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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동산 스님의 마음 법문

기자명 법보신문

망령되게 걸림없는 행 지어서야 되겠나
참공부하면 저절로 삼학이 원만해 질 것

우리의 마음자리는 본래 편안하고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 이 법신이 본래 스스로 남(生)이 없거늘 다시 어느 곳에다 의탁하려 하는가.

마음은 신령스럽고도 또렷하여 항상 모두를 알고, 쫓아 온 바도 갈 바도 또한 본래도 없는 것이다.

옛적에 개오하여 아주 환하고 의심이 없으나, 다만 무시 이래의 번뇌 습기가 물론 다하지 아니 한다고 말한다면, 마음 밖에 나머지 법이 없을진대 번뇌 습기가 이것이 무슨 물건이건대 다하려고 하느냐.

도무지 마음 밖에 다시 한 물건도 없는 줄 알았을진대, 번뇌 습기가 무슨 물건이건대 그것을 다 하고자 하느냐는 말이다.

만약 터럭 끝 만큼이라도 제하여 버릴 번뇌 습기가 남아 있다면, 이것은 아직도 마음을 두렷이 깨치지 못한 까닭이니, 이런 사람은 다만 다시 분발하여 크게 깨치기를 기약할 따름인 것이다.

무몽무상시(無夢無想時)에/ 아주인공(我主人公)이 재심마처(在甚?處)하야/ 안심입명(安心立命)하고/ 꿈도 없고 생각도 없을 때/ 내 주인공이 어느 곳에 있어서/ 안심입명하는고.
여기에는 무엇이든지 어리대지를 못한다. 까딱 잘못하면 그만 미끄러지며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이 들면 이미 그른 것이다. 공부를 지어가는 데로 진실로 용심을 잘 하여야 하니, 꿈도 없고 생각도 없을 바로 그때 내 주인공이 어느 곳에 있어 안심입명하는고.

이렇게만 지으면 단번에 여래 땅에 들어가며 백 척의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나아가 몸을 날려 한 바탕 던질 것이다.

공부인은 계행을 깨끗이 하여야 한다. 더러 보면 계를 우습게 알고 불조의 말씀을 믿지 않는 이가 있다. 부처님께서 그렇게 행하신 일이 없고 조사가 그렇게 한 일이 없다. 해(解)와 행(行)이 분명해야만 한다.

만일 해와 행이 나누어지고 각각 다를 것 같으면 이것은 온전함이 아니다. 고인(古人)은 이렇게 분명히 일렀거늘 예사로 알고 또 무방반야(無妨般若)라 하여 망녕되이 걸림 없는 행을 지어서야 되겠는가. 참으로 공부를 열심히 지어 나가면 저절로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 원만해진다.

계(戒)란 별 것이 아니다. 어리석어서 잃었던 내 마음을 다시 회복하는 그때가 곧 계이다.
그렇게 알면 곧 정(定)이 있고, 정이 있을 때 계(戒)가 나는 것이며, 도(道)가 있을 때 계가 나는 것이며, 도가 있을 때 계가 함께 나는 것이니, 정(定)과 계(戒)와 도(道)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동산 스님은
동산 스님(1988∼1965)은 일찍이 한학을 배우고 중동학교와 의학전문학교에서 공부하다 24세에 범어사에서 용성화상을 은사로 득도했다. 이후 한암 스님에게 사교를, 영명 스님에게 대교를 배우고 금어선원에서 수행 중, 1934년 여름 대나무 숲을 지나다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홀연히 깨달았다.
스님은 조계종의 정화운동에도 앞장섰고, 종정에 추대돼서는 세계불교도대회에 참석해 한국의 임제선풍을 알리기도 했다. 후학을 제접하다 65년 78세를 일기로 열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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