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운봉 스님의 선병요설 법문
55 운봉 스님의 선병요설 법문
  • 법보신문
  • 승인 2006.07.18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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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쳤다는 마음 갖고 희유한 생각 내면
걸림없는 행을 저질러 큰 병통이 된다

참선 공부하는 이가 조사의 공안상에 실다히 참구하지 못하고 거개가 다 병마에 끌달려서 본참공안을 투탈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이는 몸을 꿈적거리기 싫어하고 마음을 조용하게만 만들어 아무것도 않고 일체 모두 잊어버기는 것으로 선을 삼나니, 이것은 마음의 체성이 본래 공하고 환같은 이몸이 무상한 줄 모르고서 쓸데없이 몸과 마음을 국집하여 억지로 용을 쓰는 것이다.

어떤 이는 화두에 대한 의정은 잊어버리고 자기 가슴 속에 한 물건 불별망상만이 조용해지면 당장 참마음이 다 된 줄 생각하고 그 생각을 지켜 일체에 연속되어 끊어지지 않는 것으로 선을 삼나니, 이것은 진과 망의 자체가 물건이 그림자를 따름과 같아서 지키는 자와 있는 자가 모두다 환화인줄 알지 못하고 환법으로 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까닭이다.

혹자는 화두상에 의정을 마련하지 아니하고 마음을 비워 고요하고 잠잠하여 일체를 생각지 않고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선을 삼나니, 이것은 마음으로 생각하는 자체가 본래 공하여 내라는 것이 없음에 끝내 해결되기 어렵나니 이것이 병이 된 것이다.

어떤 이는 조사의 공안을 그저 붙잡고 놓치 않아 가슴속에 우그려두고 세간 온갖 망상을 게다가 돌려대어 한덩어리를 만들어 가지고 짬 없는 모양이 현전하는 것으로 선을 삼나니, 이것은 공안이라는 것이 요지가 의단에 있고 투득하는데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어떤 이는 조사의 공안상에 조작하는 마음으로 의심을 일으켜서 조작하는 생각 생각을 상속시키다가 홀연히 마음이 번거로울 때 문득 ‘단지 안에 기어다니는 자라’를 얻는 것으로 선을 삼나니, 이것은 이 공부가 일체 조작을 떠난 것인 줄을 모르는 탓이며 조작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줄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선지식에게 처음 법문 듣는 길로 즉시에 의단이 단박 일어나서 당장 앞뒤가 끊어져 마치 맹렬한 불무덕이 처럼 세간 일체 형상있는 물건이 접촉할 수 없듯이 하다가 홀연히 가슴 속에 걸리는 물건을 타파하면 마음 꽃이 활짝 펴서 일체 불조의 공안과 기연 차별에 척척 알아 맞추는 것으로 선을 삼나니, 이것은 ‘깨쳤다는 마음’이 그대로 ‘미한 마음’인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이 깨쳤다는 마음을 가지고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면 스스로 그 마음을 흔들어서 그때의 맹리한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인과 따위가 뭐냐? 하고 문득 걸림 없는 행을 함부로 저질러서 큰 병통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에 말한 모든 ‘선병’밖에 어떤 것이 병통 없는 선이겠는가?

새싹은 / 봄 바람이 / 아직 싫어서 / 나무 난간 사이로 / 흔들 흔들 / 기어드네.

운봉 스님은

운봉 스님(1889~1941)은 1889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 13세 때 김일하 스님께 의지해 출가했다. 금강산, 오대산, 지리산 등 명산고찰을 찾아 당대 선지식들을 친견하고 고행 정진하던 중 백양사 운문암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통도사, 범어사, 내원사, 도리사, 수덕사 등지에서 20여 년 안거를 통해 깨달은 바를 다지며 후학들을 제접했다. 향곡이라는 걸출한 제자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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