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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노정용

기자명 법보신문

천년의 전통 복원해
천년의 미래를 창조

<사진설명>노정용 작가는 “선조들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고는 새로운 현대 감각의 예술을 창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노정용의 작업실은 화훼농사를 짓는 비닐하우스 한 켠이다. 연탄 난로의 온기에 장미나 백합, 이런저런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기난로의 팬에서 나오는 주황색 열기와 점토와 석고, 폴리코트로 떠낸 온갖 석물과 조각상들이 빼곡히 밀집해 있는 풍경이다. 냉랭한 공기가 가득한 허름하고 다소 어지러운 이 비닐하우스 안은 온갖 작품들과 자료들이 밀집한 창고에 다름 아니다.

작업실엔 박물관 정취 물씬

지하철 삼송역 근거리에 위치한 이 작업실은 도로 변에 위치한 여느 비닐하우스와 차이가 없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흘려버릴 작업실이다. 그러나 그 안의 장소는 치열한 작업의 현장임을 알리는 잔해들, 흔적들이 가득하다. 조각에 쓰이는 온갖 도구들이 벽과 바닥에 가득하게 자리한 이곳에 다양한 형상의 조각물들이 풀처럼 나무처럼 자라고 있다. 그 조각들은 개별적인 작품으로 자리하고 있기 보다는 마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들을 닮았다. 토우와 장승, 불상과 초의선사상 등 온갖 석물과 석상들이 곳곳에 흩어져있다.

사찰이나 옛 무덤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만큼 많은 양의 조각들이 작업실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일단 그 작업 양에 놀라고 한편으로는 그가 우리 전통조각의 모든 것을 몸소 실현해내려는 열의에 거듭 놀랐다. 이 땅에 남겨진 조각적 이미지들 모두를 자기 손으로 몸소 체득하고 재현하고 모사하는데 바쳐진 시간의 공력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그는 조각가이기 이전에 우리 문화지킴에 해당한다. 전통유물을 복원하는 장인이다. 자신이 전공하고 할 수 있는 조각이라는 일을 통해 우리 전통 문화 속에 내장되어 있는 수많은 조각적 이미지들을 재현해내면서 그 안에 깃든 조상들의 손맛과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던 마음들을 헤아려 보려는 것이 그의 일이고 공부다. 조상들의 손맛을 역 추적 하면서 자신이 스스로 그것을 깨닫고 느껴보려는 것이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후 그는 수년간 옛 유물들을 복원해내는 화사에서 근무했다. 이 경험이 현재의 그의 작업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새삼 우리 전통유물들을 만났고 그 아름다움과 매력에 젖어든 것이다. 이는 자연스레 우리 전통조각들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불교조각에 매료되게 했다고 본다. 작업실 한쪽에 마련된 조그만 방에 들어가 차를 마시는데 책장에는 한국미술사 및 전통유물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이 촘촘하다. 공부와 제작행위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사실 한국의 전통 조각적 이미지의 상당수는 다름 아닌 불교와 관련된 종교적 도상들이다. 물론 그것들은 조각이기 이전에 특정 종교와 사상에 관련된 대상들이지만 근대 이후 서구미술의 수용에 따라 새삼 미술과 조각이란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근대 이전의 우리 고미술에서 만나는 조각적 대상인 토우, 장승, 불상과 온갖 잡상들이 조각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이제 그것들을 조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서구의 조각이란 개념을 통해 이전의 유물들에서 조각적인 것을 재발견하고 그것들을 우리의 조각적 대상과 조각 개념으로 새롭게 정초시키는 것이 이 땅의 조각가들의 할 일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교와 관련된 조각 대상들은 결정적인 공부의 대상들이다.

동양 조각예술미 발견

그는 상당히 원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았는데 대화중에 “전통 석물을 하나씩 모두 다 떠내고자 한다”라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그의 작업실은 전통유물을 환생시킨 복제박물관에 다름 아니다. 해서 그는 우리 산천에 놓여있는 온갖 조각 대상들을 몸소 찾는 기행을 한다. 그 기행과정에서 만난 문화유물들을 실측하고 경험한 후에 이를 고스란히 복원해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 그의 작업이다.

일차적으로 그의 역할은 문화재지킴이로서 유물을 복원해내는 장인의 일에서 출발한다. 그는 문화재수리기능조각 1732호다. 일종의 불사작업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불사라고 하면 사찰을 건축하고, 신앙의 대상인 불상, 불화, 탑 등을 조성하고 경전을 제작하는 것 뿐만 아니라 신심을 수행적 실천으로 회향하여 동수정업(同修淨業)하며 성불로 가는 모든 정진이 불사라고 한다. 그런가하면 불상을 조성하거나 불화를 그리는 사람을 금어(金魚) 또는 불모(佛母)라고도 한다. 불모라고 하는 이유는 성불하는 인연을 조성해주기 때문이다. 불사로써 불법을 드러내는 것은 여러 가지 기법으로, 중생을 교화할 수 있는 방편으로 부처님 설법의 현장을 현현시키는 일이므로 부처님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신앙심이 강조된다고 하겠다.

복원 넘어 창조에 몰입

그러니까 하나의 기능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노정용은 불교조각의 단순한 복제에 머물지 않고 복원과 보수를 함께 병행한다. 지금의 시간대에 남아있는 유물들은 상당수가 마모와 마멸, 훼손의 과정을 거치면서 급속히 지워지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그것들을 환생시키고 유지,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라고 인식한 것 같다. 이 땅의 모든 전통 조각들은 간절한 기원의 소산이자 희구의 상징들이다. 이를 바탕으로 오늘날 불교예술의 새로운 창조적 발전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단지 불교예술을 창작하는 일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과 비평에도 요구된다. 그것들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눈들 역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정용의 현재 불교조각과 다양한 석물들을 재현하는 일은 분명 또 다른 마음가짐과 신심을 요구할 것이다. 잊혀지고 망실되었던 우리의 조각 이미지들의 우수성과 참된 매력을 인식하는 한편 그 맛을 되살려 오늘의 조각으로 어떻게 구현해낼 수 있는 가를 모색해보고자 하는 앞으로의 여정이 사뭇 궁금하다.
(경기대교수, 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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