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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악 뽀안(Neak Pean)(5)

기자명 이우상


우주의 정상에 핀 연꽃 봉오리

우린 아무래도 거대하고 웅장한 것에는 덜 익숙하다. 좁은 한반도 태생이란 유전인자가 몸의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모양이다. 작고 아담한 것은 솔깃이 정겹다. 여자 또한 그럴 것인데 요즘은 크고 늘씬한 팔등신이 미인의 척도가 되어버렸다. 서구적 물상이 모든 가치를 지배하는 세상이어서 그런가. 앙코르의 곳곳에 새겨진 천상의 댄서 압살라는 그렇지 않다. 가늘게 내리깐 눈으로 바라보는 도발적이지 않은 표정, 가는 허리, 도톰한 유방을 가진 아담한 처녀의 모습이다.

니악 뽀안은 수반 위에 올려놓은 연꽃 같다. 수반이 조금 크긴 하지만 다른 유적에 비하면 앙증맞다. 각 변 길이가 70 미터인 사각 연못의 가운데 중앙탑이 있다. 동심원 형태의 계단을 올라가면 연꽃 모양 조각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마음의 눈을 열고 바라본다면 잔잔한 수반에 핀 연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니악 뽀안은 석가에게 바친 사원이다. 탑신의 벽면에는 석가의 일생이 새겨져 있다. 동쪽에는 삭발하는 모습, 북쪽에는 출가하여 순례하는 모습, 서쪽에는 명상하는 석가를 보호하는 머리 여섯 달린 뱀을 묘사한 조각이 있다.

히말라야 호수 ' 아나바타프타 '상징

니악 뽀안은 우기(5월 중순~11월 중순)에 방문하는 것이 더 좋다. 물이 가득 찬 연못 한가운데 우뚝 솟은 연꽃탑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건기(11월 중순 - 5월 중순)에는 물이 말라버려 물이 없는 수반에 연꽃 봉오리만 외롭다. 연못은 우주의 가장 꼭대기인 히말라야에 있는 호수 아나바타프타를 상징한다. 아나바타프타 호수는 문명을 탄생시킨 4대 강의 근원지이다. 그 중앙에 깨달음의 큰 스승 석가가 있다. 대상을 상징화하고 상징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자 축복이다. 깨달음은 그 특권과 축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닐까.

1000여평 남짓한 규모이니 휙 둘러본다면 10분이면 족하다. 단체 관광객들은 그렇게 한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아쉽고 아깝다. 이곳 역시 정방형과 원을 구도로 한 만다라이다. 우주를 한 눈에 볼 수 있을진데 쫓기듯이 후다닥 떠날 수는 없다. 섬의 서쪽에는 섬을 향하여 헤엄쳐 오는 말의 형상이 있다. 물론 부서진 모양이다. 말꼬리에는 사람의 형상도 있다. 이 말은 관세음보살의 현신인 바라하(Balaha)이다. 그는 불운한 동료 상인 심하라(Simhala)를 구하기 위해 말로 태어났다.

붓다가 있는 곳으로 힘차게 헤엄쳐 오는 말의 정성이 가상하다. 그러나 불과 20여미터 앞까지 와 있지만 붓다에게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앞다리가 잘리고 두상이 반쯤 깨어진 모습이다. 허우적거리며 천년 동안 헤엄쳐서라도 다가가길 기원한다. 깨달음을 얻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터이니. 말꼬리에 매달린 사람들의 형상 또한 장하나 애달프다. 어깨에 돌덩어리를 지고 있다.

그러나 팔과 머리는 잘려나갔다. 볼 수 없고 더듬을 수 없으나 바라하의 꼬리에 매달려 붓다를 향해 간다. 무쇠덩이를 메고 있을지라도 다가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견뎌야하리. 본래 사방에 하나씩 있었으나 지금 겨우 한 군데 어렵사리 복원한 것이다.

