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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사회병리현상으로서 자살 : 폭력과 욕설

기자명 법보신문

강압의 군대문화가 부르는 비극

“우리 아들이 얼마나 쾌활했는데…. 실컷 두들겨 맞게 내버려 두고선 내성적이라서 자살했다니….”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B병원 영안실. 외박을 나왔다가 부대 복귀 시한을 앞둔 오후 한 초등학교의 외진 창고에서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한 수원 남부경찰서 소속 최(21) 일경의 어머니 문(49) 씨는 애써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오열했다. “고참이 매일 때리고, 잠 안 재우고 미치겠다. 24시간 괴롭힌다. 도시락반찬 남겼다고 끌려가서 맞고, 밤 10시부터 아침 8시까지 못 잤다. 의경생활이 이런 것인 줄은 몰랐다. 고참들은 악마 같다.”아들이 황색 서류철 앞뒷면에 자필로 써서 남긴 유서는 부모의 가슴을 후벼 팠다.

최 일경의 유서 내용처럼 남부서 방범순찰대의 몇몇 고참들은 그에게 날마다 가혹 행위를 일삼았다. 경기지방경찰청이 폭행 등의 혐의로 구속한 구모(21) 수경, 김모(20) 상경, 정모(21) 상경 등 3명의 고참병들은 갖가지 트집을 잡아 최 일경은 물론 다른 부하 의경들을 상습 구타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전ㆍ의경과 관련한 구타ㆍ사망사고는 각종 시위 진압을 전담하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지나친 근무기강과 무관치 않다”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2005년 1월에는 육군 훈련소 인분 사건이 일어난데 이어,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초소에서 김동민 일병이 내무반 총기난사 사건으로 군인 8명이 사망했고, 또한 인천 소재 해군부대에서 2005년 6월28일 발생한 ‘제초제 보리차’ 사건은 선임병의 구타와 욕설에 격분한 신병이 선임병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꾸민 사건으로 밝혀지는 등 군부대 내 사건 사고가 잇달아 터지고 있다.

이제는 욕설과 구타 등 폭력으로는 신세대 병사를 효과적으로 지휘할 수 없는 시대이다. 아침 시간에 10분 늦었다고 선임병으로부터 따귀를 맞은 신세대 병사는 홧김에 제초제를 음식물에 투여한 사건을 일으켰다. 따귀 한두 대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세대 병사들이다. 경제적 풍요 속에서 성장한 젊은 병사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신세대의 사고방식과 삶의 패턴을 정확하게 파악해 병영문화를 그에 상응하게 변화시키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 필요하다.

후방에 있는 어느 사단에 사단장이 재작년에 부임하고 얼마 안 돼 2건의 가혹 행위가 발생해 부하 7명을 처벌하게 됐다. 사단장은 어떻게 하면 이런 사고를 근절할 수 있을지 고민 끝에 ‘첫째 병사들 간에 서로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둘째 경례를 한 후에도 반드시 따뜻한 인사말을 나누며, 셋째 비인간적인 군대식 관습을 지양하고 진정한 상호 존중의 예절을 생활화한다’는 ‘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 3대 원칙’을 실행하도록 했다. 초기에는 내부적으로도 ‘부드럽고 강한 군대’가 가능할까 하는 회의와 몸에 익지 않아 어색했지만, 이제는 모든 병사뿐 아니라 지휘관들도 행복해하고 군기 사고와 가혹 행위가 현격히 감소하는 효과를 거뒀다. 아직도 군대는 절대적인 상명하복으로 다스려야 기강이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휘관들이 있는데, 이 사단은 병사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함으로써 군기가 강해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라’가 아니라 이유와 목적을 설명해 주고 함께 과제를 수행하자고 하면서 훈련 강도를 높였는데, 병사들의 기가 살면서 학습 효과가 높아져 조교와 교관들도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이 사단 소속 병사들은 표정이 밝고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고 한다. 아무리 연습해도 사격 실력이 늘지 않아 몹시 괴로웠는데 ‘잘하고 있다’는 선임병의 격려를 듣고 새로운 각오로 연습해서 사격을 잘하게 됐다는 병사, 군대에 와서 몰랐던 자신의 글재주를 발견하고 자기계발을 하게 됐다는 병사 등 모두 부모님이 아주 기뻐하신다며 행복해했다. 신세대 장병들이 승복할 수 없는 강압의 군대문화가 계속되면 군부대 사고는 더욱 빈발할 것이고 사기와 능률은 갈수록 저하될 것이다.
상호 존중과 배려의 문화가 군대문화로 정착되어 모든 남성이 2년을 굴욕감과 두려움 속에서 보내지 않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인격을 길러서 나온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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