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⑬ 타이-라오스-버마 국경의 반공전사들

기자명 법보신문

‘3만원짜리 부처님’ 따르는 버림받은 전사들

<사진설명>룽민저자 꼭대기에 자리잡은 법당에는 쑨원과 장체스의 사진이 불상보다 높이 걸려 있다.

오십년을 전사로 살아 온 사람들이 있다. 칠십 평생을 전쟁터에 바친 이들이 있다.

물론, 세계전사 어디를 훑어봐도 그이들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이들은 ‘국제반공전선’이 쓰고 버린 전쟁도구였던 탓이다.

“난 평생 공산당과 싸웠으니 후회는 없어.”
피부염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자오잉파(85세.윈난성 롱링 출신)씨는 한물간 ‘반공전사’의 명예를 안고 마지막 길을 가고 있다.

이렇듯, 타이-버마, 타이-라오스 국경지대에는 감춰지고 잊혀져버린 현대사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도이 메사롱, 파땅, 반마이 같이 중국 국민당 ‘잔당’들이 험난한 국경 산악에 세운 이른바 ‘KMT마을’에는 이제 그 3세들이 소복이 자라나고 있다. 그러나 1960-70년대 그 깊은 산악마을들이 음흉한 국제정치판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대체, 이 국경 산골마을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 대답을 하려면 참 길고도 지루한 역사가 필요하다. 이야기는 1920년대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치고 박던 국공내전(國共內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게 시작된 국민당 ‘잔당’들인 국경마을 제1세대들의 전쟁판 인생은 1937년 중일전쟁(中日戰爭)으로 이어지고, 다시 1938년 적전분열로 ‘제2차 국공내전’으로 옮겨간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뒤, 공산당에 쫓긴 장체스의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도주하자, 중국 남부 윈난성(云南省)의 국민당 ‘잔당’들은 버마국경지역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그 국민당 ‘잔당’들은 공산주의 팽창을 막겠다는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장체스의 타이완으로부터 비밀 지원을 받으며 버마정부군과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이게 이른바 ‘대 버마 비밀전쟁’이었다.

이어 한국전쟁이 터지고 중공군이 개입하자 CIA는 ‘잔당’들을 동원해 중국 남부 윈난성을 공격케 했다. 이건 이른바 극비리에 진행한 ‘한국전쟁 제2전선’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잔당’들은 CIA로부터 직. 간접적인 지원을 받으며 흔히 ‘골든트라이앵글’로 알려져 온 타이-라오스-버마 국경지대에서 마약생산과 수송로 확보를 놓고 버마의 샨주 출신 마약왕 쿤사와 지난한 ‘비밀 마약전쟁’을 벌였다.

그리고는 1960년대 미군이 인도차이나전쟁에 개입하면서부터 국민당 잔당들은 ‘대 라오스 비밀전쟁’에 CIA 용병으로 참전하게 된다. 이렇게 인도차이나 현대사를 피로 물들인 모든 전쟁에 개입했던 국민당 잔당들은 1970-80년대 초 타이 정부가 수행했던 공산당 박멸작전에 비밀스레 참전해 마지막으로 피를 뿌렸다.

눈여겨 볼만한 건, 그 국민당 ‘잔당’들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는 ‘비밀’이란 이름이 붙어있다는 사실이다. 전쟁을 놓고 ‘불법’ ‘합법’을 따지는 게 어리석은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전쟁에서 ‘비밀’이란 말을 붙이는 건 그만큼 ‘정당성’이 없다는 뜻으로 보면 틀림이 없다.

아무튼, 냉전기를 통틀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용병 노릇을 해왔던 국민당 잔당들, 그 ‘반공비밀병기들’은 숱한 전쟁터에 피를 흘린 대가로 타이 국경 산골마을을 얻은 셈이다.

그리고, 남을 죽여야 나를 살리는 살육전에 일생을 바쳤던 그 비밀병기들, 그 ‘공산당박멸사’의 주인공들에게 남은 것은 이제 ‘보잘 것 없는’ 부처님의 은혜뿐이다.

