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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법계통화분 1

기자명 법보신문

복 짓기보다 지혜 증득이 수승하니라

<사진설명>경주 불국사 경내 무설전.

何以故 如來說諸心 皆爲非心 是名爲心

“어찌 그러한가? 여래가 설한 모든 마음이란 다 참된 마음이 아니고 이름 붙여 마음일 뿐이기 때문이니라.”

{六祖}爾所國土中所有衆生 一一衆生 皆有若干差別心數 心數雖多 摠名妄心 識得妄心非心 是名爲心 此心 卽是眞心 常心 佛心 般若波羅蜜心 情淨菩提涅槃心也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무량국토 가운데의 중생은, 모두 각각 가지가지 차별된 마음의 수를 가지고 있으니, 마음의 수가 비록 많으나 모두 망령된 마음이라 할 것이다. 망령된 마음이 진실된 마음이 아님을 알면 이것을 마음이라 이름 할 것이니, 바로 이 마음이야말로 곧 진실된 마음이며 항상스런 마음이며 부처의 마음이며 반야바라밀의 마음이며 청정한 보리열반의 마음이다.

{冶父}病多藥性

병이 많다 보면 약의 성품도 다 알게 된다.

一波動萬波隨 似蟻循環豈了期  今日與君都割斷 出身方號丈夫兒

하나의 파도가 살짝 움직여 만 개의 파도가 뒤따르고, 개미가 쳇바퀴 돌 듯 하니 언제 마칠 기약 있으리오. 돌! 오늘 그대에게 망심을 잘라 주노니, 몸을 뛰쳐나와야 바야흐로 장부라고 부르리라.

所以者何 須菩提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여! 과거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현재의 마음도 얻지 못하며 미래의 마음도 얻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보충설명〉 우리가 생각하는 마음 가운데 과거의 마음은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 찾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찾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 또한 실체가 없기 때문에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冶父}低聲低聲 直得鼻孔裡出氣

조용 조용하라. 바로 콧구멍 속에서 기운이 흘러나오도다.

〈보충설명〉 과거의 마음도 현재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도 찾을 수 없다는 부처님 말씀에 대한 댓글입니다. 조용히 들어 보면 콧구멍에서 나오는 숨소리가 들리는데 이 섬세한 숨소리까지도 바로 마음의 작용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뜻입니다.

三際求心心不見 兩眼依前對兩眼 不須遺劍刻舟尋 雪月風花常見面

삼세(三世)의 마음을 구해도 마음은 볼 수 없건만, 두 눈은 예나 지금이나 상대의 두 눈을 마주하도다. 모름지기 배에다가 자국을 남겨서 잃어버린 칼을 찾으려 하지 말라. 설월(雪月)의 봄바람이 항상 얼굴로 불어오네.

〈보충설명1〉 부처님이 계속해서 아(我)도 없고 마음도 불가득이라고 설법을 이어 가니까, 중생들이 무(無)와 불(不)에 또 집착할까봐, 야보스님이 우리의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有)들에 관하여 있는 그대로 챙겨주는 선시(禪詩)입니다.

〈보충설명2〉 각주구검(刻舟求劍)의 고사를 시구(詩句)에 인용한 것은 부처님의 말씀에 걸려 본뜻을 왜곡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경고입니다.

제18분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에서는 중생(衆生)과 나를 한 몸으로 관찰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고 지금의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에서는 법계의 일체중생을 통틀어서 제도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출세간 용어인 ‘법계(法界)’는 세간의 입장에서 보면 우주와 유사한 개념입니다. ‘우주(宇宙)’의 우자(宇字)는 동서남북상하(東西南北上下)의 공간적 개념이고 우주(宙字)는 시간적 개념으로서 우주(宇宙)는 시간과 공간을 모두 하나로 포괄한 개념입니다. 출세간 입장에서의 ‘법계(法界)’ 또한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모든 중생을 하나로서 수용하는 포괄적 개념이며 바로 진리입니다.

금강경 하권에서는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이 연속적으로 제시되면서 법신불, 보신불, 화신불이 모두 하나로 뭉쳐치고 부처와 중생도 하나로 뭉쳐져서 진리의 모습이 현현되고 있습니다. 법계통화분(法界通化分)에 이르러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와의 문답을 통해, 일체가 무아(無我)이고 과거·현재·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면 복덕을 짓는 바라밀도 허망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을 풀어주십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若有人 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 以是因緣 得福多不 如是 世尊 此人 以是因緣 得福甚多 須菩提 若福德 有實 如來 不說得福德多 以福德 無故 如來 說得福德多

“수보리여! 그대의 뜻은 어떠한가?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칠보(七寶)를 가득 채워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이런 인연으로써 얻는 복이 많다고 하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이런 인연으로써 얻는 복이 매우 많습니다.” “수보리여! 만일 복덕이 실상의 모습이 있다고 한다면 여래가 복덕을 얻음이 많다고 말하지 않거니와, 복덕이 무(無)를 쓰는 까닭으로 여래가 복덕이 많다고 설하노라.”

〈보충설명〉 금강경 상권에서의 보시는 유루복(有漏福)에 관한 언급이지만 여기에서의 보시는 무아(無我)·무상(無相)의 경지에 올라 있는 보살의 보시이기 때문에 무루(無漏)의 복덕에 관한 언급입니다.

{六祖}七寶之福 不能成就佛果菩提 故言無也 以其在量數 故名曰多 如能超過量數 卽不說多也

칠보로 보시하는 복은 (유루복이라서) 불과의 보리를 성취할 수 없기 때문에 “無’라고 말하는 것이며, 그 수량이 많기 때문에 (흔적으로서) ‘多’라고 말하는 것이니, 만일 능히 수량을 초월해 버린다면 곧 많다고 할 개념조차 없는 것이다.

{冶父}猶勝別勞心

오히려 따로이 내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것 보다 수승하도다.

〈보충설명〉 진리를 모르고 복만 짓는 것도 한쪽에 치우치는 것이고, 복은 무시하고 진리만 쫓는 것도 한쪽에 치우치는 것이어서 둘 다 모자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를 알고서 바르게 수행하여 지혜를 증득하는 것이 복을 짓는 실천보다는 더 수승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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