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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정심행선분 1

기자명 법보신문

예로부터 육육은 삼십육이었느니라

<사진설명>경주 불국사 강원.

復次須菩提 是法 平等 無有高下 是名阿多羅三三菩提 以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 修一切善法 則得阿多羅三三菩提
“다시 수보리여! 이 법은 평등하여 고하(高下)가 없기 때문에 이 이름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시간과 공간도 끊어진 진리의 차원에서 일체의 선법(善法)을 닦으면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라.”

〈보충설명1〉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無上의 진리입니다. 이것은 體大, 相大, 用大를 모두 포함한 개념입니다. 體大는 능소관계가 끊어진 진리의 바탕입니다. 하늘과 땅을 비롯하여 시방허공을 남김없이 집어넣고 에워싸고 있으므로 어떤 법도 원만하지 않음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깨달은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근본의 마음은 무위의 광대한 마음입니다. 그 광대한 마음에서 하늘도 나오고 허공도 나오고 깨달은 사람과 미혹한 사람도 나오는 것입니다. 태양은 그림자를 끌고 다니지만 무위의 마음은 밝게 비추어도 그림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무상과 무위의 마음속에는 불가사의한 생명의 바탕이 있는 것입니다. 相大는 마음의 바탕에 法身德, 解脫德, 般若德을 갖춘 것입니다. 法身德은 우리의 마음에 공덕이 갖춰져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왜곡되고 편협한 마음이 진짜 마음인양 생각하다 수행을 통해 바르게 알면 일체중생이 항하사보다 많은 공덕을 구비하고 있으며, 그 마음의 바탕이 투명한 거울처럼 청정하고 밝으며, 부처와 중생이 평등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解脫德은 삼라만상에서 초월한 것을 말하고 般若德은 진리를 깨달아 설법하는 지혜의 모습입니다. 用大는 불국토를 건설하고 중생제도에 나서는 일을 말합니다.

〈보충설명2〉 삼먁은 正遍智의 뜻입니다. 正은 치우침이 없는 바른 지혜인데 無常을 깨달아서 四相을 제거한 청정수행으로 공부하는 것이고 遍智는 중생과 내가 평등한 한 모습인 것을 인식하며 공부하는 것입니다.

〈보충설명3〉 삼보리는 正覺의 뜻입니다. 體大, 相大, 用大를 포함한 진리의 바탕을 깨달아 알고 바른 지혜를 갖추어 일체중생을 두루 제도하는 것이 완성된 정각입니다. 금강경을 공부하려는 우리의 한 생각 발심이 바로 정각입니다. 열매 맺기와 꽃 피우기를 동시에 연출하는 연꽃처럼 인과가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佛智가 원만한 것이고, 그렇게 원만한 佛智로서 삼라만상을 평등한 하나로 보는 것이 正覺이고 圓覺이고 妙覺인 것입니다.

〈보충설명4〉 이 부분은 부처님께서 종종 如如를 말씀하셨기 때문에 수행자들이 단순히 텅 비운 채 멍청히 좌선에만 몰두할까봐 저어하여 정각을 토대로 실천하라고 매듭짓는 부분입니다.

{六祖}菩提法者 上至諸佛 下至昆蟲 盡含種智 與佛無異 故言平等 無有高下 以菩提無二故 但離四相 修一切善法 卽得菩提 若不離四相 修一切善法 轉增我人 欲證解脫之心 無由可得 若離四相 而修一切善法 解脫 可期 修一切善法者 於一切法 無有染着 對一切境 不動不搖 於世出世法 不貪不愛 於一切處 常行方便 隨順衆生 使之歡喜信服 爲說正法 令悟菩提 如是 始名修行 故言修一切善法
보리법이란 위로는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 곤충에 이르기까지 다 부처님의 지혜 종자를 가지고 있어서 부처와 더불어 다름이 없기 때문에 평등하여 고하가 없는 것이다. 보리는 두 모습이 없기 때문에 사상(四相)을 여의어서 모든 선법을 닦아 얻는 것이다. 만약 사상을 여의지 않은 채 일체 선법을 닦으면 我人 등의 相만 키워서 해탈을 증득하려는 마음이 일어 가히 얻을 수 없을 것이나, 만약 사상을 여의고 일체 선법을 닦으면 해탈을 가히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일체 선법을 닦는 다는 것은 일체 법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아서 일체의 경계에 대해 동요하지 않고, 세간법과 출세간법에 탐내지도 않고 애착도 느끼지 않으며, 모든 곳에서 항상 방편을 행하여 중생에게 수순하고 그들로 하여금 환희하고 믿어 굴복케 하며, 정법(正法)을 설하여 보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아야 비로소 수행이라 이름 할 수 있기 때문에 일체 선법을 닦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冶父}山高海深 日生月落
산은 높고 바다는 깊고, 해는 동에서 뜨고 달은 서쪽으로 떨어지도다.

〈보충설명〉 산은 높은 속성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높아야 하고, 바다는 깊은 속성을 지닌 것이기 때문에 깊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높아야 할 것이 높고 깊어야 할 것이 깊을 때가 있는 그대로의 평등한 眞理이지, 산을 낮추고 바다를 높여서 높이를 같게 하는 것이 평등한 건 아닙니다. 절대 평등의 진리에서는 날이 밝아지면 달은 지고 해는 뜨는 것이 평등한 것입니다.

僧是僧兮俗是俗 喜則笑兮悲則哭 若能於此善參詳 六六從來三十六
스님은 스님이고 속인은 속인이요,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운다네. 만일 능히 여기에서 자세히 살핀다면 육육은 예로부터 삼십육이라네.

〈보충설명〉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 떨어져 따로 진리를 구할 것이 아니라, 이 차별의 모습 속에서 절대 평등의 진리를 깨닫고 그 차별된 모습을 또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須菩提 所言善法者 如來 說非善法 是名善法
“수보리여! 말 하는 바 선법이란, 여래가 선법이 아니라고 說하나니, 이를 선법이라 이름 할 뿐이니라.”

〈보충설명1〉 ‘善法은 非善法이고 是名善法이다“와 같이 금강경은 시종일관 언어의 방편을 빌려 일정한 가르침을 제시하고, 그 가르침을 진리의 입장에서 다시 털어내도록 부정하며 다만 그 이름만 붙여 일컬을 뿐임을 들추어냅니다.

〈보충설명2〉 부처님께서는 선법(善法)이라 가르치면 또 악법(惡法)과 구분지어 다른 선법(善法)이 있다고 중생이 집착할까 저어하여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상(四相)을 여읜 자리에서 선법을 닦으라 하셨는데, 거기에 또 선법이라는 相을 내어 집착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六祖}修一切善法 希望果報 卽非善法 六度萬行 熾然俱作 心不望報 是名善法
일체의 선법을 닦으며 과보를 바라면 곧 선법이 아니요, 육바라밀로 치연히 갖추어 짓되 마음으로 과보를 바라지 않으면 이것을 이름 하여 선법이라 한다.

{冶父}面上夾竹桃花 裡侵天荊棘
얼굴엔 유연한 대나무에 복숭아꽃을 단 듯하고, 마음속엔 하늘을 침범할 가시나무를 지니고 있도다.

〈보충설명〉 깨달은 사람은 마음과 행동이 똑같지만 중생은 겉과 속이 다른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보스님의 이 詩句는 중생의 양면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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