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6 풀씨에 수미산이 들어 있다.

기자명 법보신문

오만은 초보적 진리도 모르는 데서 비롯
모든 존재에 똑같은 생명존중 인정돼야

모든 사물존재의 기준에는 절대적 척도가 없다. 크다 작다거나 아름답다거나 추하다 함이 상대적 처지에 따른 비교적 척도는 되지만, 그 당체로서는 대소 미추의 기준이 있을 수 없다. 내가 작아 보이는 것은 큰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이지 나 홀로의 처지에서야 작고 큼의 척도는 성립이 되지 않는다. 산이 높다 함이야 골짜기나 평지에서 보는 이야기이지 허공에서 내려다보면 산은 낮다 함이 오히려 정확한 계척의 용어이다.

건강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아침이면 뒷산을 오르내린다. 조그마한 동산이지만 때로 숨을 헐떡이는 경우도 있으니 나로서는 높다는 말을 해도 어색한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뒤따르던 청년이 앞질러 뛰는 것을 보면 저 청년은 낮은 평지로 보이나 보다 하여 부럽게 느끼기도 한다. 이 때 이 산이 높다든가 낮다든가 하는 기준도 두 사람의 정황에 따라 엇갈릴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엔 산을 내려오다 길 가의 개미집을 재미있이 살피면서 대화하는 부녀의 오붓함에 잠시 걸음이 멈추었다. 유치원이나 초등하교의 저학년일 예쁜 공주 둘을 데리고 산책에 나선 아버지였다. “너희들 이것이 무엇인지 알겠니? 개미집이란다. 밤새 이 작은 개미들이 자신의 집을 짓느라 흙을 물어다 밖에다 쌓은 것이다.” 하니 어린이는 의아함을 넘어 감탄하듯이 “먼지 같은 이 흙을 어떻게 이렇게 높이 쌓았을까” 한다. 그렇다 ‘높은 개미집’이다. 여기에 높다는 말이 자연스럽다. 허나 방금 올랐던 동산에다 견주면 이 말은 너무도 황당한 것이다. 산에 비해 개미집이 결코 높을 수 없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적확한 표현이다.

방금 산에서 내려와 20여 층의 아파트인 내 집을 들어오는 것이나, 저 개미가 저 높은 제집을 오르내리는 것에 높다는 어의의 차이를 찾을 수 없다. 다만 집 소유자의 등신적 장단의 차이에 의하여 피차의 높낮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개미집이 높다’ ‘아파트가 높다’는 말이 다 맞는다면, 그 안에 포용되는 나와 개미의 등신적 크기도 같은 것이 된다. 등신적 크기가 같다면 똑같은 생명의 존엄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여기서 새삼 모든 생명 존재는 존엄한 평등성이 있음을 다시 알게 된다. 이래서 모든 ‘삼라만상에는 다 같은 불성이 있다’ 함이 불변의 진리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서 다시 “터럭 끝에도 무한 국토가 갈무리되고, 풀씨에도 수미산이 용납된다(毛端藏刹海 芥子衲須彌)”라 함이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알게 된다. 터럭과 바다, 풀씨와 수미산은 애당초 대소의 질량적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극소와 극대의 대칭을 극한적으로 찾아 표현된 대칭이다. 이렇게 극대와 극소를 한 공간으로 수용하고 보니 등차가 없는 평형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이제는 크다 작다의 언어적 의미는 용납될 곳이 없다. 그저 사물 존재의 질적 가치의 평등성으로 똑같다 함이 옳을 뿐이다.

이렇게 사물을 이해하다 보면, 어디에나 불성은 다 있다거나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 함이 자연스레 이해될 듯하다. 불성의 진리에 대소 광협의 양적 차등이 없듯이 생물적 유의 차이에 의한 질적 차등도 없음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의 알량한 지식 따위로 남을 굽어보는 오만이 있다면 자연의 초보적 진리인 불성도 모르는 헛된 지식이다.

개미집의 높이와 내 집의 높이에서 높다는 그 어의에 모순이 없음을 알고 나니 내가 바로 개미의 크기와 똑같아졌다. 이제 다시 6척의 원래 크기로 되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 작은 개미를 6척으로 보아줄 수밖에 없다. 모든 만물이 나보다 고귀함을 이제 알겠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