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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태연

기자명 법보신문

천 개의 모습에도 ‘나’는 없으니 천상천하 유아독존

<사진설명>만다라. 250X250cm 흙벽에 채색.

근자에 다소 ‘이상한’ 동양화들이 등장하고 있다. 분명 산수화나 사군자, 민화 및 탱화 등 전통적인 동양화(종교화) 형식을 이용하고 있지만 이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묘한 균열과 차이가 드러난다. 산수화를 조각으로 만들거나 전통 산수화 안에 도시 풍경이 섞여 있다거나 거문고 대신 노래방기구를 갖다 놓고 노래 부르는 사람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민화 속 도상들을 입체로 만들어 공간에 설치화 시킨 경우 등이 그 예다. 이른바 퓨전동양화라고나 할까. 동시대 젊은 작가들에게 있어 전통(이미지)은 새롭게 해석될 것들이고 또 다른 의미와 상상력 속에서 다시 태어나야 할 오브제에 해당하는 것 같다.

전통-현대도 생멸거듭

이전 세대에게 전통이란 것은 고정불변하며 따라서 이를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거나 전통적인 요소들을 현대적인 기법과 접목시키려는 노력들이 그간 한국 현대미술에 나타난 전통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이었다면 근자에 젊은 세대들에게 전통을 특정한 도상이나 틀로 보려하지 않고 해체의 대상, 유희적인 수단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전통은 참조와 해석, 차용과 패러디의 대상이 된다. 이는 동시대 젊은 작가들이 지닌 전통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반영한다. 그러니까 전통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무수히 살아날 것들이란 생각이 그것이다. 사실 고정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변하고 흐르고 생멸을 거듭한다. 전통이란 것 역시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고 죽고를 거듭할 것이다. 현재의 시간 위로 호출당한 전통은 현재의 시간대위에서 환생하고 그러다 죽기를 반복한다.

그런 인식에 의한다면 기존의 미술사를 보는 시각 역시 그것을 완결되고 닫힌 정적 구조가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 개별적 맥락 속에서 다시 읽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전통에 대한 무거운 인식이나 과도한 의미부여, 고정된 틀에 입각해 이해하는 대신 여기서 저기로 옮겨갈 때 생기는 차이, 그 사이와 여백을 적극 즐기는 작업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따라서 작가들은 산수화, 민화, 불화 등을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유기체처럼 현재진행형의 열려진 개념으로 본다. 그러니까 산수화(불화)라는 텍스트를 개인의 서사로 전환시키거나 전통에 대한 메타비평의 단서로 삼고 있다. 개인의 주관과 상상력의 개입을 통해 다시 쓰여진, 그려진 이 동양화들은 전통이미지의 단순한 복제(재현)가 아니라 적극적인 주체의 반응이고 해석이며 표현으로 새삼 환생하고 있다.

<사진설명>누구시오. 91X60cm 종이에 흙, 채색.

1990년대 말부터 동양화 전공 출신의 화가들이 새로운 장르들과 전통적 기술의 접목을 시도하면서 대중적 아이콘들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 작업은 대부분 1970년대 이후의 30대 초, 중반의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부분 평면회화(타블로)이며 대중 문화적 아이콘(도상)과 함께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의 서사를 중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울러 표현에 있어 정교한 기술적 완결성을 매우 중시하고 있음도 본다.
김태연 역시 맥락에서 매우 흥미로운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얼마 전 인사동에 위치한 한 전시장에서 우연히 이 작가의 작품을 보았다. 종이 위에 흙을 발라 만든 화면 위에 채색으로 공들여 그린 불화였는데 여느 불화들과는 무턱 다른 느낌이 매력적이었다. 그것은 흙벽위에 그려진 벽화 마냥 가설되면서 흙과 채색물감이 만나 이루는 부드럽고 소박한 색감을 마음껏 드러내는 한편 작고 소밀한 것들의 정성스런 그리기를 통해 엄청난 시간의 집적과 노동 또한 드러낸다. 작가는 말하기를 이 같은 그리기의 방법론을 지속하는 이유는 단순한 패턴의 반복을 통한 장시간의 그림 그리기가 작업 시간을 무척 빠르게 지나가게 해주며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를 좀처럼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런 그림은 일종의 무아지경의 경지를 선사한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오로지 현재의 일에만 전념하는 그런 순간에 서는 일이다. 어쩌면 이런 인식과 이 같은 시간과 경험을 선사하는 그리기라는 일에 매진하는 경우가 최근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서 흔히 접하는 일이다.

