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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콜롬비아대 로버트 썰먼 교수

기자명 법보신문

이론-수행 겸비한 美 티베트 불교학 1세대

티베트-범어 문헌 번역…비판불교철학 권위자
티베트 정치-문화-철학 등 해박한 지식 가져


콜럼비아대 인도-티베트학 제쫑카빠 교수인 로버트 A. F. 썰먼은 현 버지니아대 종교학과 명예교수인 제프리 홉킨스와 함께 미국 티베트 불교학의 제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제프리 홉킨스가 학적인 연구에 치중하면서 대중들을 위한 저술들을 해오고 있다면, 로버트 썰먼은 대중들을 위한 저술과 티베트 불교의 전파에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1941년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1959년 하버드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의 대학생활은 1960년 사고로 한쪽 눈을 잃으면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는 “나는 내 자신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내가 사고로 한쪽 눈을 잃었을 때, 나는 내 자신이 언젠가는 죽어야할 것이라는 것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고, 내 자신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나는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나에 대한) 통찰력을 찾는 여행길에 올랐다”고 말하고 있다.

티베트서 비구계 수지

그는 유럽과 중동아시아를 거쳐 마침내 인도에 이르렀는데, 마침 그곳에서 망명한 티베트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1963년 그는 아버지의 부고를 접한 뒤, 귀국해서, 뉴저지에 망명해 머물고 있던 몽골인 겔룩빠 게쉐 (겔룩빠 승려의 박사학위) 왕겔을 만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제프리 홉킨스와 함께 티베트어를 비롯한 겔룩빠의 불교 교리를 공부했다. 게쉐 왕겔과의 첫 번째 티베트어 수업에 대한 감회를 그는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게쉐 왕겔은 첫 번째 티베트 수업에서 고성제에 대해서 설명했고, 내 안의 세계는 극적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태어나고, 병들고, 죽는다. 우리는 안락과 행복을 열망하지만, 얻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얼마 가지지 않은 것마저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한다…<중략>…이 가르침을 배우기 전, 내 삶에 대한 나의 질문은 바로 길모퉁이만 돌면 찾을 수 있는,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길모퉁이를 오로지 내가 갈구하는 어떤 것을 찾기 위해서 돌았고, 그렇게 가지려고 애쓰는 일은 반복되고 반복되었다. 이러한 갈구가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고, 내 마음 한 구석에는 그러한 추구를 하도록 계속 몰아붙이는 어떤 것이 있었다. 처음으로, 누군가 나에게 그러한 모든 갈구에서 나 자신을 벗어날 길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괴로움을 직면하도록 강요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 괴로움을 끝낼 길을 발견했다.” 게쉐 왕겔과의 1년에 걸친 공부 끝에 그는 출가를 결심한다.

게쉐 왕겔은 1964년 출가를 소망하던 그를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로 데려가 달라이라마에게 소개한다.

게쉐 왕겔은 달라이라마와 달라이라마의 스승 링 린포체에게 썰먼의 출가 여부에 대한 결정을 맡겼다고 한다.

썰먼 교수를 만난 달라이라마는 그에 대한 첫 인상에 대해, “티베트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하는, 불교를 공부했으며, 승려가 되고 싶어 하는 광적인 미국 젊은이이다. 그는 매우 영리하고, (약간 자만심이 있기는 하지만) 선한 마음의 소유자다.”라고 평가했다. 그때 그의 나이 24세, 달라이라마의 나이 29세였다.

매주 계속된 달라이라마와의 대화 속에서 달라이라마는 썰먼의 불교에 대한 궁금증을, 달라이라마는 서양 심리학과 철학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나갔고, 마침내 출가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썰먼 교수는 그 때를 “내가 오로지 원한 것은 이천 오백년의 역사를 가진, 깨달음을 추구하는 불교 승가의 일원이 되는 것뿐이었다. 내 내적 세계는 심오한 통찰과 비전으로 풍요로워져갔다. 한편으로 나는 그렇게 위대한 스승들과 그들의 가르침, 그리고 그 가르침을 듣고 깨달으려고 노력하는 그 순간들을 접할 수 있는 행운과 특권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미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승려로서 미국 사회에 속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불교를 배울 수 있는 더 많은 언어들을 배우고, 불교 문헌들을 접할 수 있는 곳, 승려생활과 가장 비슷한 생활을 하는 곳은 미국에서는 학계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환속, 학계로 돌아간다.

썰먼 교수는 중요한 티베트어와 산스크리트 문헌들을 번역해왔으며, 불교에 대한 강연과 저술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의 관심분야는 아시아의 불교 승단의 역사, 비판적인 불교철학 등이다. 그는 앞서 말했듯이 티베트 불교 내 한 분야의 전문학자로서보다는 티베트의 정치, 문화, 철학 등 다방면에 박학한 대중적 지식을 겸비한 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면모는 타임지가 1997년 “미국을 움직이는 25인의 명사” 가운데 한 명으로 그를 소개한 대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타임지에 의하면, 그는 “아시아로부터 미국으로 전해져온 싯달타의 가르침을 따르는 학자이며 활동가, 불교계의 빌리 그레이험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전도사), 불법을 펼치는 전사”라고 소개했다. 즉, 그는 TV전도를 통해 기독교의 전파에 매우 큰 역할을 한 빌리 그레이험처럼 미국 내 티베트 불교와 문화의 전파에 많은 힘을 쏟았다.

