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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천송반야경』 ④

기자명 법보신문

반야란 보살이 일으키는 참된 사랑의 빛

대승불교가 흥기하기 이전의 불도를 걷는 이들이 주로 출가를 중심으로 한 수행자 그룹이었다면, 대승불교시대가 되면 그 불도수행의 주체는 보살마하살이 된다. 보살마하살을 약칭해 보살이라고도 하는데, 그 뜻으로 보면 이 말은 실로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보살이란 보리의 성품을 지닌 존재 혹은 보리를 향해 나아가는 존재를 의미하며, 다시 그러한 존재들이 다른 유정들을 행복의 세계로 이끌어 가기에 마하살, 곧 위대한 유정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

팔천송반야에서의 주제는 변함없이 반야이다. 무엇을 얘기해도 그것은 다 반야를 내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때로는 철학적인 뉘앙스가 강하고 그 설명의 방식이 어렵고 진부하기도 하지만, 소품반야 전체를 통해 본다면 반야를 일으키는 길은 지극히 평범한 데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너무나도 평범하기에 사람들은 그러한 것조차 반야의 길인 줄을 눈치 채지 못할 뿐이다.

샤리푸트라여, 나는 고난의 행을 실천하면서 닦는 보살마하살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고통스럽다고 하면서 행하는 자 역시 보살마하살이 아닙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고통스럽다는 생각으로는 무량무수의 유정을 위해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보살마하살은 즐겁다는 생각으로 행하면서 일체 유정에 대해 그들이 마치 자신의 어머니이고 아버지이고 아들이고 딸이라고 생각하면서 보살행을 실천해야 합니다.(팔천송반야바라밀다경, 제1장)

수부티가 샤리푸트라에게 보살도를 가는 보살의 마음가짐에 대해 말해주는 장면이다. 반야를 향해 가는 보살은 무엇보다도 유정에 대한 참된 애착을 지녀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삶에 환희하고 유정을 사랑할 줄 아는 자가 반야의 길을 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일으키는 괴로움의 원인을 쉽게 다른 존재들에게서 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나를 둘러싼 세상이 바로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알게 된다. 그래서 초기나 부파불교시대의 수행자들은 그 고의 원인이 되는 속세를 근본적으로 여의고자 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대승이 되면 보살은 이제 그 속세를 떠날 수가 없다. 자기 하나 감당하기 힘든 삶이고, 나 하나조차 이루기 힘든 깨달음의 세계이지만, 그래도 보살은 뭇 유정들을 모두 이끌고 저 행복의 세계로 함께 가야겠다고 위대한 서원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유정들을 사랑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반야를 향해 가는 보살은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존재가 되어 갈 뿐이다. 그리고 유정들 역시 행복한 그를 믿고 함께 붓다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반야사상에서는 마음가짐 하나 바꿔 행복한 존재가 되라고 한다. 그리하여 삶을 이해하고 삶을 불쌍히 여기고 삶을 사랑하는 자가 될 것을 요구한다. 고난의 삶이라 하면서 공덕을 바라는 마음에 억지로 행한다면, 뜻이야 장해 보이지만 지혜의 빛은 끝내 일어나지 않는다. 기왕이면 즐겁고 사랑스럽고 행복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행해야 가없는 길을 가게 되고, 그래야 붓다께서도 칭찬하시는 삶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원래 불교에서는 쾌락은 물론이거니와 고행도 인정하지 않는다. 고오타마 붓다는 덧없는 삶을 눈치재치 못한 채 쾌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속세가 싫어 출가를 하신다. 그리고는 당시 유행하던 갖은 고행을 경험하시니, 목숨조차 위태롭게 하는 극한 고행 끝에 급기야는 고행주의를 포기하고 마신다.

고락중도. 이를 괴로움과 즐거움의 중간 길 정도로 이해한다면 이는 협소한 소승의 입장에 떨어지고 만다. 물론 원시불교나 부파시대의 불교외의 고행주의가 다분히 자기 가학적인 측면이 있었기에 이러한 입장을 취한 것이겠지만, 대승반야의 입장이 되면 이제 환희만이 유일한 보살의 길이 된다. 왜냐하면 이제 일체법이 수행의 대상이 되고, 일체의 삶이 수행의 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반야란 보살이 일으키는 참된 사랑의 빛이라고나 해야 하리라.

김형준 박사(경전연구소 상임연구원)
jhanaki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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