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주부가 선객될 때 큰 보람
평범한 주부가 선객될 때 큰 보람
  • 법보신문
  • 승인 2005.11.22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 금정선원 이끄는 대명화 정 숙 녀 씨
부산에서 재가 불자들의 수행도량 ‘금정선원’을 운영하는 대명화 정숙녀 보살(52). 호탕한 웃음으로 대중을 이끄는 그는 범어사 선덕 대정 스님을 지도법사로 모시고 50여 명의 불자들에게 참선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정진 시간에는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금정선원이 휴식 시간에는 가족의 온정이 피어나듯 정다운 미소로 가득하다. 불자들에게 정 씨는 선원 운영자이기 이전에 주부의 애환과 고민을 함께 나누는 도반이자 인생 상담자이기 때문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정 씨는 경남 고성에서 유년과 학창시절을 보냈다. 졸업 후 정 씨가 대기업에서 근무할 당시만 해도 삶에 대한, 존재에 대한 고민은 관심 밖이었다. 정 씨의 삶이 180도 달라진 것은 직장을 그만두고 결혼을 하면서부터다.

10년간 범어사 새벽예불 참석

1977년, 정 씨는 남부럽지 않을 만큼 넉넉한 가정의 남편과 함께 부산에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부잣집 딸이 부잣집에 시집가서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정 씨는 스스로 ‘새장 속의 새’라고 생각할 만큼 채워지지 않는 답답함으로 하루하루를 힘겹게 이어갔다.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일이 수천 명을 관리하는 공장의 일보다 더 마음을 고통스럽게 했던 것이다.

결혼 후 1년, 정 씨는 답답함을 안고 범어사에 올랐다. 시부모님이 다니는 사찰이 있었지만 쉽게 인연을 맺지 못했던 반면 집에서 멀지 않았던 범어사에는 이끄는 사람이 없이도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은 것이다. 범어사 대웅전에서, 정 씨는 마음 깊은 곳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돌이켜보면 무심, 무념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정 씨가 온몸 가득 안고 올라갔던 답답함과 공허함의 덩어리들이 염불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그 때부터 정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범어사 대웅전에 올랐다. 사찰예법이나 신행생활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을 따라서 절을 하고 예불을 올렸다. 어느새 예불, 염불, 천수경, 정근이 몸에 배면서 하루 종일 절을 하는 일도 예사였다. 살림을 위해 집에서 범어사를 하루 세 번씩 오르내리면서도 지칠 줄 몰랐다.

정 씨가 기도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는 모습을 지켜 본 남편도 아침 등산 대신 새벽기도에 동참했다. 그렇게 정 씨 부부는 10년 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2시에 일어나 범어사에 올랐다. 처음에는 새벽예불에 참석했고 후에는 전각에 들어가 참회기도와 좌선을 이어갔다. 당시 정 씨는 108배 후 좌복에 앉아 남편과 함께 석가모니불 정근을 시작하면 곧바로 고요함에 들어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던 정 씨가 범어사 선덕 대정 스님의 가르침 아래 화두 참구를 시작한 것은 1989년, 대정 스님이 범어사에 주석하면서부터다. 수십 년 간 토굴수행을 이어온 대정 스님이 상당법문에서 ‘도(道)’라고 이르는 한 마디에 정 씨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던 것. 정 씨는 대정 스님의 선법에 감화를 받아 남편과 함께 스님을 친견한 자리에서 ‘대명화(大明華)’라는 불명과 ‘이뭣고’ 화두를 받고 체계적인 수행을 시작했다.

94년 사재 털어 선원 개원

정 씨가 대정 스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가장 달라진 것은 일상생활에서도 수행을 실천한 점이다. 집에서도 앉는 그 자리에서 화두를 잡는가 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참선을 시작해서 그대로 새벽을 맞이하기도 했다.

가끔 떠오르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은 스스로를 더욱 부끄럽게 했다. 넉넉한 가정환경에서도 세상에 대한 불만, 물질에만 집착했던 지난날에 대한 참회는 사람들에게 불교의 바른 가르침을 전하고 행복으로 이끌겠다는 발원으로 이어졌다. 정 씨의 발원이 커지면서 정 씨 주변에는 소리 없이 불자들이 모이고 있었다.

범어사 보살선원이 개설되기 전이었던 1994년, 정 씨는 자신의 발원을 실천했다. 부산 두실 지하철 역 부근에 대명선원을 개원한 것이다. 시민 개방선원을 자청하고 정 씨의 불명을 따서 이름도 대명선원이라고 지었다. 선원을 찾는 불자들이 늘어나면서 경동아파트 내 여여선당으로 자리를 옮긴 대명선원은 지난 2003년 현재 위치의 장전동에 6층 건물을 짓고 금정선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금정선원의 정진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빠짐없이 이어진다. 화두는 대정 스님을 찾아가서 직접 받고 있으며 몇 년 전부터 대정 스님은 동안거, 하안거 결제 때 선원에서 직접 법문을 통해 불자들의 신심을 독려해주고 있다. 선원 1층에는 갈 곳 없는 어르신들을 10여 명 모시고 있다. 어르신들이 자연스럽게 불자가 된 것은 물론이다.

금정선원에는 초심자부터 여든이 넘은 베테랑 불자까지 다양한 불자들이 각자의 근기에 맞는 수행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도한다. 최근 선차회를 시작한 것도 특징이다. 차 문화는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고 보다 편안하게 참선으로 들어가는 거름이 된다고 정 씨는 말한다. 정 씨는 고향 고성에 대규모 차밭을 조성하고 전통차 생산에 나설 계획도 갖고 있다.

아무리 새벽기도를 같이 해온 남편이지만, 정 씨가 수행에 몰두하고 이웃의 어려움을 그냥 넘기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한때 이혼의 위기도 있었다. 심지어 시부모님의 땅에 선원을 만들겠다고 제안했을 때는 시부모님이 집을 나가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 씨는 가족간의 갈등도 경계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흔들림 없이 가족을 향한 믿음으로 생활을 이어갔다. 화합을 발원하는 정 씨에게 시부모님도, 남편도, 슬하의 두 아들도 이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있다.

정 씨는 그래서 힘겨워하는 불자들에게 항상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정 스님이 마음의 스승

“자신부터 다스릴 수 있어야 나의 가족, 친척, 이웃을 이해하고 돌볼 수 있습니다. 특히 한 가정의 주부라면 자신을 바로 세우고 확신을 갖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죠. 그 첫 번째 길이 양심, 본심, 진심으로 살아가며 참선을 통해 업을 소멸시키는 일입니다. 자신부터 다스리고 가족을 돌볼 줄 안다면 우리 사회, 국가가 불국토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요.”

“수행이 재미있는걸 보면 전생에 스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정 씨. 또한 남자든 여자든 출가인이든 세속인이든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행복과 대자유를 찾아서 정진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정 씨.

굳이 전생을 언급하지 않아도, 정 씨는 맑고 깨끗하고 고요함을 추구하는 수행자요, 나눔을 실천하는 보현보살이었다.

부산지사=주영미 기자ez001@beopbo.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