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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지나치면 재앙이다

기자명 법보신문

우주 공간 물량의 증감 없겠으나
편중되는 양 정상 벗어나면 재앙

모든 사물 존재는 주어진 그대로가 이미 그 자체로 만족할 만한 질과 양을 가지고 있다. 나의 이 몸둥이 하나도 주어진 그대로가 분에 맞는 것 같다. 위로 들어간 음식물이 거의 소진되면 배가 고프다 하여 먹을 것을 찾게 되고, 먹을 것을 찾아 맛이 있다 하여 지나치게 먹으면 배가 부르다 못해 거북하여 움직임이 둔해 진다. 여위었다 살쪘다 하는 표현 자체가 이미 정해진 어떤 기준의 양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표현이니, 이 표현 이전에 이미 누구에게나 맞는 질양의 기준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많다 적다 크다 작다의 계량적 언어의 정확한 척도는 주어진 사물의 존재적 기능이나 주변적 상황에 의하여 설정되는 것으로, 가변적 계량의 척도이지 절대적 척도는 아니다. 따라서 그 사물의 미추(아름다움, 추악함함)적 판단도 그 사물 자체가 선천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처지나 상황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허공을 떠도는 구름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너무도 판이한 두 면을 가지고 있다. 질량적으로 경쾌함을 느끼게 하는 백운(흰 구름)은 문학적 소재로서 아름다움의 상징이 될 뿐만 아니라, 한적함을 찾는 수도자에겐 값 비싼 보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흑운(먹구름)은 문학적 소재로 인용되는 경우가 드물 뿐만 아니라, 험악한 인상으로 다가오면서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신된다.

여기서 한 점의 구름을 만금의 값어치로 삼은 스님의 시 한 편이 연상된다.

“번화 거리 붉은 먼지 한 자나 깊어 / 하고 많은 벼슬아치 뜨락 잠기락 / 누가 알까 한 조각 구름 덮힌 골짜기가 / 가난한 중에게 하늘이 준 만금의 값어치(紫陌紅塵尺許深 幾多遊宦客浮沈 誰知一片白雲壑 天付貧僧値萬金)” 조선 중기의 큰 스님 소요 태능(逍遙太能)의 시이다. 자칭 가난한 중이라 하면서 만금으로 대치시키는 조각 구름, 여기서 있고 없음의 기준을 물량적 평가인 많고 적음으로 기준 삼을 수가 없다. 많이 가짐과 적게 가짐으로 가난과 부자의 기준을 삼는다면, 장안 거리의 호사스러움과 산 속의 정적함은 애초에 비교 대상의 소재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시적 양이 아닌 떠안고 있는 값어치, 곧 그 가치가 빈부의 기준이라면 꼭 양의 다소에 구애받을 일도 아니다. 어차피 산에 사는 산승에게 세속적 기준에서 가난으로 규정됨은 당연하지만, 자연으로 대표되는 하늘(天)의 척도로야 반드시 그럴 이유가 없다.
 
이러한 아름다운 구름의 찬사가 있는가 하면, 요사이 먹구름으로 뒤덮인 허공에서 쏟아놓은 빗물로 재앙이 된 안타까움을 보면서, 많다 적다의 양적 가치가 아름답다 추하다의 질적 가치와 상관되지 않음을 새삼 일깨우게 된다.

물이 아니면 만물이 살 수 없는 고마움의 비이기에 은혜의 비유로 쓰는 말이 우로(雨露 비와 이슬)인데, 이 비가 재앙의 원인이 되었으니, 이는 분명 많고 적음의 주어진 상황의 잘못이다. 우주 공간의 물의 용량으로야 어디에 있건 증감이 없겠지만, 편중되는 질량이 정상을 벗어남은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자 이제 이 재앙을 대처해 나가는 자세로서 우리는 다같이 평상심을 찾자. 화를 입은 쪽에서는 내가 아니었으면 저쪽이 화 입었으리니, 나의 감수가 남의 평안이라는 성자적 너그러움으로 자위하고, 화를 면한 쪽에서는 내 화를 저쪽이 감수했다는 위로 이상의 보답의 자세로 도우면 다시 질량의 평등이 될 것이다. 물질적 손실을 정신적 풍부함으로 환치시키면 행불행이 역시 손벽과 손등의 차이이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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