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⑧ 변함은 무상인가 정상인가

기자명 법보신문
삶의 공간은 변함 없는데 사람이 이를 구분
시간·날짜로 가능하며 ‘오느니…가느니’


시간은 흐른다 한다. 시간이 어디 있는 것인가. 시간이 있는 곳을 나는 모르겠다. 좁고 어리석은 소견으로 시간의 존재를 인식하기에는 인식할 만한 대상이 없다. 무엇이 시간인가. 도대체 시간은 둥근가 네모진가. 그 형체를 무어라 해야 할 것인가. 그러면서도 시간이 갔다든가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든가 하며 보이지도 않는 형체에 어떤 변화의 흔적을 느끼고 있으니, 생각해 보면 어이 없는 일이다.

흔히 인생은 무상하다든가 허무하다든가 하여 아쉬워하는 표정이 많은데, 이는 모두 보이지도 않는 시간의 수레에 올라 앉아 주변 사물의 흐름을 보고 시간의 흐름이라 착가하는 것은 아닐까. 수레에 앉아 주변 사물을 보면 끊임 없이 뒤로 흘러 변하는 것 같지만, 실상 사물 자체에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시간의 흐름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시간 자체에는 아무 변화도 없는데 우리는 이 시간 속에다 나를 맡겨 놓고는 변함이 없는 변화를 애써 변화라 하여 공연한 기쁨 서글픔을 자아내는 것이다.

삶의 주변 공간은 사실 변함이 없는 변화로 이어지고 있고, 우리는 이 변함이 없는 변화를 시간이라 규정하여, 일정한 시간을 스스로 척도화하여 날짜니 계절이니 하여 애써 변화를 재어 보려 한다. 재어 놓고 변했다 하고는 오는 시간의 앞을 보면 변했다던 지난 시간이 바로 앞에 있게 된다. 그러니 긴 잣대로 보면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계절이라는 단위로 시간을 재면 변하기는 변한다. 덥다고 무성한 나무 그늘을 찾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어느 새 그 잎들이 누렇게 물들어 푸르다는 녹음이 붉다는 단풍으로 변하고 있다. 여기서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다.
이럴 때 덧없는 세월이라는 말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여기에다 사람의 삶을 얹어 말하게 되면 인생무상이라고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의 길이를 늘려 보면 무상이 아니라 정상일 수도 있다. 햇 수로 치면 지난 해의 이맘때와 다를 것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정상이다. 여유 있는 긴 시간의 거리를 인위적으로 잘게 갈라 놓고 덧없다든다 무상하다 하여 제 감정을 제가 추스리지 못하는 꼴이다.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래서 시공을 초월한 진리이다. 지는 나무 잎을 아쉬워하다 보면 새 잎이 돋고, 돋은 잎에 즐거워하다 보면 잎이 또 지는 것이 진리이고 이것이 무상이 아닌 정상이다.

옛 선사님들의 시절 인연에 따른 법어는 이런 점을 문학이나 예술의 경지로 말씀하였다. 오늘은 고려 말엽의 백운스님의 법어를 들어 보자.

“계절이 가을이 되었으니 / 장마비는 천지에 개였고 / 서늘한 바람은 빈 들에 불어온다 / 꾀꼬리 노래 이미 익었고 / 매미 울음이 앞을 다툰다 / 가을 바람 쓸쓸하고 / 가을 경치 어설프다 / 희 연꽃은 이미 연못에서 물러갔고 / 붉은 여귀꽃이 옛 언덕에 피었네 / 울 밑 누런 국화 황금을 헤쳐 내고 / 강 모래엔 흰 이슬이 구슬을 드리운다 / 언덕의 계수나무 향기 날리고 / 나뭇 잎은 서리에 붉게 취했다 / 요임금의 해라 곡식은 풍년 들고 / 순임근 날씨라 들 노인 노래 구성지구나.”

법어라기 보다는 한 편의 노래이다. 법 자체가 있는 실상 그 자체라 한다면 삼라만상의 존재가 모두 법이니, 법어가 바로 이 존재의 말씀이 아닌가. 가을의 시절 인연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장마비에 괴로원 했던 것이 어제이면 새로 불어 오는 서늘 바람이 비를 몰아가고 이마의 땀을 식혀주면 들은 풍성해 진다. 연꽃은 자취없지만 그 자리를 또 물마름풀의 가을 꽃이 차지한다. 국화는 황금 빛으로 빛나고 이슬은 구슬방울로 장식된다. 이것이 태평세월이다. 역사의 기록은 요임금 순임금의 시대를 태평성대의 표본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런 태평성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있는 그대로의 진여 세계가 바로 태평성대요 그것이 바로 요순시대인 것이다.

스님이 바라는 태평성대는 바로 있는 실상 그대로의 평안이다. 이것이 시절인연이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