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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들고 힘든 이 보면[br]삼천배 간곡히 권하죠

기자명 법보신문
13년간 매일 절-능엄주 정진
(주)광신에어텍 박 병 규 회장


부산에 거주하는 (주)광신에어텍 회장 박병규 (66, 복호)씨는 오전 6시, 눈을 뜨면 제일 먼저 거실로 향한다. 원상 앞에 향을 하나 사르고 예불대참회문을 부르며 절을 하기 위해서다. 13년 째 매일 300배와 능엄주 3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박 회장은 울산에 있는 회사에 출근해서도 별도로 마련한 기도실에서 목탁을 치며 업무의 시작을 알린다. 백련암과 그 말사인 부산 고심정사 등에서 법회나 재가 있는 날에는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아내와 함께 장을 보고 채소와 과일을 한가득 차에 싣고 절로 향하는 일도 예사다.

매일 300배-능엄주 3독

중견 중소기업을 이끌면서도 정진을 거듭하는 활기찬 미소의 박 회장은 사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죽음의 고비를 넘나들었던 간암 환자였다.

박 회장이 자신의 병을 알게 된 것은 1980년 설 연휴 때다. 여느 집안과 다름없이 박 회장 가족도 오랜만에 얼굴을 맞대고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꽃을 활짝 피우던 무렵, 박 회장은 갑자기 심한 구역질로 인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진단 결과는 만성간염. 평소 건강만큼은 자신 있던 박 회장이기에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10년 공무원 생활을 접고 매제와 함께 공구상가에서 자영업을 시작해 의욕에 차 있었던 박 회장은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발병 10개월이 지났을 때 부산 서대신동의 간 전문 의원을 다니면서는 다행히 병세가 호전을 보였다. 두 달간의 치료 후 피로와 과음은 절대 안 된다는 담당 의사의 당부와 함께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꺼져가는 호롱불에 기름을 새로 부은 것처럼 심신의 활력을 되찾은 박 회장은 그 동안의 치료비와 쌓인 빚을 청산하기 위해 1981년 11월부터 울산에 작은 사무실을 마련, ‘한신기계’라는 상호로 산업기계 납품과 수리를 담당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전화조차 빌려 쓸 정도로 작은 사업이었지만 박 회장은 밤낮없이 일에 전념했다. 그러나 점점 커지는 일의 규모만큼 피로는 누적됐고 결국은 간염이 재발했다. 두 번째 재발에서 간경화, 세 번째는 간암을, 1988년 10월 악성 종양 진단까지 받았다. 동전 크기 만한 구멍이 간 한복판에 뚫려 있었던 것이다. 박 회장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절망의 시간만을 보내던 박 회장이 백련암을 처음 찾게 된 것은 1993년 7월, 친구 부친 49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박 회장의 아내는 박 회장보다 먼저 백련암에 다니기 시작해 3천배를 마치고 법명까지 받았으나 박 회장에게 백련암은 여전히 생소한 도량이었다. 3재가 되던 날, 금강굴에서 박 회장의 병고를 전해들은 불필 스님은 박 회장에게 매일 3백배와 능엄주 독송을 3년간 해보라고 제안했다. 박 회장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날부터 매일 3백배를 했고, 얼마 뒤 박 회장이 4재에 맞춰 백련암을 다시 찾았을 때는 마침 삼천배 참회기도가 열리는 날이었다.

절수행으로 간암-악성종양 완치

박 회장은 평소 마음만 먹고 있던 3천배 참회기도를 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숱한 사람들 사이에 섰다. 영가천도재를 마칠 때 겨우 천오백배를 마치자 주변 여러 사람들이 아픈 그를 만류했지만 의지를 더욱 굳건하게 다졌다. 마의 고비라는 2천7백배를 넘긴 박 회장은 마지막 힘을 다해 3천배를 마친 뒤 혹시 빠진 절을 채우는 마음으로 30배를 더 하고 3천배 참회기도를 회향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박 회장은 도반들께 인사를 하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지난날의 삶. 병으로 인한 고통. 아내를 마음 아프게 한 것. 모든 일에 대한 참회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철철 흘러내렸다.

3천배를 마치고 만난 성철 스님은 자상하고 인자한 미소로 박 회장을 격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 회장은 그것이 성철 스님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박 회장은 성철 스님을 친견한 3천배 회향자 중 마지막 거사였다는 사실을 스님의 열반 소식을 접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다.
‘왜 일찍 백련암을 못 찾았을까. 사람들이 그토록 백련암에 가자고 권유할 때 왜 안 갔을까.’ 불필스님의 제안은 마치 성철 스님을 대신해서 박 회장에게 던져 준 숙제처럼 다가왔다. 박 회장은 첫 3천배를 마친 이후 매월 첫째, 셋째 토요일은 백련암에서 3천배 참회기도를 하고 매일 3백배와 능엄주를 꼬박꼬박 실천했다. 백련암에서 봉행되는 정기 아비라 기도에도 빠지지 않았다. 절과 기도는 자연스럽게 자신을 위한 기도에서 남을 위한 발원으로 이어졌다.

박 회장은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은 막내’라는 생각으로 머슴처럼 백련암 일을 돕기도 했다. 특히 대중공양을 위한 콩나물 보시도 소리 없이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박 회장의 아내 대삼인 보살도 필수품이나 가재도구, 남이 쓰지 않는 의류 등을 모아서 산골 마을이나 사찰에 보내는 일을 실천했다.

박 회장이 기도와 수행, 보시바라밀을 실천한 지 3년이 흐른 뒤, 간에 생겼던 동전 100원 짜리 크기의 구멍은 어디론가 말끔히 사라졌고, GOT, GPT도 정상인보다 더 좋다는 결과를 얻었다. 담당 의사도 깜짝 놀랄 일이었다. 정작 박 회장 자신은 의연했다. 신심이 깊어질수록 변화하는 몸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이 건강을 되찾으면서 다시 시작한 사업은 울산에서 기반을 잡고 한신기계에서 (주)광신에어텍, (주)코리아 에어터보라는 중소기업으로 발전했다. 현재 박 회장은 울산 중소기업협회 간부를 맡을 만큼 역량 있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또 그 동안 쌓아온 사업 노하우와 최신 기술을 병합해 새로운 사업 아이템 구상에도 한창이다.

병이 호전되고 사업을 발전시키면서 더욱 바빠진 박 회장의 일상이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수행이다. “아비라 기도는 가장 힘들지만 참여하지 않으면 허전하고 오히려 몸이 더 아플 정도”라는 박 회장의 모습이 백련암 거사림회 초대 회장을 맡고 아비라 기도를 리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백련암 아비라기도 이끌어

언제부터인가 박 회장은 아픈 도반이 있으면 절 수행을 권한다. “우스개 말이 아니라 정말 내가 살아 있는 장본인이잖아요. 자신의 욕심이 아닌 스스로 참회하고 남이 잘되도록 절을 하다보면 복은 애써 구하지 않아도 오게 됩니다.”

박 회장은 누군가 어려움을 호소하면 그날의 기도에는 “그 사람이 어려움 이겨낼 수 있는 지혜를 기르게 해주십시오”라는 발원을 잊지 않는다. 부처님이 일체 중생 모두에게 깨달음을 회향한 것처럼, 성철 스님이 남을 위해 기도하라고 당부한 것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잘한 것이 없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할 것”이라는 박 회장은 어느 덧 소박하고 자비로운 노거사의 모습으로 성철 스님을 닮아가고 있었다.

부산지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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