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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물은 배를 띄운다.

기자명 법보신문
타고 난 신체의 한계는 누구나 비슷
터 닦듯 잘 다스려야 지혜도 넓어져


모든 사물에는 질과 양이 있어 그 사물을 규정하려면 이 질과 양을 겸해서 따져 보아야 그 사물을 이해할 수가 있다. 쇠는 무겁고 솜은 가볍다 함이 일반적 인식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솜이 무겁고 쇠가 가벼울 수도 있다. 쇠 1 근과 솜 10근 가운데 어느 것이 무거우냐 하면 쇠가 무겁다 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물건의 정확한 무게 단위를 정하려면 비중을 알아야 한다. 일정한 부피를 정해 놓고 그 무게를 견주어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정한 양을 정해 놓고 무게의 질을 따지는 것이다.

아울러 사물은 그 주변의 여건에 따라 이 질과 양이 변할 수가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연이란 말도 연상할 수가 있을 것이다. 꾀가 많은 망아지가 소금을 싣고 강물을 건너다 미끄러지는 척하고 자빠지니, 등에 얹힌 소금의 무게가 점점 줄어 가볍게 강을 건넜다. 오기가 생긴 주인이 이번에는 솜을 실려 강을 건너게 하였다. 지난 번 소금을 지고 가던 생각이 난 망아지는 또 물에 자빠졌고 등짐의 무게가 점점 늘어나 제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생을 하였다. 이 소금과 솜은 주변의 여건에 따라 질과 양의 변화를 가져 왔다.

사람살이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사람 사람의 몸무게가 다를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다 고만고만하다. 그러나 각기 하는 일에는 큰 차이를 가져 온다. 곧 질의 차이는 매우 크다. 이것을 우리는 선천적 기질이니 성질이니 하여 타고난 질적 차이로 돌리려 하지만, 태어남이라는 순간적 단초의 시발로 본다면 원초적 질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 인연의 여건에 의한 질적 차이일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후천적 배움의 노력을 귀히 여기기도 한다. 타고난 힘에는 한계가 있으련만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스스로 몸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혹독한 훈련을 하여 이 한계상황을 뛰어넘기도 한다. 알음알이의 힘도 이와 같아 시간을 다투어 무한의 지식에 도전한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의 힘을 느끼게 되고 아울러 교육의 환경을 따지게 된다.

그러나 큰 틀로 본다면 누구나 그 몸의 양에 그 몸의 질을 행사한 것이지, 없는 질량의 변화를 가져 온 것은 아니다. 다 있는 그대로의 들어남일 뿐이다. 여기서 성인과 범부가 다르지 않다는 범성불이(凡聖不二)는 질적 차이가 없음이고, 풀씨에도 수미산이 용납된다는 개자납수미(芥子納須彌)는 양적 차이가 없음을 말하는 진리의 법문(不二法門)임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된다.

오늘도 이 다름이 없는 한 몸의 질량을 가지고 달라져 보려고 이리 저리 뛰고 있는 것이 일상의 현실이다. 배우고 익힘의 장에서 쉬임 없이 힘쓰고 있다. 공자도 이를 미화하기는 하였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않겠느냐”하여, 이 전진의 노력에 불을 지펴 주었다. 삶의 마당이 집안이나 마을의 나라 안만이 아니라, 온누리라는 세계가 목표가 된 이 공간을 헤쳐가려면 더 많은 배움이 요구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 달려감의 질주는 어쩔 수 없는 삶의 현장이기는 하다.

‘뛰어 봐야 벼룩이지’ 하는 속담은 아무리 넓은 온누리의 공간이라 하더라도 내가 처한 안방의 한 구석을 넘을 수 없는 한계성을 예견한 지혜로운 교훈의 한 예일 것이다. 세상 밖의 공간으로 뛰어넘으려는 원대한 포부라 하더라도 나의 제한적 질량을 잘 조절하여 안방의 공간부터 다지는 터닦이 작업이 튼튼해야 할 것이다. 하나 하나 차분하게 다져가는 끈기의 우직함 속에 기대되는 큰 업적도 따를 것이다. 여기에 다시 진각국사의 설법이 번득인다.

“부드러움이 쌓여 굳세지고 약함이 쌓여 강해진다. 그 쌓여지는 것을 관찰하면 화와 복의 본향을 안다. 물에는 근욕이나 뼈가 없지만 일만 톤의 배를 감내한다.”하였다. 이것이 한계의 질량을 뛰어넘는 힘이다. 유하고 약하기야 물보다 더한 물질이 없을 것이지만, 한 방울의 물이라도 사양하지 않아 이루어진 호수나 바다는 아무리 무거운 물체라도 감내하는 막강한 힘으로 변한다. 굳세어 지려거든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수양부터 쌓자.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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