작가는 지난 해 돈황 벽화를 비롯해 다양한 탱화를 접한 이후 그 이미지를 차용한 작업을 시도했다. 외형적으로는 천불도와 만다라의 형식을 분명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은 본래의 문맥에서 이탈해 조금씩 균열을 일으킨다. 그러니까 작가의 자의적인 장식과 첨가, 변형을 통해 완전히 다른 그림으로 자립한다. 그럼에도 한 눈에 봤을 때는 전통적인 불화의 형식을 고수하고 있는 다소 이상한 그림이다. 전통적인 불화와는 다른 매우 ‘퍼니(funny)’한, 이른바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새로운 이미지를 제시하고 있다.

천불도에 피카소 그림

<사진설명>(좌) 천불도-인(人) 부분도. (우) 천불도-낯선 부분도.

작가는 천불도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을 다양한 존재로 탈바꿈시켰다. 저마다 색안경을 쓰고 앉아있거나 피카소가 그린 입체파그림으로 대체되는가 하면 동시대의 다양한 아이콘, 기호 혹은 동물들의 얼굴이 대신하고 있다. 멀리서보면 분면 천불도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된다. 시간과 거리 속에서 이것과 저것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고 있는 형편이다.

관습적인 우리들의 시선이 익숙한 대상을 만나 편안해하다가 이질적인 것을 확인했을 때의 당혹감 같은 것들이 그림 속에 지뢰처럼 은닉되어 있다고나 할까. 작가는 전통적인 불화의 형식 안에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과 정서를 표출하고, 현실적인 삶의 환경과 군상들의 모습을 오버랩 시켰다. 그리고 그런 시도 안에는 불교적 사유의 한 자락을 거느리고 세상을 보는 작가의 눈이 자리하고 있다. 동시대를 사는 젊은 작가의 현실인식과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눈이 문득 전통적인 탱화와 천불도의 형식 속에서 이렇게 환생되고 있음을 보는 것이다.

고대 벽화로의 시간여행

“현대의 이미지를 고대 벽화 속으로 시간여행을 보내는 것은 세월 앞에서 무력한 현상의 세계를 깨닫고 그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공을 달리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문명의 산물들은 무의미해지고 낯선 것들로 점차 변모하게 될 것이다.

고대 벽화의 종교적 엄숙성과 현대적 이미지의 뜻밖의 만남을 조소하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집착의 대상들을 의심하며 현상에 대한 맹목적 숭배를 멈춘다. 다양한 모습의 얼굴은 현대를 사는 나의 모습이다. 시시각각 환경에 의해 변화하는 나의 천개, 만개의 모습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모습 중에 나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없는 듯 하다. 나의 실체는 결국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며 부처가 돼 본다. 나의 물건들과 내가 알고 모르는 모든 존재들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는 것이 들린다. 네트웍으로 연결된 온라인 공간이나 인연으로 현실을 바쁘게 살지만 어디에도 진정한 나는 없는 것처럼 수 만개 표정의 얼굴들 모두가 나의 진정한 모습이겠지. 땅을 딛고 사는 현세나 네트웍을 통해 만나는 세상이나 환상이고 가상인 것이 틀림이 없어 보인다.”(작가노트)

(미술평론·경기대교수)


김태연은 누구?

김태연 화가〈사진〉는 2002년 덕성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동대학원에 재학 중인 젊은 작가다. 최근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 개인전을 가진 그는 2006년 제28회 중앙미술대전에 참여했고 2005년에는 디제잉코리아컬처전, 공공미술 프로젝트, 지성의 펼침전 등에 작품을 선보였다. 어머니의 정성(?)에 어렸을 적부터 산사를 가까이 했으나 그가 불교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나 ‘돈황 벽화’를 인연으로 이젠 한 산사를 참배해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벽화와 탱화 조각의 입체예술이 ‘산사’라는 한 공간에 함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불교예술 측면에서의 불교 접근에서 나아가 불교 사상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불교’가 그의 예술 소재 차원을 넘어 가슴으로 불교를 안아보기를 기대한다. 최근 그는 한 사찰에서 시행하는 ‘템플 스테이’에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의 다음 개인전이 기대된다.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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