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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개발 논쟁

기자명 법보신문

“죽은 유적이 산 사람 쫓아내서야…” 주민 하소연

일본인 아내가 기념품 장사를 하는 예술가 수딴또 멘둣, 돈 안 되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보니 틈틈이 외항선을 타며 목돈을 벌어야 하는 쁘리요또, 1983년 개발계획에 쫓겨난 초등학교 선생 밤방, 낡은 사진기에 밥줄을 매단 기념사진사 아리스와라….

이들은 모두 보로부두르 사람들이다. 보로부두르 유적지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들이다.

그리고 관광객이 몰릴 것이라는 기대감에 빚을 얻어 일찌감치 집 단장을 끝낸 모하마드, 뛰는 땅값에 이미 팔자 고친 기분인 바시오,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따라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아 온 소또모, 일자리가 넘칠 것이라는 소문을 믿고 시위에 앞장서 온 압둘라….

이들도 모두 보로부두르 사람들이다. 보로부두르 유적지 개발을 찬성하는 주민들이다.

2003년 초, 어느 날부터 그렇게 주민들 가슴에 서로 다른 보로부두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중부 자와 주정부가 보로부두르 한 쪽에다 300억루피(약40억원)를 들여 대형 기념품매장을 낀 관광단지를 개발해 연간 35억루피(4억7천만원) 수익을 올리겠다는 이른바 ‘자와의 정신세계’(Spirit World of Java)라는 프로젝트를 걸고 나선 뒤부터다. 주정부는 거짓말과 환상을 교묘히 섞어가며 주민들을 교란시켰고, 보로부두르 주민들은 곧장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졌다.
주지사란 자가 반대 쪽 마을에 가서는 “자와 월드(Java World)계획은 이미 끝난 일이다.”고 주민들을 안심시켰고, 찬성 쪽 마을에 가서는 “스피릿 월드 오브 자와(Spirit World of Java)는 계속되고 있다”며 주민들을 부추겼다.

계획 입안자인 웬두 누리안티(가자마다대학 교수)는 “‘자와 월드’와 ‘스피릿 월드 오브 자와’는 전체 계획의 단계별 이름일 뿐이다. 현재 이 사업은 계획대로 추진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 말은 마르디안토 주지사가 주민들을 농락해 왔다는 뜻이다.

게다가, 자와 월드 프로젝트에 담긴 ‘보로부두르 출입구의 서쪽 이전’과 ‘보로부두르 유적지 내 행상금지’ 조항은 지역 주민들을 결정적으로 갈라놓았다. 이 두 조항에 따라 생존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는 2000여명 행상들과 현재 출입구가 나 있는 동부지역 주민들은 필사적인 반대운동을 벌여왔다.

보로부두르에서 기념엽서를 팔아 온 세두마는 “정부가 건물 짓고 나면 기념품 판매점에 들어갈 자격을 준다지만, 하루 기껏 5만루피(약5천원)를 팔며 살아온 우리가 그 비싼 매점을 구입할 돈이 어딨나?”며 긴 한숨을 내뿜었다.

보로부두르 동쪽 출입구 쪽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 온 쁘리요또는 “멀쩡한 동문을 서쪽으로 옮긴다면 이쪽 사람은 다 죽으라는 뜻이다. 이건 정부가 지역 주민을 둘로 갈라 한쪽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반대자들을 묵살하겠다는 야비한 계획이다”며 길길이 뛰었다.

그러나 ‘자와 월드 프로젝트’에 따라 개발지로 결정된 서쪽 쿠존마을 상황은 딴판이다.

“서쪽은 처음부터 무시당해 왔다. 이쪽저쪽 모두 평등하게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모하마드 암란은 자와 월드 프로젝트 소문이 돌자마자 친척들로부터 빚을 얻어 집 단장을 새로 해서 게스트하우스를 준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평방미터당 15만루피였던 땅값이 한 달 만에 25만루피로 뛰어 오른 쿠존을 비롯한 서쪽 마을 주민들은 자와 월드 프로젝트 찬성 시위를 벌여왔다.

