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 스님]삿된 법을 좋아하지 말라
[법상 스님]삿된 법을 좋아하지 말라
  • 법보신문
  • 승인 2006.07.05 09: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리는 돈 개입 못하는 순수한 것
쉬운 깨달음에 대한 환상 버려야

얼마 전 황룡사 문제가 언론에 대두되면서 또다시 정법과 사법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줄로 안다. 이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있어 왔던 문제가 아닌가. 그러나 요즘의 세태를 본다면 그야말로 온갖 삿된 법, 외도들의 황금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법 아닌 것들이 판을 치고 있지 싶다. 이럴 때일수록 불교를 공부하는, 또 정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정법이냐 아니냐를 어떻게 하면 구분할 수 있을까. 딱 정해진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어려운 문제기는 하겠으나 최소한의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몇 가지 적어 본다.

우선 첫째, 정법이 아닌 삿된 가르침을 구분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돈’ 문제가 아닌가 싶다. 절이든, 무슨 선원이든, 수련원이든, 무슨 단체며 종교든 할 것없이 삿된 가르침을 행하는 곳에서는 많은 돈을 요구한다. 때로 어떤 곳에서는 돈을 얼마 내고 어느 정도의 기간을 거치면 누구나 깨달음을 심지어는 부처를 훌쩍 뛰어넘는 깨달음을 준다고까지 현혹하기도 한다. 이 얼마나 딱한 심산인가. 또한 곳에 따라 깨달음을 얻는데까지 몇 십만원에서부터 몇 천만원까지 든다고 하니 부자들이 부처되기는 너무나도 쉬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진리는 가장 순수한 것이다. 거기에 돈이 그것도 막대한 돈이 개입될 필요가 전혀 없다.

둘째로 삿된 가르침들의 특징은 교주 내지는 그 단체의 우두머리를 신격화하여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독재 체재라는 점이다. 그들의 믿음은 완전히 맹목적이다보니 교주가 그 어떤 잘못을 저질르더라도 심지어 사람을 죽이거나, 성폭행을 가하거나 하더라도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기며 굳게 믿고 있다. 그런 맹목적 신앙은 지극히 폭력적이고, ‘오직 이것만이 진리다’는 식의 편협한 신앙으로 이끈다.

셋째, 그런 가르침은 깨달음에 대한 환상을 심어 준다. 깨달음이 너무 쉽다. 부처 되는 것은 돈만 있으면 일도 아니다. 그리고 그 수행법은 자극적이고 감각적이다. 집단 최면 내지 자기 암시 같은 방법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어떤 단체는 몇 주 프로그램으로 부처를 뛰어넘는 경지를 약속하고, 또 어떤 단체는 일주일, 또 어떤 단체는 단 몇 시간 안에 깨닫는다고 유혹한다. 그런 단체를 홍보하기 위해 사회의 저명인사들을 정면으로 내세워 권위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정법인 것처럼 치장하곤 한다.

물론 불교 안에서도 온갖 미신적인 요소를 가지고 삿된 장사를 하는 곳이 있다고 본다. 점을 본다거나, 천도만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풀린다거나, 부적을 써 주거나, 진실에 근거하지 않은 자극적인 영험록을 유포하여 신비감을 부추긴다거나, 스스로 깨달은 척, 방편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에 대해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려면 신도님들 또한 정법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정법으로 수행하는 스님들을 잘 모시고 공부할 수 있어야지, 그러지 않고 점이나 봐 주고, 아는 소리나 해 주고, 뭔가 영험(?) 있는 절, 영험있는 스님을 찾아다니려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법상 스님  buda1102@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