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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째 매일 3000배 하는 부산 영도초교 정경희 교사

마음이 차돌같으면 몸은 절로 따라오죠

불꽃속을 헤매이고 독사굴에 깊이빠져
나를위해 남해치니 자나깨나 죄뿐이라
천생만생 쌓은업장 큰허공에 가득차니
많고많은 모든허물 그 어찌 하오리까

거듭거듭 쌓인의심 낱낱이 부수어서
모든마군 항복받고 무상대도 넓히오며
살을베고 뼈를갈아 시방제불 섬기옵고
불을이고 팔을끊어 모든법문 통달하리
-예불대참회문 중

 

 

1996년 봄 정경희(46, 대영암) 씨는 대학 1년 후배이자 동갑내기 교사를 만나면서 운명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훗날 교사직을 버리고 비구니 스님이 된 그 친구는 정 씨에게 틈틈이 불교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었고 불서도 건네주었다. 그동안 삼배 한 번 해 본적 없던 정 씨였건만 친구가 들려준 부처님 가르침과 스님들의 말씀은 그의 가슴속에서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내가 이걸 몰랐을까’, ‘내가 왜 지금껏 이걸 모르고 살았을까.’

절망의 끝에서 절수행 시작

정 씨는 그동안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고 그저 꿋꿋이 견디어 내야 하는 건 줄로만 알았다. 찢어질 듯 가난한 생활이었기에 미술가의 꿈은 일찍 포기해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사고로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우리 형편에 무슨 대학이냐”며 반대하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며 선택한 교육대학. 그곳에서 서클활동을 하며 만난 8년 연상의 선배와 스물 셋에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은 정 씨를 행복으로 이끌어주지 않았다.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건축설계를 하는 남편을 따라 서울로 상경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사경을 헤매게 된 것이다. 두 달 만에 겨우 퇴원은 했지만 남편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고 그런 남편과 함께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와야 했다.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초등학교 임시교사 생활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던 정 씨는 때마침 부활한 첫 임용고시에 합격해 다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정 씨의 삶은 여전히 순탄치 않았다. 갑자기 시누이가 세상을 뜨더니 얼마 뒤에는 시어머니까지 돌아가셨고 정 씨 자신도 위경련으로 수차례 응급실에 실려 가고는 했다.

“병이 가장 좋은 양약이라고 했잖아요. 제가 살아온 날들이 고통스럽지 않았다면 이 좋은 불법을 어찌 만날 수 있겠어요. 이제 지나간 날들도 모두 소중하고 감사할 뿐입니다.”

정 씨는 이후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불교를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경전과 이런 저런 큰스님들의 책도 부지런히 읽었다. 특히 성철 스님의 『자기를 바로 봅시다』와 청담 스님의 『금강경 대강좌』를 볼 때는 감동이 전율처럼 밀려들기도 했다.

정 씨가 처음 절을 시작한 것은 96년 늦여름. 송광사 여름수련회에 다녀온 그 동료교사로부터 그곳에서 매일 500배 씩 했는데 너무 좋았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부터다. 정 씨는 처음 바쁜 일과 속에서 운동한다는 생각으로 108배를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3주 후 절 횟수를 300배로 늘렸다. 절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한없이 편안했기 때문이다. 특히 몇 달 뒤 거울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눈이 선하게 바뀌었음이 느껴졌다. ‘이렇게 1년을 하고 또 1년을 하고 10년 동안 절을 하면 내 몸과 마음은 어떻게 변할까?’

그는 절 횟수를 500배로 늘였고 한 달 뒤 다시 1천 배로 올렸다. 절을 하면 할수록 한 없이 눈물이 솟았고 그동안 모든 문제들이 나로부터 비롯됐음이 뼈저리게 와 닿았다. ‘나는 늘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하며 살아왔지만 나로 인해 내 어머니, 내 남편, 내 아이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누군가가 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를 바라기에 앞서 나는 왜 먼저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을까?’

10년째 절모임 이끌어

절은 정 씨의 위경련을 말끔히 낫게 했을 뿐 아니라 마음속 깊은 그늘까지도 조금씩 걷어갔다. 그는 집에서 혼자 삼천배를 하고 특히 학교 수련회 때 방갈로에서 3일 동안 삼천배를 드렸다. 가슴 밑바닥에서 환희심이 용솟음쳤다. 이런 지극한 행복감은 처음이었다. ‘이런 좋은 법과 수행법을 만났다니…. 모든 것이 감사했다.