“미국도 타이완도 타이도 모두 우릴 버렸어. 늙고 병들어버린 우리가 더 이상 쓸모없다는 거지.” 룽민저자 책임자인 양쑹녠(78세.윈난성 징구출신)씨는 슬픈 웃음을 흘렸다.

타이-버마 국경에 자리 잡은 룽민저자(榮民之家)는 1980년대 타이완정부가 ‘잔당’들에게 지어준 수용소에 해당하는 집인데, 10여년 전부터 지원을 끊어버려 폐가를 연상케 한다.

하여, 그 수용소에 살고 있는 늙고 병든 ‘잔당’ 전사 43명은 마지막 가는 인생을 ‘싸구려’ 불교에 의지하고 있다.

일생을 반공전선에 바친 그 잔당들에게 유일한 밥줄이자 보답은 타이완 종교자선단체인 자청공덕기금(慈淸功德基金)이 보태주는 샐닢이 전부다.

“만약, 그 불교단체 도움이 아니었다면 우린 이미 굶어 죽었어. 부처님 은혜라 믿고…”

양쑹녠씨는 수용자 43명에게 매달 일인당 1,100바트(3만원)꼴을 보내주는 자청공덕기금 장부를 가보처럼 소중하게 여겼다.

이건 타이완 정부가 국민당 퇴역군인들에게는 계급에 따라 엄청난 연금을 지급해 온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예컨대, 룽민저자의 국민당 잔당들과 함께 전선을 달린 뒤, 1960년대 타이완으로 돌아간 ‘잔당’ 출신 리차오쿠이(73세)씨는 매달 2백만원이 넘는 돈을 받고 있다.

심지어 타이완 정부는 한국전쟁 때 중공군 포로로 잡혔다가 타이완으로 귀순한 이른바 ‘적’들에게도 매달 40만원씩을 꼬박꼬박 통장에 담아주고 있다.

그렇게 룽민저자의 ‘잔당’들이 부처님 앞에 고개 숙인 대가로 불교로부터 얻는 한 달 3만원과 리차오쿠이씨가 떳떳이 고개 들고 타이완 정부로부터 받는 2백만원 사이에는 찌그러진 인간성, 그 불안전한 인간들의 역사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럼에도 정치는, 이 세상 여느 곳과 다름없이 이 수용소에서도 종교보다 높은 곳에 있음이 드러났다. 룽민저자 꼭대기에 자리 잡은 법당에 그 좋은 증거가 있다. 쑨원과 장체스 사진이 불상보다 높은 곳에 올라 앉아 그 상징성을 뽐내고 있으니.

“부처님 품으로 돌아가는 게 이제 남은 일이지, 뭐. 마음 같아서는 고향으로 돌아가도 싶은데, 갈 수가 없으니…”

열네살 때 소년병으로 국민당에 입대해 1972년 타이-라오스 국경 파땅에서 타이군 대신 공산당박멸작전에 참전했다가 지뢰를 밟아 한쪽 다리를 잃은 윈난성 컹마 출신 자이왕(60세)씨는 돌아갈 고향으로 부처님 품을 꼽았다.

“부처님이 사람을 많이 죽였다고 받아 주겠는가?”라는 우스개 물음에 그이는 “부처님이 뭔지, 불교가 뭔지도 몰라. 그저 매달 몇 만원 보태주니 고마울 뿐이다”며 받아 넘겼다.

매달 3만원에 부처님을 쫓는 룽민저자 사람들, 그이들에게 남은 고민은 과연 죽어서도 부처님이 매달 3만원을 보태줄지 어떨지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정당성 없는 전쟁, 그 불법비밀전쟁에 참전했던 룽민지저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를 역사의 ‘희생자’로 만들어버렸고, 그 룽민지저 사람들을 불법전쟁도구로 이용해 먹었던 세력들은 오늘도 도덕과 정의를 외치며 여전히 세상을 주름잡고 있다.

3만원짜리 부처님은, 지금 룽민저자 바닥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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