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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가야불교, 한국불교의 기원인가

기자명 법보신문
“설화-국명변화…가야불교 존재” 주장에
“설화만 주목한 결과…신빙성 없다” 반박


서기 전후 무렵부터 562년까지 한반도에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던 가야. 그러나 가야사(加耶史)에 대한 자료는 극히 제한되어 있어 이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어떤 형태로든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야불교 조차도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삼국유사』 ‘금관성파사석탑’조에 따르면 아유타국의 공주였던 허황옥은 부왕의 명을 받들어 바다를 건너 동쪽으로 향해 가려했지만 수신(水神)의 노여움을 사 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부왕의 명을 따라 파사석탑을 싣고 가자 그제서야 순조롭게 바다를 건너 금관국의 남쪽 바닷가에 정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삼국유사』의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가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1세기 초 허황옥에 의해서이고, 이럴 경우 그 동안 한국불교의 기원은 고구려 소수림왕(372)부터가 아니라 가야로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그 동안 가야불교의 실체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을 거듭해왔다.

우선 학계에서 논란이 됐던 것은 가야의 국명이었다. 이는 가야라는 국명이 시대에 따라, 또는 사서의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됐다는 점에서 이 단어가 원래 인도에서 수입된 것인지, 음운체계의 변화로 발생한 현상인지를 두고 학자들간의 논란이었다.

1987년 허명철 박사는「가야의 뜻」이라는 논문과 『가야불교의 고찰』이라는 책을 통해 “가야국명의 가야(加耶)는 불교와 더불어 수입된 단어”라고 주장했다. 그는 논문에서 “가야의 국명에서 ‘가(伽)’는 한자의 뜻으로 절(temple)이며, ‘야(倻)’는 범어의 ‘Gayah’를 음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조어로 이때 가야의 뜻은 인도어로 코끼리를 의미 한다”며 “따라서 가야국명의 유래과정을 보아도 불교가 삼국보다 먼저 도래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김영태 교수는 「가야불교의 전래와 그 전개」(1991, 불교학보)를 통해 “경전에서 나오는 지명과의 연관성으로 보아 가야라는 국명이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불교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정학, 박창원 박사 등은 “가야국명에 대한 다양한 용례가 나타나는 것은 특별한 어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한국어의 음운변화에 의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즉 한자표기라는 것은 순전히 우리말 음을 한자로 빌려 표기한 것으로 한자 자체의 뜻은 없고, 다만 시대와 문헌에 따라 다르게 표기된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가야의 국명은 처음 가락에서 가라로 다시 가야로 변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 논쟁은 『삼국유사』에 나타난 수로왕과 불교관련기사 내용을 두고 벌어졌다. 즉 『삼국유사』‘가락국기’에 16나한과 7성(聖)이 등장하는 것을 두고 벌린 논란이다. 허명철 박사는 「불교를 알고 있었던 수로왕」(1987)에서 “수로왕이 불교에서 사용한 범어의 ‘나한’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수로왕이 불교와 접하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정중환 박사도 “7성은 불교에서 과거 7불(七佛)을 의미하는 것으로 수로왕이 불교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힘을 실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도 김용덕, 남도영 씨를 중심으로 “가락국기에 나오는 1, 3, 7의 수는 풍수설에 기인한 것으로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내용은 수로왕이 말한 것이기보다는 불교와 풍수설의 영향을 입은 후대사람들이 기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즉 풍수설에서 1은 오행(五行)의 ‘수(水)’, 3은 ‘목(木)’, 7은 ‘화(火)’를 의미하는 것으로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의 길지(吉地)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야불교에 대한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오랫동안 학자들이 다양한 견해를 제기해 왔지만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부분은 없다. 그러나 최근 유적지에 대한 정밀조사와 이에 따른 연구결과가 꾸준히 제기되면서 가야불교에 대한 실상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비록 한국불교의 기원이 명확히 가야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학계에서 가야에도 불교가 전래돼 신앙활동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데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권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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