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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의 굄돌은 인연-무상”

기자명 법보신문

제5회 미당문학상 수상 문 태 준 시인


“젊은 시인 문태준의 출현은, 시가 시인에 의해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는 말의 향연임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주어 즐거웠다. 오직 성찬과 격려만이 필요한 단계이다. 이 젊은 시인의 앞날이 어떤 변모를 보일는지 아무도 알 수 없으나 ‘누가 울고 간다’, ‘가재미’ 연작 등이 보여주고 있는 말의 탱탱함, 유장함, 서늘함, 그러면서도 유머스러한 행진은, 그 맞은 편에 놓여 있는 답답한 일상에 홀연히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특히 동사를 크게 활용하는, 흐르는 상상력이 자기갱신의 힘을 발휘한다. 문태준이라는 서정 시인의 탄생은 우리 시를 위무의 성소(聖所)로 이끄는 언어의 축복이다.”

“성찬·격려만이 필요한 단계”

제5회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문태준 시인에 대한 심사평이다.
미당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자 문단에서는 ‘일대 파란', ‘새로운 시대의 도래’라는 말이 나오며 술렁였다. 웬만해서는 젊은 시인들에게 문학상 주기를 꺼리(?)는 문단의 기존 풍토를 감안할 때, 35세의 젊은이가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문단의 대 파격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수상선정 경로를 보면 그의 시 경지가 어느 정도의 선상에 올라서 있는지를 직감할 수 있다. 그는 시인과 소설가를 통틀어 대학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고, 2심 위원도 만장일치로 그를 3심에 올렸다고 한다. 더욱이 최종심에서는 투표를 거치지 않고 수상자를 선정했다.

현재 불교방송 ‘아침저널’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프로듀서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사람이다. 늘 두꺼운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는 그는 말 한마디도 진중하고 겸손하게 하는 스타일이다. 그의 이러한 성격은 아마도 내면을 성찰하고자 하는 불자로서의 심성과 사물을 관조하는 시인의 가슴이 같은 자리에 함께 하기 때문일 것이다.

매사 진중한 그는 자신의 시를 대하는 상황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는 올해 「창작과 비평」봄 호에 ‘내 시를 말한다’ 글을 통해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새순 돋는 나무들을 보면 나에게 중대사는 무엇인가 묻게 된다. 등짝을 뚫고 나오는 시, 아래로 아래로 땅을 파고 들어가 처음 만난 한 줄기 샘물 같은 그런 시를 받아낸 적이 있는지 묻게 된다. 봄이 오는 산길 들길을 걸으면 그래서 내 마음은 더더욱 오갈 데 없는, 춘설 분분한 공중이다. 나는 어지러운 넝쿨이다.”

‘슬픔의 미학’ 메시지는 자비

시집『수런거리는 뒤란』(2000년)과 『맨발』(2004년), 그리고 지난 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40여편의 시를 한 폭의 서정 수채화 프리즘으로 들여다보면 ‘생명’이라는 밑그림 위에 ‘무상’의 색채가 진하게 배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적 소재 ‘생명’은 시인의 가슴으로 안아볼 수 있다 하지만 ‘무상’을 자신의 색채로 삼은 것은 35세의 젊은 시인과는 왠지 거리가 먼듯해 보일 수 있다. ‘인생무상을 말하기에 너무 젊지 않은가?’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지금도 ‘시란 무엇이냐?’는 원초적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시는 옆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며 여울과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시는 반죽을 처대서 마음의 그림자인 형상을 빚는 것이라 봅니다. 그러나 시는 만들어 놓으면 끝내 서글픈 것을 보여줍니다. 그늘에서 말라가는 형상이 뒤틀리면서 균열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아름다움은 열렬하면서도 슬픈 무엇’이라 했다지만, 그래서 시를 쓰는 밤에는 목석같은 사람이어도 철철 우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내력을 들여다보면 슬프지 않은 것이 없는듯 합니다.”

