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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영광사(靈光寺)서 만난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가난한 티베트 스님에게서
가슴 따뜻해지는 인연 배워


지난주에는 북경 교외에 있는 영광사(靈光寺)에 다녀왔다. 영광사는 북경시 서쪽에 있는 소서산(小西山) 팔대처(八大處)라는 곳에 위치한 사찰로, 중국 정부로부터 종교 활동 허가를 받은 몇 안되는 사찰중 하나이다. 영광사 앞마당에는 부처님 치아 사리가 안치된 웅장한 탑이 있어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맞이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영광사를 찾아간 날이 초하루 라 법회도 참석할 겸, 단풍 구경도 할 겸 해서 절을 찾은 이들이 많았다.

내가 영광사를 찾은 이유는 티베트에서 온 젊은 스님 한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는 도반이 소개한 바에 따르면 그 스님은 중국 한어(漢語)를 공부하기 위해 북경까지 왔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절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려고 하니 스님들끼리도 중국어를 가르쳐 주고 일종의 과외비 같은 것을 요구해서 힘들어 하고 있다는 형편이라고 한다. 북경에서 1년 넘게 살면서 복을 제대로 짓지 못해 아쉬웠던 차에 같은 유학생 처지이지만 사정이 그나마 나은 내가 좀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스님은 나중에 티베트 불교 경전을 중국 한어로 번역해서 포교 활동을 하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다 한다.

막상 그 스님을 뵙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동안이었다. 스님 생활을 15년 넘게 했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속세 나이는 이제 26살이란다. 신기한 것은 여름에 내가 동티베트 지역을 방문했을 때 머물렀던 라브렁스 티베트 사원에서 14년간 살면서 공부를 한 스님이었다. 이것도 정말 인연인가 보다 싶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처음 은사 스님에게서 라브렁스 사원을 떠나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싼 기차를 타고 몇일을 걸려 아는 지인이 있는 중국 남쪽 하문(厦門)의 어느 절까지 내려갔단다. 그곳에서 중국식으로 다시 계(戒)를 받고 공부를 좀 하다가 인연이 되어서 북경 영광사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티베트 사원에서 공부할 때랑 중국 한족 사찰에서 공부하는 것이 많이 달라 힘들어 하는 눈치였다. 먼저 티베트에서는 스님들이 존중과 경외의 대상인데 북경에서는 사람들이 본인을 희한한 사람 쳐다보듯이 본다는 것이다. 사찰 안에서도 티베트에서는 선배 스님들에게 불법을 물으면 서로 가르쳐 주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반대로 귀찮아하는 눈치를 준단다.

점심 공양을 하고 스님 방에 들어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계속 나누게 되었다. 얼마나 정이 많은지 얼마 되지 않는 짐 꾸러미에서 티베트에서 가져온 차(茶)며 제사를 지내고 받은 과자 등을 다 내놓는 것이었다. 마치 전생의 사형 사제가 다시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본인의 머리가 아둔해서 배워도 자꾸 잊어버린다고 하는데 내가 보니 그것은 겸손일 뿐 상당히 똑똑한 사람이었다. 영광사 맨 아래 택시 타는 곳까지 마중을 나와 나를 보내면서 한달에 100위안 받는 보시에서 무려 10위안을 택시 기사에게 주면서 근처 지하철역까지 부탁한다고 했다. 그 분의 마음 씀씀이에 얼마나 미안한지, 훨씬 좋은 조건에서 공부하는 내가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공부할 때 쓰라고 마다하는 손짓 사이로 그이 주머니 안에 다시 그 돈을 넣어주고 택시를 탔다. 돌아오면서 나는 복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좋은 인연이 사는 곳곳에서 생기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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