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는 공부
먹고 마시는 공부
  • 법보신문
  • 승인 2005.12.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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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스스로 온전한 삶의 길 알고 있어
음식-의학에 대한 지나친 분별이 해악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요즘 사람들은 몸에 좋다고 하면 무엇이든 구해 먹지 못해 안달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특정 음식이 몸에 좋거나 나쁘다고 딱 정해놓는 것은 도무지 공감할 수 없다. 좋고 나쁜 음식이 어찌 따로 정해져 있겠는가.

머리 속에 음식에 대한 지식이 많고 그대로 골라 먹기만 한다면 그것 자체가 우리 몸을 많이 상하게 하고 말 것이다. 지식대로 음식을 먹는 것이나 몸에 좋으니 먹는 것 보다는, 먹고 싶은 것을 즐겁고 맛있게 먹는 것이 더 근원적인 식단이 아닐까.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몸과 마음이 먹고 싶지 않다면 그것은 필요치 않다는 증거다. 우리 몸은 제 스스로 필요한 양분이 무엇인지를 알고, 또한 스스로 그에 합당한 음식을 찾게 되어 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우리 인체의 신비로운 조화다. 『몸에 좋은 산야초』에서는 칼슘이 부족한 아이들은 화로의 잿속에 손가락을 넣고 핥거나 흙을 파서 먹음으로써 몸에 부족한 칼슘 성분을 향해 본능적인 친화력을 느낀다고 말하고 있다. 자연은 또 어떤가. 한참 찌는 더위에는 수분이 부족하여 누구나 자연스럽게 물기 많은 먹거리를 찾는데 이 우주는 그런 요구에 맞춰 스스로 물기 많은 수박이나 오이 같은 음식을 이 대지로 내어 줌으로써 한없는 자비를 베풀고 있다.

이처럼 우리 몸도, 대자연도 온전한 삶의 길을 알고 있다. 이 우주라는 곳이 본디 그렇듯 저마다의 생명의 진리를 조화롭게 피워 올리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다만 내면의 진리와 바깥의 대자연의 진리에 내맡기고 살기만 하면 된다.

그동안 우리는 음식에 대한, 또 의학에 대한 지나친 분별과 지식에 휩싸여 우리 스스로의 자연 치유 능력을 잠재워 왔다. 언제나 충만한 내면의 진리와 대자연의 진리를 망각한 채 욕심과 어리석음이 만들어 낸 온갖 지식과 상술에 휘둘려 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이기와 욕심에서 기인하는 얄팍한 지식이 아닌 사람과 자연 그 내면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지혜의 숨결이다. 바로 그 지혜에 나를 맡기는 것만이 온전하다. 소중한 내 몸을 다른 어느 누구에게 맡기겠는가. 내가 치료할 수 없으면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적인 생명력이요 그것이 바로 나와 대자연이 합작해 내는 자연치유의 힘이다.

그렇다고 패스트푸드를 먹으면서 안에서 스스로 필요로 하는 음식이니 먹어도 된다고 할 것인가. 그것은 대자연의 진리가 깃든 음식이 아닌 인간의 입맛과 편리성에 따라 욕심과 상술이 만들어 낸 쓰레기음식, 정크푸드에 불과하다.

앞서 말한 마음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란 대자연이 길러낸, 인간의 이기와 무명이 개입되지 않은 먹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음식은 내적인 생명력, 자연치유력을 강화시켜 주고 그랬을 때 우리 몸에는 어떤 병도 침범하지 못한다. 모든 병의 문제는 병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병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올 수 밖에 없도록 방치해 놓은 내 몸에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정신을 올곧게 지키는 것 만큼 육신을 잘 지키고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 몸와 마음이 둘이 아닌 까닭이다. 마음처럼 당신의 몸은 안녕한가?

법상 스님 buda1109@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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