이렇게 보로부두르 지역 주민 사이에 갈등이 일자, 이번에는 유적. 환경보호단체들과 전문가들이 뛰어 들어 ‘자와 월드 프로젝트’에 또 다른 전선이 형성되었다.

“현대식 빌딩을 세우는 과정에 지반이 흔들려 유적지가 치명적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 청년 건축가 포름을 이끌고 있는 마르코 쿠수마위자야 같은 이들은 “기술적으로 점검되지 않은 개발계획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문달지또(인도네시아대학. 고고학)교수는 “학술적 발굴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보로부두르에 어떤 명분으로도 개발사업을 추진해서는 안된다”며 가세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보로부두르를 낀 이런 논란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 동안 보로부두르는 이미 여러 차례 ‘개발’과 ‘보존’이라는 두 가지 명분이 격돌해 왔던 현장이다.

<사진설명>동남아시아 3대 불교유적의 하나인 보로부두르는 하나의 거대한 사리탑이다.

보로부두르는 유네스코(Unesco)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최대 사리탑이라는 유명세와 달리 아직까지 학술적 미완지대로 남아있다. 보로부두르가 750~850년 무렵 중부 자와를 지배했던 사이렌드라(Sailendra dynasty)와 산자야(Sanjaya dynasty) 왕조시대에 만들어진 사리탑이라는 정도만 밝혀냈을 뿐, 주변에 늘려있는 수많은 불교 유적지들에 대한 실질적인 발굴과 조사는 아직까지 온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지난 수세기 동안 자와 전체가 이슬람으로 재편되는 정치·종교적 환경 속에서 불교가 잊혀진데다, 인근 메라피화산 폭발로 보로부두르 지역이 화산재에 묻혀 버렸던 탓이다.

그런 보로부두르가 다시 살아난 건 19세기 들어 네덜란드 식민당국이 복구사업을 벌이면서부터였으나, 전문성 부족에다가 지진까지 겹쳐 결국 원형은 유실되고 말았다. 이어서 유네스코가 1973~1984년 사이에 대규모 복구사업을 벌인 뒤, 다시 1980대에는 일본 정부개발원조금(ODA)으로 공원화사업을 추진하면서 심각한 유적·환경파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사업은 보로부두르에 3m짜리 담장을 쌓고 무력으로 지역주민을 쫓아냄으로써 민중의 삶을 유린하는 대표적인 제3세계 유적지 개발 사례로 기록되었다. 당시 일본정부가 지원한 보로부두르 공원화사업에 따른 2억8500만엔짜리 공사계약은 ‘당연히’ 일본 건설회사인 카시와에게 돌아갔고, 그 과정에서 수하르토 독재정권의 부정부패가 큰 말썽을 빚었다. 제3세계 빈곤해소라는 명분을 지닌 정부개발원조(ODA)가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불법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건이었다.

혹시 그 곳을 찾은 독자들 가운데는 보로부두르 코빼기 앞에 마주 앉은 수상쩍은 일본풍 건축물인 마노하라호텔을 놓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바로 그 호텔이 그 시절 공원화사업의 불법성을 증명하는 좋은 본보기다. 사람도 마음껏 다니지 못하게 하는 유적보호구역 안에 어떻게 대형 호텔이 들어설 수 있었을까? 더구나 자와풍도 아닌 일본풍 건축물이!

이처럼 보로부두르는 큰 말썽을 일으키며 서로 다른 손길로부터 여러 차례 비정상적인 ‘수술’을 받았으나 길이 118m 높이 42m로 추정되던 원형복원에 실패한 채, 오늘날 높이 31.5m로 고정되고 말았다. 그리고 수많은 참배객(관광객)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곳에 부처가 살아있는지 어떤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땡볕에 내려 쬐는 보리수만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손대지 말자!”
바로 보로부두르가 21세기 유적복구와 개발사업에 던지는 엄숙한 화두다.
유적이 제 아무리 소중한들, 개발이 제 아무리 중요한들, 사람에 우선할 순 없지 않겠는가?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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