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0 남대충 스님 (1925-1993)

기자명 법보신문

천태종 급성장 이끌어

74년 7월 2대 종정 취임
천태종 체계확립 견인
불자 직접만나 신행 상담
종단 안팎서 존경받아


천태종 제2대 종정 남대충 스님은 1925년 음력 12월 5일 소백산자락 여의생 마을에서 출생했다. 영양 남씨 가문의 부친 명진 씨와 모진 안동 김씨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난 스님의 속명은 익순이다.

스님은 21세 되던 1945년 지금의 천태종을 세우고 중흥시킨 상월 스님이 소백산 백자리 연화지를 찾아 나설 때 길을 안내하는 인연을 맺어, 천태종에 몸담았다. 같은 해 음력 1월 16일 구인사에서 상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대충(大忠)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이후 오랜 기간을 스승 상월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오직 마음을 닦는 수련에 전념하던 스님은 67년 3월 드디어 상월 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70년 초까지 전국을 다니며 중생들에게 불법을 전했다. 이어 74년 천태종을 창종해 이끌던 상월 스님이 열반에 들자,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해 종단을 안정시켰고 74년 7월 천태종 제2대 종정에 취임했다. 스님은 이때부터 천태종의 전반을 관장하며 종단의 체계를 바로잡는데 앞장섰다. 82년에는 직접 천태종 고시위원장직을 맡아 승려고시를 활성화시켜 승려의 법계를 정착시켰고, 91년에 재단법인 대한불교 천태종 이사장으로 취임해 종단의 외연을 공고히 했다.

스님은 왕성한 활동력으로 전국을 누비며 총본산 구인사 성역화 사업을 주도했고 전국 70여개 시·군에 사찰을 창건해 포교영역을 확장했다. 또한 국제불교교류에 관심을 갖고 일본, 중국, 미얀마 불교계와 인연을 맺어 오늘날 천태종의 해외교류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스님은 뿐만 아니라 상월 스님의 유훈을 받들어 부산의 삼광사나 서울 관문사 등 전국의 각 도시에 많은 가람을 세웠으며, 이를 바탕으로 생활불교·대중불교·애국불교의 종단 3대 지표를 뿌리내리게 했다. 대충 스님은 특히 불자들을 직접 만나 신행상담을 하면서 확고한 불교관을 심어주기로 유명했다. 스님은 평생에 걸쳐 매일같이 찾아오는 수많은 불자들을 한 명씩 만나 고난의 개인사를 들어주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등 자비로운 모습으로 일관했다. 오늘날 천태종을 찾는 많은 불자들에게는 이러한 대충 스님에 대한 향수가 짙게 배어있기도 하다.

스님의 이러한 노력으로 천태종의 교세는 날로 번창해 신도 200만을 넘어서는 성장세를 이뤘고, 총본산 구인사 성역화 사업을 통해 구인사 경내에 전통 양식의 건물 40여 동을 세우는 위력을 보이며 종단 안팎에서 두터운 신망과 존경을 받았다.
때문에 천태종 소속 스님이나 신도들은 대충 스님을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흔한 지도자가 아니라 “실제로 중생을 위해 몸소 실천하고 괴로움을 함께 나누는 불도수행의 산 표본을 보이시며 일생을 살다간 불·보살의 화현”으로 추앙하고 있다.
이처럼 종도들의 신망 속에 종단의 내·외연을 굳건히 세운 대충 스님은 93년 음력 9월 3일 총본산 구인사에서 입적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