그러나 그의 ‘무상’은 결코 인생 달관의 무상이 아니요, 적막과 허무의 무상이 아니다. 그의 무상은 생명과 인연을 맺으며 연민을 낳고, 그 연민은 ‘잔잔한 슬픔’으로 성장하며, 그 슬픔은 다시 ‘자기정화’와 ‘이타행’으로 성숙해 ‘원융’이라는 결실을 맺는다. 그래서 그는 늘 “인연과 관계라는 말을 나는 내 시의 밑돌로 괸다”고 말한다. 따라서 시에서 보여준 그의 ‘슬픔의 미학’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최종 메시지는 ‘자비’다. ‘8만사천 법문을 마음 심(心) 하나로 줄여 말할 수 있다’는 선사들의 일갈을 떠올리지 않아도, 자비발로의 시심은 깨달은 수행인의 마음과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경북 김천 봉산면에서 유년의 세월을 보냈다. 70년대의 우리나라 농촌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함께 직지사 말사인 용화사를 오르내리며 이내 불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갑자기 심한 병앓이를 해야 했다. 비몽사몽간에 들려오는 환청, 그리고 40도를 넘는 고열은 단 며칠 만에 그를 죽음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고 병원에서는 ‘병명을 알 수 없다’며 포기했다.

급기야, 집안에서는 굿을 벌였다. 알몸으로 집 마당에 누운 자신을 덮은 것은 가마니였고, 아버지는 그 가마니 위에 흙을 얹었다. 일종의 가매장 의식인 셈이다. 이 의식을 치른 이틀 후 그는 거짓말처럼 병이 나았다. 그러나 그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죽음에서 벗어난 삶의 희열보다는 자신의 알몸 위에 흙을 얹어야 하는 아버지의 눈물과 생애 처음으로 자신에게 엄습해 왔던 죽음이다. 죽음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실재로 그 어린 나이에 다가온 것이다.

어린추억-죽음 詩心으로 승화

산미나리와 돌배나무, 개복숭아가 많은 마을에서 소를 몰던 그의 유년의 추억과 사춘기 시절 직면했던 죽음은 결국 고려대학교 국문과 2학년 때 ‘시심’으로 피어났다. 그의 ‘습작(習作)’은 1994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하며 ‘시작(詩作)’으로 승화됐고, 2004년에는 ‘동서문학상’과 ‘노작문학상’을 받자 문단은 이 젊은 시인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단 두권의 시집을 선보인 후 단숨에 미당 문학상을 안은 그는 수상소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엉엉 운다’는 말이 참 좋습니다. 얼마 전 칠순의 한 시인을 만났더니 시 한편을 마쳐놓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울었다고 합니다. 좋은 시인의 성정을 지녔기에 그 궁상을 떨어도 부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수행인들은 억수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날을 골라서 산속으로 들어가 대성통곡 했다고 합니다. 깨달은 바는 없는데 세월은 가고 계절은 바뀌고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 일이겠습니까? 대성통곡하는 것마저 부끄러워해 억수비가 오는 날을 골라서 산속 깊이 들어가 운다는 얘기 또한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엉엉 울며 쓰겠다는 각오를 다져봅니다.

경북 문경 봉암사 스님들은 산철에도 가행정진한다고 합니다. 화살이 날아가듯 주저 없이 가보겠습니다.”

‘식물’에서 ‘사람’에 詩情 변화

이제 그는 ‘나무’를 비롯한 식물과 곤충 소재를 잠시 접고 사람에 눈을 돌리려 한단다. 그는 “울고 웃는 사람들, 춤추고 노래하며 서로를 부둥켜안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갈등과 화해를 말하고 싶다”고 말한다. 만행을 떠나는 선객처럼 그도 새로운 시를 향해 나그네가 되려하는 듯하다.

“강변 십리 길을 굽이굽이 돌면서/ 꽃잎 속을 뚫고 가니 말발굽도 향기롭다// 산천을 부질없이 오고간다는 말 마소/ 비단 주머니에 새 시가 가득 하다오”
그가 좋아한다는 조선시대 이달(李達)의 ‘강을 따라서’의 시처럼, 그는 앞으로도 법음이 녹아 든 새 시를 우리에게 선사해 줄 것이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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