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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인숙

기자명 법보신문

바람-물-새-풀꽃 인연 펼쳐 놓으니 新 몽유도원도

불교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데서 비롯된다. 드라마 없이 사물, 대상을 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들은 사물을 저마다의 인습, 편견, 교육, 학습되고 경험화 된 것들을 통해 자기 식으로 보고 착각하며 곡해한다.
주어진 세계를 편견 없이 바라보기란 좋은 그림을 그리는 데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일이다.

“그림은 나의 일기”

이인숙은 자신의 그림을 일기에 비유한다. 홍천에 살면서부터 주변 자연에서 보낸 일상의 체험, 그로부터 발원하는 자기 생애의 반추와 자연에게서 일러 받는 깨달음, 그로부터 파생하는 여러 감정과 느낌 등을 화면에 불러들여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그려내고자 한다. 주변 환경과 그 속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과 생명체를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욕망을 그림 속에 일기처럼 쓰고/ 그리기를 원한다. 이를 통해 현재 자신의 삶을 확인하고 치유하고 동시에 그 흔적들을 세상 밖으로 주파수처럼 보내 자연 속에서 보낸 나날의 인상, 자연을 통해 일러 받고 깨달은 다분히 무욕적이고 탈속적인 생애의 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그 그림은 일종의 자아반영적인 자화상이자 생활그림이다. 특히나 이인숙의 근작에서는 마치 옛 선비들의 풍류와 와유, 기행을 담은 화첩을 보는 듯 한 느낌도 강하게 받는다. 차이가 있다면 더욱 적극적인 환상이 가미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진설명>내 안의 뜰-열락.

그 위에 덧붙여 자연 속에서의 삶을 통해 채집된 인상과 이의 조형화 작업이 얹혀지고 있다. 그것은 사변적인 전통해석이 아니라 적극적인 공유와 추체험 아래 번안되는 동양화다. 근작은 자연 속에서 사는 생체 리듬이 더욱 두드러지게 자리하고 있다. 분명 번잡한 세속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살다보면 새삼 자연계와 생명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여러 단상들이 일어날 것이고 모종의 깨달음 내지는 동양적 사유의 한 자락을 더욱 절감할 것이다.

아울러 고립과 은둔이 주는 고독함과 삶의 어려움도 분명 내재할 것이다. 자연을 벗하며 산다는 것이 결코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곳 역시도 분명 생활의 공간이자 생존의 장이고 세속과 단절 될 수 없는 세계이다. 그래도 홍천으로 이주한 후 작가의 작업은 대책 없이 변하고 살아나는 자연의 풍경이 완연하게 핀 꽃 무리처럼 들어와 앉아있다.

외양적으로는 더없이 안분자족하는 생애가 이슬처럼 반짝인다. 작가가 재현한 이 풍경은 일종의 신몽유도원도나 낙원의 이미지, 혹은 모든 생명체가 평화롭게 공존하며 약동하는, 매우 이상적인 세계상이다. 그것은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몽상이 경계 없이 섞여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그 세계를, 변화무쌍한 자연계를 편견없이 보고자 하는 노력이 깃든 그림이다. 그것은 단지 그림의 문제가 아니라 생의 문제일 것이다.

환상 색채-생동 구도 탁월

자연은 작가에게 다양한 소리를 심어주었다. 작가의 귀는 도시를 떠나 이곳에서 비로소 열렸다. 세속 세상의 온갖 소음들이 지워진 자리에 들어찬 적막함과 밀려드는 모든 생명체들의 아우성, 그러니까 새소리, 개짓는 소리, 풀벌레 소리, 후두둑 하고 흙냄새 일으키는 빗소리, 그리고 순간 밤이 내리는 소리까지 안겨주는 그 모든 청각에 박히는 소리들은 생명의 신비를 마냥 절감시켜주었다고 한다. 시각에 비해 청각은 몸 전체에 파장을 일으키며 진동시킨다. 그런가하면 시각에도 축복을 내려준다.

우선 온갖 생명체들이 그 축복의 우선순위다. 강아지, 개구리, 나비, 각종 애벌레, 무당벌레, 겨우살이, 물고기와 금낭화, 원추리, 각종 이름모를 풀꽃, 풀씨, 파랑새, 산, 하늘, 땅, 물, 바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벌거벗은 남자와 여자....이 자연스러운 생명들이 어우러져 우주를 아름답게 한다. 작가는 그 생명체들에게 화려한 색채를 입혀 화면에 흩어놓았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지닌 호흡과 에너지를 자연스레 올려놓으려 한다. 그것들끼리의 지극한 조화와 더없는 평화를 만들어 보이는가 하면 약동하는 호흡과 기운을 불어넣어주었다.

<사진설명>내안의 뜰-달빛.

그림은 주술사의 기원이나 축문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림 자체의 신명과 재미 속에 온갖 느낌과 삶의 양태를 축약하게 되는 민화양식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한국적 음양관과 자연관을 순환의 원리 속에 생성시킨 듯한 이 그림은 일정한 방위가 없고 원근적 거리 개념 또한 상실되면서 전개된다. 그러니까 민화의 자유 자재로운 시점의 이동을 적극 응용하는 한편 새로운 공간해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인상이다.

이 같은 구성은 인간 중심적인 시각과 입장의 해체이자 분해에 다름 아니다.

삶은 인간의 삶의 아니라 만물의 그것으로 치환되며 인간은 우주만물의 극히 작은 한 부분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눈으로 대상을, 자연을 바라보고 질서 지우고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전도된 시각이 엿보인다. 이는 만물을 평등한 모습으로 등장시키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범신론적인 사유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변화무쌍 자연서 중도 체득

인간이 우주만물의 작은 부분임을 깨달아 중도의 정신, 즉 모두를 포용하며, 그 포용된 것을 주객으로 분리할 수 없는, 저 마다의 독자적인 절대가치를 인정하는 세계를 지향하여 자연과의 조화롭고 평등한 관계를 이룩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과 생물에게만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만상이 모두 동등한 정령을 지니는 생명체로 등장하며 그것들은 서로 융화되고 침투하고 또 변형되기도 한다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새삼 불교의 인연설이나 중생관을 연상시켜주는 그런 그림이다.

(미술평론·경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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