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고암 스님의 영가 천도법회 법문
56 고암 스님의 영가 천도법회 법문
  • 법보신문
  • 승인 2006.07.2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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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 벗고 본래로 돌아가는 법리 알아야

삼계 육도를 쳇바퀴 돌 듯 윤회하는 도정에서 미혹한 중생의 옷을 벗어버린 영가는 그 육신을 떠나 해탈의 경지로 들어섰습니다. 다시 말하면 안이비설신의의 육근을 다 버렸기 때문에 본래 있던 그 청정한 곳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영가는 그동안 이생에 있으면서 꾸던 꿈을 다 훌훌 털어 버리고 오늘에야 비로소 극락세계로 간 것입니다.

육도를 윤회하는 사이에 그중 하나인 인간도에 머물다가 한때 꿈을 꾸다가 갔습니다. 좋은 꿈은 좋은 삶을 살다가 가는 것과 같고, 나쁜 꿈을 꾸는 것은 나쁜 삶을 살다가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오래 산다고 하는 것은 꿈을 오래 꾸는 것이고, 짧게 사는 것은 잠깐 꿈꾸는 것과 같은 것으로써 윤회의 시간이 길고 짧은 것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꿈의 주인공인 청정 본래의 마음자리, 이 영가는 그 어떤 어둠에도 가리워지지 않는 빛을 찾았다는 말입니다. 자, 여기에 아주 좋은 구슬, 투명한 구슬이 있다고 칩시다. 그리고 이 구슬을 백년 뒤에 꺼내서 닦았다고 칩시다. 이 구슬이 본래처럼 투명하고 깨끗하게 윤이 나겠습니까, 윤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대로 윤이 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영가는 본래의 청정한 마음자리에서부터 그 참성품을 찾아 극락왕생하든가 아니면 다시 언젠가 인간의 모습으로 윤회의 법칙에 따라 환생할 것입니다. 본래부터 영명한 마음자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모이신 친지나 신도님들도 자신의 참성품을 찾기를 바랍니다.

부처님께서는 『지세경』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깨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중생이다.” 이 말씀은 태양과 같은 본래 청정한 마음자리 참성품을 중생들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든 분별, 망상이 검은 그림자처럼 가려 있어서 그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이 참성품은 이렇다 저렇다 하고 일러주어 보았자 될 수 없는 일이므로 스스로 마음자리를 찾아 깨쳐야 할 것입니다.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불생불멸의 마음자리, 그 불성으로 다시 돌아간 이 영가는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인연으로 맺어진 질긴 끈 때문에 잠시동안 슬픈 일일지 모르지만, 이 영가에게는 깨끗한 본래의 자성자리로 돌아가기 때문에 기쁨을 향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49일 동안 중유(中有), 곧 영혼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 중음신의 자리에 머물다가 불성의 근원 자리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영가에 비해 여기 있는 친지나 신도님들은 이 영가가 일찍 가게 되어서 조금은 섭섭하게 생각이 들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꿈을 짧게 꾸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될 일입니다. 중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껍데기인 육신을 벗어놓고 그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아간다는 법리만 생각하면 편할 일입니다.


고암 스님은
고암 스님(1897∼1988)은 19세에 해인사에서 출가했으며 자비보살의 화현으로 추앙 받았다. 스님은 종정의 자리에 세 번씩이나 추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도들이 머물 큰 절 하나 없이 빈손으로 훌훌 털고 종정의 자리에서 내려왔을 정도로 무소유를 몸소 실천했던 스승이다. 정치적으로 어지러운 시절에 종단을 이끌었던 스님은 후학들을 제접하다 88년 10월 해인사에서 열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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