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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사회병리현상으로서 자살 : 노인문제

기자명 법보신문

다양한 자살 원인부터 분석해야

“저는 애로운(외로운) 80 독고(독거) 노인임니다. 90년도부터 당뇨(당뇨)와 농내장(녹내장)을 알어(앓아) 왔습니다. 더 견딜 수 없어 이길을 택한 검니다. 그리고 집주인 아줌마와 2동 사회담당 보조 아가시(아가씨)와 너무나 고마워슴니다.”
2005년 7월21일 자살한 성씨 할아버지의 품에서 발견된 유서이다. 독거노인의 고단했던 삶이 맞춤법도 맞지 않는 글씨로 적혀 있었다. 할아버지는 서울 지하철 4호선 수유역에서 달려오는 열차를 향해 뛰어 내렸다. 또 65세 된 독거노인이 소주 반병과 살충제를 함께 먹고 자살했다. 노인 주위에 가족도 없었고 여동생 부부뿐이었다. 노인은 30여년간 방 한 칸에 부엌 딸린 850만 원 짜리 전세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노인이 살던 집은 폐가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노인은 청각 장애인이어서 아무 일도 못했다. 집 전체가 경매에 넘어가게 되어 전 재산을 잃고 자기 돈도 아닌 전세 보증금을 잃게 되자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독거노인은 1998년 49만 4695명에서 2004년 73만 5000명으로 48%나 증가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이 크게 늘고 있다. 부끄럽게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통계 자료를 모아 국내 통계청 자료와 비교 분석한 결과 한국의 노인 자살률이 30개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2003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65세 이상 노인 276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연령대의 노인 10만명당 71명꼴이었다. 반면 미국. 호주는 10만명당 10명대였다. 세부적으로 보면 65~74세에선 한국이 룩셈부르크와 함께 30개국 중 최고 수준(10만명당 58명)이었고, 75세 이상(103명)에서도 가장 높았다. 아시아 국가와 비교해도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자살률은 국제사회에 자살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32명)의 두 배 이상이었다.

더 큰 문제는 그 증가 속도다. 지난 10년 동안 세 배 이상 뛰었다. 특히 2000년과 2003년 사이 10만명당 26명에서 71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증가 추세는 지난해에도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노인 자살자는 2003년 717명에서 지난해 775명으로 늘었다. 보건사회연구원 석재은 노인복지연구팀장도 급격한 핵가족화와 사회안전망 부재에서 원인을 찾는다. “노인은 과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도 자신을 부양할 것으로 기대하고 아무 대비를 하지 않았다. 반면 자녀는 사회에 부양책임을 돌리려 한다. 하지만 사회 인프라는 아직 바닥 수준이다. 한국 노인은 자녀부양에서 국가부양으로 옮겨가는 시기에 무방비 상태에 놓인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노인생활실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노인(3278명) 중 자녀와 함께 사는 비율은 1998년 53.2%에서 지난해 43.5%로 줄었다. 이와 별도로 취재팀이 지난해 서울지역 노인 자살자를 추적 조사한 결과 혼자 사는 노인의 자살률이 부인, 자녀와 함께 사는 노인의 세 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가운데 1위라는 통계는 더 이상 충격이 아니다. 독거노인들이 일반 노인들보다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일이 세 배나 많다는 분석도 부모와 별거 중인 자녀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그만큼 한국의 노인들은 자녀와 사회, 그리고 국가로부터 소외당하고 있었다. 달동네의 한 할아버지는 “이가 없어서 낡은 녹즙기에 밥과 김치를 섞어서 갈아 마신다” 고 하소연했다. 가난한 독거 노인들은 한결같이 “사는 것이 지옥이다. 빨리 죽고 싶다”고 토로했다.

일본의 경우 매년 유서 등을 통해 자살 원인을 자세히 통계 낸다. 또 직업별, 배우자 유무별, 가족 형태 등으로 종합 분석한 뒤 책 한 권 분량으로 만들어 일반에 공개한다. 정확한 자살실태 파악, 이를 근거로 한 사회적 대책 수립 등 체계적으로 자살예방대책을 진행중인 일본의 노인 자살률은 우리나라의 절반 이하에 불과하다. 물론 정부는 노인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실태 파악이 제대로 안 돼 있는 상황에서 믿을 만한 대책이 나올 수 있을까.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
jtoh@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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