의 심사가 뒤틀릴 수밖에는. 특히, 경제든 사회든 정치든 모든 부문에 걸쳐 강력한 ‘불교민족주의’와 ‘타이최고주의’를 내걸고 공격적인 정책을 펼쳐왔던 탁신 시나왓총리에게 그 ‘131명’은 그야말로 치명타를 입힌 셈이다.

그러나 실상을 뒤집어 보면 이번 ‘131명’건은 전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유엔이 ‘정치·경제적으로 신변에 위협을 느껴 타국으로 피난한 이들을 난민’이라 규정해 온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이미 오래 전부터 말레이시아 국경을 넘나든 타이 남부 무슬림 분쟁지역 주민들은 공식적인 난민 이름만 얻지 못했을 뿐 현실은 난민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탁신 시나왓 총리가 펼쳐 온 중무장 군사작전이 20개월을 넘어서면서 남부 무슬림 유혈분쟁은 이미 1,500여명 웃도는 사망자를 냈고, 그 과정에서 경제는 경제대로 무너져 지역주민들은 이중적인 생존위협을 받아왔다. 하여 남부 무슬림지역 주민들은 이번 ‘131명’건 이전부터 이미 종교적·인종적 동질성을 지닌 데다 상대적으로 잘 사는 말레이시아를 향해 국경을 넘었다. 특히 이번 ‘131명’이 넘은 말레이시아 툼팟지역은 전통적으로 타이계 피붙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 지난 20개월 동안에도 꾸준히 타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곳이다. 다만 정치적으로 그이들이 ‘난민’ 요청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

속 시끄러운 타이-말레이시아 국경 상황을 우리는 왓 포티위한(Wat Phothivihan)이라는 불교 사찰에서 한번 들여다보자. 말레이시아 켈란탄주 국경 품팟의 한 모퉁이 한적한 마을 잔부에 자리 잡은 이 절은 길이 40m, 높이 11m, 너비 9m 짜리 동남아시아 최대 와불상을 지녀, 한 때 싱가폴, 중국, 타이로부터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참배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그 주변을 좀 더 말하자면 왓 포티위한은 국경을 가르는 성가이 콜록강에서 머지않은 곳으로, 지난 해 10월25일 타이 정부군이 민간인 시위대 85명을 살해해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이른바 ‘탁바이학살’ 현장을 마주보는 자리에 있다.

이 왓 포티위한은 타이식 이름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타이 불교도들과 말레이시아 불교도들이 힘을 합쳐 만든 사찰이다. 특히, 이슬람 사회인 말레이시아에서도 가장 강력한 이슬람근본주의가 판치는 켈란탄주의 품팟에는 와불상을 모신 이 왓 포티위한 말고도 각각 좌불상과 입불상을 모신 3개 사찰이 이슬람과 공존하며 종교적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개월에 걸친 타이 남부 무슬림 유혈분쟁이 국경 건너 말레이시아 불교에까지 강한 영향을 끼쳐 이 왓 포티위한 풍경을 바꿔 놓았다. 지난 20개월 동안 참배객들 발길이 끊긴 이 왓 포티위한에는 대신 타이 불법노동자들만 어른거리고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이 사찰은 타이 불법노동자들에게 연락처로 또 피난처 노릇을 하고 있다.

이 절에 용구를 납품하는 탄 키안 안이라는 중국계 업자는 “너무 많은 타이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타이정부가 대체 얼마나 사람들을 시달리게 했으면….”

실제로 이 절 공사판에서 만난 타이 불법 노동자 아눌 박리(38세)는 “신변안전도 문제지만 경제가 마비되어 도저히 먹고 살 길이 없었다. 그 전에는 적어도, 먹고 살겠다고 국경을 넘지는 않았다. 잘 사는 말레이시아 쪽에서 좀 더 벌겠다는 욕심이라면 몰라도.....”라고 털어 놓았다. 아눌은 유혈분쟁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강을 넘나드는 보따리 장사로 한 달 20,000바트(60만원)는 거뜬히 벌었다고 한다.

이렇게 아눌처럼 타이 평균 임금에도 못 미치는 한 달 300링깃(약9만원)을 벌고자 가족들과 헤어져 국경 넘어 막 노동판을 헤매는 타이불법노동자들이 부지기수지만 누구도 숫자를 정확히 아는 이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말레이시아 당국도 때때로 타이계 불법노동자들을 색출한다고 소문을 내긴 해도, 그 무슬림형제들을 눈감아줄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전통적으로 타이계 40%, 말레이계 40% 그리고 중국계 20%가 뒤섞여 살아온 툼팟에서 ‘불법노동자’와 ‘난민’을 가려낸다는 일은 그리 쉽지도 않을뿐더러.

정치에 휘둘린 사람들, 국경에 갈려버린 사람들, 국적에 차별받는 사람들….
그렇게 국경을 건넌 이들이 왓 포티위한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그이들에게 처음부터 이슬람이니 불교니 하는 종교적 구분은 사치였는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생존 위협을 받는 이들을 놓고 그 꼴란 ‘난민’ 지위를 주네마네 온갖 눈치를 보는 국제사회는 한없이 호사스럽기만 하고.

어쨌든, 이승의 이 모든 협잡을 아는지 모르는지, 왓 포티위한에 드러누운 부처님은 편안한 명상에 잠겨있다.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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