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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 군화발 아래 놓인 찬란한 유적 ‘파간’

기자명 법보신문

“파간으로 놀러오지 마세요” 민주운동가들의 절규

지난 10월14일, 국제인권단체들은 대우인터내셔널과 세계 곳곳에 나가있는 한국대사관 앞에서 버마의 슈에(Shwe)가스개발을 둘러싸고 ‘인권, 노동권, 환경권을 존중하라.’며 거센 시위를 벌였다.

1996년, 그 무렵에는 버마 군사정부가 이른바 ‘미얀마 방문의 해’를 선포하자 버마의 민주혁명·민족해방 조직들이 국제민주세력과 손잡고 ‘버마관광반대운동’을 벌였던 적이 있다.

9년 터울을 두고 벌어진 이 두 시민운동이 겉보기엔 서로 다른 모습인 듯해도, 국제사회의 경제봉쇄로 파산상태에 빠진 버마군사독재정권의 ‘돈줄’을 차단하기 위한 ‘압박전’이라는 점에서 속살은 같다.

아시아 정치판을 보자. 20세기를 통틀어 아시아는 비록 혼란을 겪어왔지만 이제 서서히 시민중심사회로 이동해 가는 기운이 엿보이고, 그 동안 정치를 주물러왔던 군인들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근데, 오직 버마만 그 흐름을 거역하고 있다. 이 세상 어디에도 버마 군인독재자들만큼 ‘지독하게’ ‘끈질기게’ 정치를 물고 늘어져 온 경우가 없다. 40년이 넘는 동안 그 군인들은 변화 조짐마저 보인 적이 없다.

그 군인독재정치는 1960년대 이른바 ‘버마식 사회주의’라는 깃발을 내걸고 제3세계 경제개발의 본보기로 불릴 때까지만 해도 별 탈 없이 굴러가는 듯했으나, 1970~80년대 실정을 거듭하며 한계를 드러내고부터 시민들의 저항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그 군인들이 결국 1988년 민주항쟁을 유혈 진압한 데 이어, 1990년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압승을 거둔 총선을 무력화시킨 채, 유혈폭압정치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로부터 버마는 국제사회로부터 경제봉쇄를 당해온데다, 특히 두어해 전 미국정부로부터 금융동결이라는 직격탄을 맞아 경제운용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하여, 버마군사정부가 시민들을 볼모로 잡고 경제봉쇄에 대항하다 보니, 그 파산의 고통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버마 민주화를 염원해온 국제시민사회는 사상 유래 없는 ‘관광반대운동’을 벌여왔다. 이 운동은 버마 군사정부가 ‘현금작물’로 여겨온 관광사업을 차단하겠다는 뜻이었다. 비록 시간이 지나면서 좀 시들해지긴 했지만, 재외 버마 민주혁명·민족해방단체들은 아직까지 이 ‘관광반대운동’을 공식적으로 철회한 적이 없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 ‘관광반대운동’은 처음부터 민주혁명·민족해방 세력들 사이에도 상당한 논란을 겪어왔던 게 사실이다.

“관광반대운동은 전략적인 차원에서 결정했지만, 우리 민주혁명단체들 사이에서도 참 고통스런 일이었고, 따라서 국제시민사회에 강요할 수 없는 정책이기도 했다.”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의장으로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나잉옹(현 민주개발네트워크 자문위원)의 고민에서 엿볼 수 있듯이.

“뉴스도 없이 고립당한 버마 내부를 염두에 둔다면, 오히려 더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들어가서 현지인들과 접촉하며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알려주고, 동시에 그 관광객들이 버마 실정을 바깥세상으로 들고 나와 폭로할 필요가 있다.”

버마학생민주전선 북부(ABSDF-North) 의장을 지낸 뒤, 현재 외신기자로 일하고 있는 옹나잉 같은 이들은 사견임을 전제로 ‘관광반대운동’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은, 다분히 서양식 낭만주의 발상이라 꼬집었다.

어쨌든, 이런 버마 현실 속에서 지금까지 외국 관광객들이 버마를 방문한다는 건 그리 마음 편한 일이 아니었다. 말이 난 김에, 그 동안 우리 관광객들 가운데는 그렇게 ‘버마관광반대운동’이 벌어져 왔다는 사실을 알고 버마로 들어갔던 이들이 얼마나 될는지?

결국, 버마 방문은 개인별 목적과 의지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세계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저간의 사정만은 알고 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버마, 관광자원으로 따지자면 아시아에서 버마만한 나라가 흔치 않다. 산과 바다, 유적과 문화, 사람과 정신, 이런 것들을 관광자원이라고 본다면, 아시아에서는 단연 으뜸이다. 다만, 숙박과 교통 같은 관광시설들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자, 그런 버마 관광에서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불교문화유산이 아닌가 싶다. 아시아 최대 불교국가니, 자연스레 세계최대 불교국가라 해도 틀림이 없는 버마, 그 불교유산은 파간(Pagan)에 살아있다. 캄보디아에 앙코르 왓(Angkor Wat)이 있다면, 인도네시아에 보로부두르(Borobudur)가 있다면, 버마에는 이 파간이 있다.

이라와디강이 굽이도는 사방 50km 광활한 대지 위에 2,000여개가 넘는 사찰과 탑들이 늘려있는 고대유적지 파간은 11~14세기에 걸쳐 만들어졌지만, 그 동안 몇 차례 대규모 지진을 겪으면서 거의 모든 건축물들이 허물어진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말하자면, 파간은 ‘폐허’ 속에서 힘들게 숨결을 이어온 사람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그 동안 파간은 복구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겪어온 대표적인 유적지다. “더 늦기 전에 복구를 해서 현상이라도 유지해야 한다”는 쪽이 있었다면, 또 다른 쪽에서는 “충분한 기술이 개발될 미래를 위해 남겨놓아야 한다”고 맞서왔다.

그런 가운데, 바로 ‘돌망치’같은 군인독재자들이 유적지를 ‘현금작물’로 판단해서 군화발로 파간에 뛰어들었다. 이 ‘돌망치’들에게는 20년 전부터 파간에 개입한 유네스코(Unesco)쪽 전문가들 말마저 들릴 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해서 군인들은 유적 복구랍시고 목욕탕에나 바르는 타일과 콘크리트로 사찰을 덮었고, 파괴당한 탑들 위에다가는 현대식 적벽돌을 콘크리트로 때워 올렸다. 말 그대로, 과거와 현재의 불일치를 군사작전처럼 콘크리트로 밀어붙여 통일시킨 꼴이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았던지, 이 희한한 군인들은 유적지에다가 65m짜리 전망대를 설치하고야 말았다. 물론, 이 현대식 전망대에는 잊지 않고 식당과 기념품 매장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해서, ‘군화발’은 시민들의 삶뿐만 아니라 유적지 파간마저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왜, 왜 시민들이 군인독재자를 거부해야 하는지는 그렇게 볼썽사납게 변해가고 있는 파간이 고발하고 있다.

세계최대 불교국가 버마, 그 불법이 살아있는 땅에서, 어찌된 일인지 오늘도 중생들은 하찮은 군인독재자들의 피 묻은 군화발 아래 신음하고 있다. ‘봄날 나비의 꿈’으로 넘겨버리기엔 너무 긴 세월이다. 이제, 시민을 살리고, 파간을 살리는 일은 버마에서 군인독재자를 몰아내는 길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하여, 버마관광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들이 있다면, 파간을 꿈꾸는 독자들이 있다면, 적어도 세계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아픈 버마를 고이 보듬고 달려가기를 기도해 올린다.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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