연못의 외부에는 각 변의 중앙 부분에 작은 외부 연못이 있다. 중앙연못의 물이 빠지는 통로이다. 물길이 출입하는 곳에는 감실을 만들었다. 감실의 벽면에는 부조된 연꽃들이 그득하다. 순례자들은 먼저 이 감실에 들러 손을 씻고 죄를 씻었다고 한다. 각 감실마다 중앙에 형상들이 있다. 동쪽 감실은 사람 머리, 서쪽은 말의 머리, 남쪽은 호랑이 머리, 북쪽은 코끼리 머리의 모양이다. 특히 사람 머리 모양의 조각은 조각술이 빼어나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 제왕(Lord of Men)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5월~11월 우기에만 제모습

주달관은 니악 뽀안을 가리켜 ' 북해의 황금탑 '이라고 했다. 탑 전체에 황금으로 도금을 해 놓았던가. 지금은 풍상이 빚은 이끼가 창연함을 더해준다. 작은 우주 속에 앉아 사색에 잠긴다. 회색 제복의 관리인들도 그늘에서 사색 중이다. 앙코르의 영광과 조국의 미래를 사색하고 있을까. 앙코르 유적 관리인들은 대부분 젊은 처녀 총각들이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7%이고 15∼64세 56.6%, 0∼14세 40.7%, 여자 100명당 남자가 93.1명이다. 폴포트 시대 직후에는 86.1명이었다. 14세 미만인 인구가 40%를 넘으니 캄보디아는 엄청 젊은 나라이다.

물이 말라버린 작은 연못을 보는 것은 아쉽고 서운하다. 물이 바다를 이룬 톤레샵 호수로 가야겠다.



아직도 생생한 캄보디아의 상흔

잘려 나간 다리…표정만은 평온

입구 쪽으로 나오니 비닐 돗자리를 펼친 평상 위에 다리 없는 사내가 실로폰처럼 생긴 그들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신체의 일부를 떼어주고 깨달음을 얻었는지 사내의 표정이 무척 평온하다. 그 곁에 어린것들이 올망졸망 앉아있다. 자식들인 모양이다.

둘러서서 경청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표할 수 있는 경의와 보시가 그것일 테니까. 그리고 꾸물거리며 주머니에서 1달러를 꺼내 바구니에 넣었다. 쪼그려 앉아 있어서 사내의 잘린 다리는 보이지 않지만 평상 앞에 세워놓은 인조다리에 눈이 간다.

6.25 직후 한반도에 넘쳐 났던 부상자들은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악기도 없었고 연주를 들어 줄 관광객도 없었으니까. 잘린 손목에 쇠갈고리를 붙이고 살기 등등한 눈빛으로 물건을 강매하던 상이용사들의 모습이 지금도 알알하다.



니악 뽀안은

'또아리 튼 뱀'이라는 뜻

사원 지키는 ' 신장 '역할

니악 뽀안은 ' 또아리를 튼 뱀 '이란 뜻이다. 원형의 계단을 위에서 내려보면 그 이름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파충류인 뱀을 끔찍이 싫어하는 것은 어느덧 우리의 의식 속에 서구적 혹은 기독교적 사고가 자리잡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나라에서는 뱀을 나가(naga)라고 한다. 뱀이란 의미 이외에도 용왕, 물의 정령이란 뜻도 있다. 앙코르 왓은 물론 사원의 입구에는 머리를 쳐든 뱀의 형상이 도처에 있다. 사원을 지키는 신장과 같다. 그리고 뱀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똔레삽 호수 어귀에 있는 수상마을에서 만난 소녀는 팔뚝 굵기만한 뱀을 목에 두르고 있었다. 우리가 배에서 내려 들어가자 자랑처럼 뱀을 꺼낸다.

처음에는 모두 비명을 지르며 질겁을 했지만 뱀과 친해지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색이 되었던 아이들이 이내 서로 뱀을 목에 두르겠다고 난리를 피운다. 소녀는 자기가 아끼는 물건을 보고 남들이 좋아하는 것이 흐뭇하다는 표정이다. 나는 끝내 뱀을 만지지 못했다. 이미 내 속에는, 뱀은 징그러운 이물질이라는 아상이 굳게 자리잡고 있는가보다.





글/사진=이우상〈소설가, 대진대 문창과 겸임교수〉

asdfs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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