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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출판 외길 40년[br] 경서원 이 규 택 사장

기자명 법보신문

좋은 불서 만든 공덕으로
다음 생엔 출가 인연 만났으면

<사진설명>좁은 공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불서들의 보금자리 경서원. 이규택 사장은 이 곳을 불자들과 부처님이 만나는 법석으로 가꾸어 가고 있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옆에 자리 잡은 경서원. 허름한 건물 사이에 끼어있는 대여섯 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불서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조계사 못지않은 오래된 도량이다.

감각적인 즐거움과 화려함을 선호하는 요즘 세태로 인해 몇 안 되던 불교전문서점들마저 하나둘 문을 닫더니 이제 조계사 우정국로에서 경서원은 불교서적만을 다루는 유일한 곳이 되어버렸다.

법해 이규택(65·사진) 사장, 불교출판업계에 종사한 40년 세월 중 30여 년을 그는 이곳에서 책과 더불어 살아왔다. 짧게 깎은 머리에 테 넓은 안경, 약간은 어눌한 말솜씨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 그에게서 사람들은 ‘사장님’이라는 거창한 이미지보다 친근한 옆집 아저씨를 떠올리는 것도 당연하다.

학술·수행서 돈 안돼도 출간

그러나 불교출판계에서 이 사장은 진흙 속에 핀 연꽃과도 비슷하다. 대중성이 떨어지는 학술서적이나 난해한 수행서적들이라도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흔쾌히 책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간혹 『선의 황금시대』(류시화 역)나 『마음과 몸과 운명』(한길로 역)과 같이 1만권이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만든 450여 종의 책 대부분은 기껏해야 몇 백부 판매실적을 올리기도 버겁다. 그러나 거꾸로 유행을 타지 않는 대신 10년 20년이 지나도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있는 책들 또한 대부분이다. 많은 불교학자들과 재야의 인사들이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장사만 생각한다면 안 팔릴 책을 왜 만들겠어요. 그러나 책의 가치가 잘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에 달려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누군가가 꼭 읽어야 될 책, 그런 책을 만드는 게 내가 앞으로도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40여 년 동안 오직 한 길을 걷고 있는 이 사장이 불교출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5년, 고향 경주에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하면서부터다. 증조할아버지가 순경대부 중추부사를 지내고 할아버지도 무관으로 입신양명한 양반집 독자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초파일이면 신심 돈독한 어머니와 할머니 손을 잡고 포항 오어사까지 40리 길을 오갔다. 그런 이 사장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곧바로 시작한 활동이 한국불교거사림회였다. 마냥 좋았던 불교를 깊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종익 박사를 비롯해 쟁쟁한 인물들이 많았고 하는 일도 많았기에 직장을 구하던 그는 때마침 간사로 활동하게 됐다. 그런데 간사의 일이 그리 만만치 않았다. 회원들의 모임이 있을 때면 뒷바라지를 다 해야 했고, 큰스님을 초청해 법문을 듣는 일도 도맡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회원들을 위해 법문 자료나 경전을 편집하는 것도 그의 주된 임무 중 하나였다. 누런 갱지에 잉크종이를 대고 송곳으로 쓴 후 로울러로 미는 이른바 ‘가리방’으로 손바닥만한 천수경 독송집도 만들었고, 원효대사 일대기도 펴냈다.

이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이왕이면 큰스님들의 법문집을 엮어보자는 생각을 냈다. 청담 스님, 해안 스님, 탄허 스님, 대은 스님, 백성욱 박사 등 유명법사들의 법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고, 특히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청담 스님의 법문을 녹취하기 위해 라면상자만한 녹음기를 들고 늘 청담스님을 뒤따라 다녔다. 때마침 출판사인 원각사에 취직한 그는 청담 스님의 법문집을 내자는 말에 몇 달 동안 스님의 진주사투리를 풀었고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바로 『현대위기와 불교』였다.

몇 년 후 보련각으로 옮겨 출판 일을 하게 된 이 사장은 『천태종 성전』을 만드는 동시에 격월간지 「불교사상」을 펴내는 일을 맡았다. 또 이희익 선생이 참선을 지도하는 선도회에 가입해 참선수행을 했던 인연으로 그 분의 『무문관』, 『벽암록』 등 선 관련 서적을 펴내기도 했다. 책을 만드는 일이 지금처럼 쉽지 않고 재정마저 열악했기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할 때가 많았고 집으로 원고를 가져가 교정을 보는 일이 일상처럼 돼버렸다. 한 번은 추운 겨울날 이불 속에서 졸음을 참아가며 교정을 보았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밀랍에 새겨 쓴 교정본이 모두 녹은 적도 있었다.

15일 단식하며 출판인 결심

외아들이었기에 출가자의 길을 갈 수 없었던 이 사장은 70년대 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을 추슬러야겠다는 각오로 남해 보리암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15일간의 단식 관음 정진은 그로 하여금 본격적인 불교출판인의 길을 갈 것을 서원토록 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가가 더욱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출판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불연을 맺어주는 일로 전법의 최일선이 아니던가.

78년 경서원이란 출판사로 새롭게 시작한 그는 불서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삼아 대중성보다 그 가치를 우선 삼아 책을 만들어갔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몇 번이고 교정을 보았고 편집기술과 책 표지 제작기법도 배워나갔다. 또 일반출판사에서 나온 불교관련 책들이 있으면 천리가 멀다 않고 찾아가 구해 진열대에 꽂아놓았다.

귀한 책 귀하게 읽혀야

<사진설명>제작비를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표지디자인을 직접하는 이 사장. 이유는 오직 좋은 불서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다.

“70~80년대까지만 해도 책이 귀했습니다. 만드는 기술이 요즘만큼 발달하지 않았고 제작비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불서들이 나오면 그 책을 귀하게 읽는 분들도 많았지요. 힘들었지만 낭만과 보람이 있던 시절이었어요.”

이 사장은 초판은 보통 300부를 찍는다. 무턱대고 펴냈다가 낭패 보기 일쑤이기도 하지만 귀한 책이 자칫 쓰레기로 전락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또 이 사장이 직접 디자인을 하는 까닭도 비록 현대적인 감각에 맞추지는 못하더라도 출판비를 절감해 좋은 책을 더 많이 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서원에는 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좁은 공간에 비집고 앉아 얘기를 나누는 이들도 있고, 이 책 저 책 부담 없이 들춰보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 또 책값을 깎아달라는 사람들에게 선뜻 요구를 들어주기도 한다.

“불서는 부처님과 선지식들과의 진지한 만남”이라고 강조하는 이 사장은 이번 생에 많은 공덕을 쌓아 다음 생에는 수행자의 길을 걷는 게 꿈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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