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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기자명 조순미

한 생각 바꾸니 세상이 달라보여

나이 서른살에 칠년이 넘도록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 맞이했던 봄, 개나리가 그렇게 고운지 그때에서야 처음 알았다.

꽉 찰대로 차버린 나이에 얻게 된 일자리는 어찌나 일감이 없었던지 매일같이 오고 가기가 고작이었는데 그것도 너무 오래 지속되다보니 어쩌다 창 밖을 내다보면 허공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일도 일이지만 나이에서 오는 기대치와 초조함으로 머릿 속은 온통 실타래가 얽힌 듯 문제가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게 답답하였다. 그 당시 유일한 위안거리이자 낙이란 책 속으로 피신하는 것뿐이었다.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직장을 그만두고 사무실 한칸을 얻어서 시작한 일은 책의 표지디자인이었다. 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큰 자본이나 어려움 없이 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에서 오는 환상은 이미 꿈 깬지 오래되었고 굳이 바램이라고 한다면 일감이나 계속 되어져서 바닥이 드러나는 통장을 빨리 채우는 것만이 다라고 생각하였었다.

그럭저럭 하게 된 작업들도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그 작은 종이가 하염없이 크게만 느껴지고 무엇을 어떻게 채워 넣어야 할지 두려울 때도 많았는데 더구나 책이 흔하디 흔한 상품으로 전락하면서 내용은 따질 것도 없이 많은 경쟁 속에서 첫 눈에 띄어서 잘 팔려야만 그 가치가 인정되어지는 주문을 당연시해야 하는 부담감은 때로 고통스럽기까지 하였다.

그 무렵 나는 서점을 자주 드나들었다. 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삼년의 긴 병고 끝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후유증이 너무도 심해서 나의 삶 또한 빠져나오기 힘든 긴 터널을 걷는 듯 남은 삶을 포기하고 어머니와 함께 묻히고 싶을 정도로 모든 상황은 참담하기만 했었다. 생전에 불자도 아니셨던 어머니의 사십구재는 절에서 모셨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는 절에 가면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고 불교라는 종교가 가르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서 부터 부쩍 불교서적 코너를 자주 찾곤 하였다.

불서를 읽을 때의 몰입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강한 끌림이 있었다. 어느 날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는 책을 몇 장 넘겨 보다가 눈에 번쩍 뜨이는 글이 있었다. 어떤 수녀님의 고뇌를 듣던 노스님께서 『금강경』을 읽어보라고 권해주시던 글이었다.

마치 내게 읽어보라고 계시하는 듯한 그 책을 바로 그곳에서 구해 무조건 읽기 시작하였다. 한글로 적혀있음에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게 인쇄되어진 글자들에 대해 도전이라도 하듯 읽고 또 읽고 언젠가는 알아질 때가 있겠지 하며 매일 매일 밥먹듯이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문득 살아가며 마주치는 많은 지치고 피곤한 사람들이 더 이상 남이 아닌 나의 모습으로 다가오면서 그 모두를 감싸안아주고 싶도록 연민이 느껴질때쯤 난해하기만 하던 글들이 이해되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때의 나는 이미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리고 알게되었다. 세상이 바뀐 것이 아니라 한생각 바꾸니 세상이 변하더라는 것을.



조순미<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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