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움켜쥔 욕심 내려놓으면[br]모두가 행복해집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불우이웃 32곳 후원하는 홍천 해인정사 정 혜 스님

<사진설명>정혜 스님은 가난한 절의 주지이지만 늘 주변에 나누어주고 베푸는 넉넉함이 있기에 마음만은 누구보다 부자다.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시던 어느날 미륵보살이 부처님께 문안드리고 여쭈었다.
“보살은 몇 가지 법을 성취해야 보시바라밀을 행하고, 육바라밀을 갖추어 깨달음을 이룰 수 있나이까?” “보살이 보시할 때에는 모든 생명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벽지불에서 범부에 이르기까지 평등한 마음으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베풀어야 하느니라. 자기의 눈이나 재물 등 귀중한 것을 주더라도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할 때는 자기만의 깨달음을 위해서 하지 말고, 모든 중생들의 공덕을 위해서 하느니라. 보살이 보시할 때에는 보시바라밀을 가지고 나머지 다섯 가지 바라밀도 모두 이루어지기를 서원해야 하느니라.” 『증일아함경』 「등취사제품」


절반은 도시로 떠나버린 듯 한산한 농촌마을을 끼고 자리 잡은 강원도 홍천군 동막리 해인정사. 대부분 시골사찰들이 그렇듯 이곳 역시 신도도 몇 안 되고 절 운영도 빠듯한 가난한 기도도량이다. 그러나 이곳 주지 정혜 스님은 마음만은 누구보다 부자다. 늘 주변에 나누어주고 베푸는 넉넉함이 있기 때문이다.

정혜 스님이 현재 도움의 손길을 주고 있는 곳은 생명나눔실천회, 선재동자원, 의정부 좋은 사람들의 모임, 적십자 참사랑회, 한마음 교통봉사대, 무료급식 모임 무루회, 티베트 스님 복지성금, 진주장애인 복지관, 안양교도소, 명동 보육원 등 32곳. 여기에 홍천군 내 불우한 독거노인 13세대와 가평군 내 소년소녀 가장 8세대에게 자비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또 밭에 무와 배추 등을 심어 복지단체에 기증하기도 하고 직접 김장김치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번 겨울에도 스님은 배추 600포기를 혼자 21일간 담궈 주변에 나눠주기도 했다.

마을 돌며 불우이웃에 쌀 전달

“많이 가졌다고 도울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관심을 갖고 주변을 둘러보면 도와줄 곳이 너무도 많습니다.”

스님이 주변 사람들을 돕기 시작한 것은 지난 90년대 말. 지리산에서 출가해 그곳에서 오랫동안 정진하던 스님은 몇 해 뒤 갑사 주변에 천막을 치고 관음기도에 들어갔다. 한 때 중소기업을 운영하다가 불교와 인연이 닿은 후 모든 것을 주변에 희사하고 출가자의 길을 선택한 스님은 무소유의 삶을 몸에 익혀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마을과 인접한 곳에서 정진하던 스님은 간혹 재일 때 들어오는 떡과 과일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면서 마을에는 맹물에 물 말아 먹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진 것은 적지만 그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애썼다. 출가하기 전 악착스레 돈만을 위해 살아오며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상처 주었던 일들에 대한 참회의 마음도 담겨있었다.

혼자 배추 600포기 담궈 보시

스님은 2001년 11월 한 불자가 홍천에 땅을 마련해 희사함에 따라 이곳에 조립식 법당을 짓고 본격적인 포교에 나섰다. 그러나 시골 형편을 알게 된 스님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거동도 힘든 노인들 혼자 사는 곳도 많았고,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웃들조차 무관심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스님은 밤새워 절을 하고 기도하며 그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스님은 낮이면 곡괭이를 들고 밭을 일구는 한편 저녁때면 몇몇 신도들이 가져오는 쌀을 짊어지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일부에서는 먹을 걸로 사람들을 회유하려 한다는 등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님은 이장으로부터 소개받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쌀, 밀가루, 라면 등을 전달했다. 또 헌 옷가지를 모아 동대문 시장에 나가 바자회를 열어 후원금을 마련하기도 하고, 겨울이면 신도들과 독거노인들과 맺어주어 난방비를 지원해주도록 했다. 그러나 도와줄 곳은 많았고 가진 것은 턱없이 적었다. 나누어주다보면 절에 쌀 한 톨 없을 때도 있었고, 일부 신도들은 절에 나오는 게 부담스럽다며 발길을 끊는 사람도 있었다.
지난해 초겨울 절 살림이 어려워지면서 당분간 마을 후원하는 곳을 줄일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무렵이었다. 점심 공양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스님은 팔순을 넘긴 한 할머니가 마당 한 켠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스님이 후원하던 마을의 노인인데 쌀이 오지 않아 새벽에 집을 나서 수십 리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스님은 걷기조차 힘들어하는 이 분이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죄송해요, 할머니. 죄송해요.” 절에 있는 쌀과 라면을 톡톡 털어 차에 싣고 할머니를 집까지 모셔드렸다. 마당 가득한 이끼에 온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냉방, 사람이 사는 곳 같지 않았다.

절로 돌아오는 길에 스님은 무엇인가 획기적인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청국장, 고추장, 된장 등을 만들어 팔아 후원금을 마련해야겠다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때마침 오랫동안 행자생활을 하면서 배운 노하우도 있었다. 다음날 홍천에서 난 콩 4가마를 사들여 메주를 만든 스님은 방을 하나 비워 그곳에 메주 600여 개를 주렁주렁 매달아놓았다.

“도와드려야 하는 데도 도울 수 없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속상한지 모릅니다. 이제 메주를 보고 있으면 흐뭇해요. 봄이 되면 이것을 팔아 배고픈 사람에게 쌀 한 되박, 밥 한 숟가락 더 퍼 드릴 수 있을테니까요.”

<사진설명>정혜 스님이 후원금 마련을 위해 만든 메주.

된장 팔아 후원금 마련 계획

육바라밀의 첫 번째인 보시바라밀. 대승불교에서는 보시를 고해를 건너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수승한 행이라고 일컬어왔다. 그러나 끊임없이 움켜쥐려는 욕심은 주는 이도 받는 이도 없다는 무주상보시는커녕 상(相) 있는 보시조차도 실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정혜 스님의 풋풋한 보시행이 더욱 빛나는 것도 돈이 최고의 가치로 떠받들어지는 서글픈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033)435-6063

홍천=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