얼마 후 그는 다시 친구를 따라 제주도 법성사에 가서 삼천배를 시작했다. 4일 간의 절을 하고 부산으로 돌아가려 할 때 주지 천경 스님은 삼천배를 21일 동안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에 정 씨는 흔쾌히 약속했다. 그러나 당시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계절대학을 다녀야 했던 정 씨에게 이 약속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는 새벽 3시에 일어나 4시간 동안 꼬박 죽기 살기로 절에 매달렸다. 허리는 당장 끊어질 것 같았고 무릎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나중에는 무릎을 짚고 절을 해야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기도만 끝마치게 해달라는 간절함뿐이었다.

‘나는 내 마음자리를 찾기 위해 절을 한다. 내 몸이 자가용이라면 내 마음은 운전수다. 운전수가 자가용을 운전해야지 자가용 가는대로 운전수가 따라갈 수는 없지 않은가? 참회문 구절처럼 살을 베고 뼈를 갈아 시방제불 섬기옵고 불을 이고 팔을 끊어 모든 법문 통달하리라.’

한없이 나약해지는 마음을 추스르며 하루하루를 절로 채워나갔다. 그렇게 21일을 마쳤을 때 정 씨의 몸과 마음은 변해 있었다. 온 몸을 내던지는 움직임 속에 한없이 고요한 세계가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정 씨는 절이 좋았고 이 좋은 절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여기저기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절을 권유했다. 남편과 아이들도 설득했다. 처음 냉담하던 남편도 매일 108배를 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절에 가 삼천배를 시작했다. 정 씨는 학부형이나 친척 등 절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모아 매달 백련암으로 향했다. 처음 10여 명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원이 늘어 나중에는 30~40명, 50~60명으로 크게 늘었다. 정 씨는 사람들에게 절을 권유하기 시작하면서 3000배 1백일기도를 시작했고, 방학 때면 으레 제주도에 가서 매일 5000배 21일, 7000배 21일, 10000배 21일 등 기도를 했다. 물론 처음 절과 함께 시작했던 능엄주도 평상시 21회 염송에서 방학 때면 108번으로 크게 늘렸다. 그런 까닭에 절을 하지 않을 때면 그의 머리 속에서는 늘 능엄주가 돌아갔다.

“독에 물이 꽉 차 있으면 넘치잖아요. 절은 온 몸을 던져 자기를 비워내는 작업입니다. 그 빈자리에 지혜가 생깁니다.”

교사생활을 하며 끝마친 3000배 100일 기도는 정 씨로 하여금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렸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 원력은 자석과 같아서 그에 맞는 인연들을 끌어당겼다. 특히 처음 어린이들이 어떻게 삼천배를 할까 싶었지만 매번 자신을 좇아 제주도 법성사에서 7일에서 21일간 매일 삼천배를 하는 아이들도 방학 때마다 20~30명에 이른다. 심지어 큰 딸은 대학 1년을 다닌 후 휴학하고 200일간 매일 3000배씩 하기도 했고, 모범생인 대학 1학년 둘째 아들 또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매년 방학 때마다 21일간 3000배를 하기도 했다.

만배 21일… 매일 능엄주 21독

그런 정 씨가 지난 99년 1월 다시 12년을 목표로 매일 3000배 정진에 들어갔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정진할 때 남도 더 많이 도울 수 있다는 신념에서였다.

“꾸준해야 합니다. 몸이 힘든 걸 두려워마세요. 몸이 자리를 잡으면 마음은 절로 자리를 잡고 고요해집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한결 같아질 때 참다운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절은 욕망에 이끌리는 우리의 삶이 꿈임을 깨닫도록 해주는 거죠.”

수많은 사람들을 불문(佛門)으로 이끌고 있기에 그 보람이야 비할 바 없겠지만 여전히 차량을 준비하고 큰 목소리로 3000번씩 ‘지심귀명례~’를 선창하는 힘겨움은 여전히 정 씨의 몫이다.

남들이 잠든 새벽 4시, 홀로 일어나 매일 삼천배로 하루를 시작하는 정 씨. “이제는 온갖 유정 무정들의 성불을 위해 기도한다”는 그는 수행은 여건이 아니라 마음에 달렸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원력보살이다.

부산=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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