이러한 그의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은 그의 다섯 명의 자식들 가운데 우마 썰먼, 데첸 썰먼, 그리고 간덴 썰먼이 미국 영화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데서도 잘 볼 수 있다.

그는 미국 영화계, 문화계 인사들과 돈독한 친분관계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미국 국회 자문위원으로 출석하는 등 정치계에도 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를 통하여 티베트의 역사와 문화를 보전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1998년 발간한 “안으로부터의 혁명”은 한주의 평론가 베스트셀러에 뽑혔으며, 그의 문화, 사회, 정치적인 입장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그는 개개인과 사회 양자가 깨달음을 성취할 때, 개인과 사회는 성공적인 대화를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안으로부터의 혁명을 존재의 실체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라고 정의하며, 이 안으로부터의 깨달음은 고통 받는 존재들을 향한 자비심이라고 결론짓는다.

더 나아가 그는 인류와 인류를 둘러싼 여러 사건들을 각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거품이라고 비유하면서, 한명의 안으로부터의 깨달음의 경험이 거품이 터지듯 터졌을 때, 다른 모든 거품들에게 영향을 주어 이 세계의 정신적인 진보에 힘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즉, 개개인의 내적인 혁명이 이 세계의 진보에 중요한 한 걸음으로서 작용할 것이라고 말하며 깨달음의 운동-안으로부터의 혁명을 주창한다.

그의 역동적이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강의는 학생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학생들은 그의 강의를 “삶의 전환점이 되었던” 강의라고 했으며, 최근의 콜럼비아 대학교 학부 학생회장은 “내가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그의 강의를 듣고 싶다”라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고 한다.

‘미국 선도 25인’선정되기도

그는 초창기에는 쫑카빠의 저술의 번역 등 학적인 저작물에 진력했지만, 근자에는 보다 대중적인 저술과 강연에 집중하고 있다. “안으로부터의 혁명,” “티베트 사자의 서 (시공사),” “티베트의 영혼 카일라스 (이룸)” 등 29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기고 있는데, 대부분의 그의 저술은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한 것들이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저술활동 뿐만이 아니라 사회 활동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1987년 리차드 기어와 함께 뉴욕에 티베트의 불교와 문화를 보존할 것을 목표로 하는 ‘티베트 하우스’를 건립했다. 그는 학계보다는 대중들 속에서 미국의 대중문화와 불교의 교차점을 찾는데 진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안으로부터의 혁명”에서 남기는 후학들에 대한 당부는 간결하면서도 냉철하게 진리의 상아탑을 쫓는 이상적인 학자로서만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디디고 사는 학자로서 현실을 직시할 것을 간경하면서도 냉철하게 조언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부탁이니 그대의 동료들을 그대의 명민함과 도덕적 신뢰, 매력, 그리고 직업에 대한 헌신으로 즐겁게 해주길 바란다. 그대가 속해있는 사회 내에서 최소한 두 권의 책과 명망 있는 저널에 적어도 여섯 편 이상의 논문과 다량의 리뷰를 실어서 그대의 자리를 매김 하라.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속해있는 학교나 단체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라. 그대는 학생들 사이에서 너무 인기가 많거나, 동료들 사이에서 너무 두드러지지 않도록 주의해라. 그리고 그대의 학문이 지나치게 논쟁거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6년 안에 종신교수직을 얻지 못한다면, 다른 전문직을 배워 새로운 직업을 가져야할 것이다.”

이종복(버지니아대 종교학과 박사과정)


썰먼 교수는

1941년 뉴욕 출생, 하버드 대학교에서 학부, 석사, 박사를 마쳤다. 1964년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비구계 수지 이후 환속, 엠하스트 대학, 하버드 대학 방문교수를 역임했으며, 1987년 설립한 뉴욕 티베트 하우스의 대표이며, 현 콜럼비아 대학교 인도-티베트학 제쫑카빠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97년 타임지의 미국을 움직이는 25인의 명사에 선정될 정도로 정치권과 문화계를 통해 대중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의 관심분야는 아시아 승가의 역사, 불교 철학 및 미국 문화와 불교의 접목, 불교와 현대 과학의 접목 등으로 광범위하다. 그는 다섯 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그 가운데 세 명이 영화계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우마 썰먼의 아버지로도 유명하다. 그는 학적인 연구에서보다는 훌륭한 제자들의 양성과 미국 문화와 티베트 문화의 접점을 찾는데 주력을 하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실질적이고 가장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국 대중들에게 미치고 있는 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안으로부터의 혁명,” 등 다양한 학술 서적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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