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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가 강 행 복

기자명 법보신문

禪板에 새겨 놓은 우주자연의 큰 파동

강행복 판화가는 작업실에서 108배를 올린다. 그러나 작업이 안될때면 송광사에 머물며 세속의 번뇌를 씻어낸 후 다시 작업실로 돌아온다. 그의 작업 손길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다.

사진=채한기 기자

강행복! 이름이 좋다. ‘행복’이란 그 이름부터 물었다. 부친이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란다. 옛사람들에게 이름이란 단순한 호칭이나 존재를 구분하는 기호의 성격을 뛰어넘어 존재한다. 한 인간이 자신의 생애에 몇 차례에 걸쳐 이름이 달리 불려지기도 하고 세속의 이름을 지운 자리에 신선의 이름 같은 호가 붙기도 했다. 그럼, 작가의 부친은 아들의 어떤 행복을 기원했을까?

단순 상투성 도상 벗어나

전라도 광주 방림동 시장 근처의 주택가 길가에 위치한 건물 3층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은 작업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비교적 넓고 여유롭다. 곳곳에 수북이 쌓이고 걸려있는 판화들이 현재 그의 작업량과 작업의 추이를 증거한다. 아직 잉크 내음이 가시지 않은 것들이 상당수고 몇 판이 올려져야 하는 밑그림들이 즐비하다. 오래전부터 그의 이름과 몇몇 판화작품을 접해왔고 해서 당연히 그가 이곳 태생의 작가려니 했다.

의외로 그는 경기도가 고향이고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활동을 하다 이곳에 내려왔다고 한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에 말이다. 80년대 말부터 부지런히 이곳을 드나들면서 웬만한 작가들 상당수를 만나본 편인데도 그에 대한 인연이 없었다.

그가 이곳에 터를 잡고 작가로서의 연륜을 쌓아간 세월이 적지 않은 시간을 헤아린다. 그런데 그 연유가 독특하다. 하던 사업이 실패하자 잠시 내려온 것이 이렇게 오랫동안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초기 몇 년간 그는 마음고생이 심하고 여러 모로 그간의 삶에 대한 반성과 회한이 깊었던 모양이다. 그런 마음의 습지에 밀려든 것이 바로 불교였다고 한다.

<사진설명>자신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하라. 37×19㎝ 목판화 (2005)

불경을 읽고 사찰을 다니고 법문을 듣는 과정에서 그는 차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 등을 헤아리게 되었다고 한다. 사업실패와 광주로의 뜻하지 않은 도피, 귀양이 그에게 불교를 선사했던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이 만남은 사업의 부도와 가난, 상실과 여러 아픔을 상쇄하고 나름의 희망과 행복을 추구할 계기를 만들었던 것 같다.

그는 그 행복을 불교에서 찾았다. 물질적 빈곤대신에 정신적 풍만이 향처럼 다가왔고 그는 이를 계기로 다시 창작에 대한 새로운 열의를 가다듬었던 것 같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가 불교와 만나 이를 하나의 은공처럼 보답하는 길이 이른바 불교적 이미지의 그래픽 적 판화로 다듬었다는 생각이다. 디자인이 기본 뼈대로 들어서고 판화라는 복수적 매체의 활용이 접목되어서 만들어진 초기 작품들은 다분히 그래픽적 성격이 강하고 디자인의 틀이 우선했던 그림들이다. 당시에는 주로 불교적 도상의 손쉬운 차용에 의한 그림들이었다면 근작은 이전의 다소 상투적인, 단조로운 도상의 연출이나 장식적인 배열에서 벗어나 좀 더 근원적인 불교 이치나 작가 자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면서 이를 자연이미지, 추상적인 패턴들과 함께 실어 나른다.

<사진설명>미륵도량 금산사. 60×90㎝ 목판화(2004)

이는 기존의 흔한 불교이미지의 판화작업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데서 나오고 있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작업은 그 자체로서 말해야 된다는 생각에서 판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차원에서의 고려가 보다 적극 개입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불교적 교리나 이미지를 드러내는 차원에서 많은 판화작업들이 행해지고 있지만 사실 상당수는 단조로운 상투형 도상들의 연출이나 간략한 도안처럼 머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강행복은 그로부터 벗어날 필요를 느끼면서 판화 작업 자체의 완성도와 질의 극대화가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근작은 여러 색의 판을 정교하게 겹쳐 올리고 칼 맛의 운용을 보다 확장시키는가 하면 판화가 하나의 독립된 회화처럼 자립적인 화면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겨냥되어 있고 이미지 역시 연꽃, 불상, 석탑, 사찰 등의 형태에서 벗어나 자연이미지나 추상적인 기호들의 풍경이 두드러진다.

예술성, 회화성을 겸비하지 못하면 판화는 도태되며 불교적 이미지를 다룬 작업 역시 그 판화의 질적 측면이 담보되지 못하면 그만큼 소통의 측면이나 불교교리나 사상의 온전한 이미지화에서 결정적으로 부족해진다는 인식에서 나온 결과이다.

<사진설명>남산과 북산. 76×56㎝ 목판화(2006)

강행복의 근작은 목판의 깊은 맛을 살려내려는 시도와 함께 색채가 풍부해지면서 질감과 두께가 풍성해지는 시도 아래 나온다. 수많은 선의 교직이 두터운 울림을 주는 한편 그로인해 화면은 겹성의 진폭을 두르고 있다. 시간과 노동이 두껍게 깔린 화면은 자연의 청각적인 접촉을 울려주고 이는 단순한 자연경관이나 풍경의 이미지로 머물지 않고 자연 자체에 내재해있는 어떤 근원적 요소나 생명의 이치 같은 것들의 접촉으로 시선들을 유인하는 편이다.

그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내면을 시각과 청각 혹은 통감각적인 것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그 보편적 주제를 어떻게 조형적으로 구현하느냐의 과제를 한 축으로 하고 아울러 그 작업세계가 어떻게 불교적인 세계를 단순한 시각의 세계가 아니라 정신적 공명의 선으로 끌어올릴 수 있느냐를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도 아래 풀려나온 근작들이 작업실 곳곳에 걸려있는데 그 작품들은 모두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감을 자랑한다. 아울러 섬세한 선들의 무수한 교차가 올려져있음이 눈에 띈다.
그는 여러 개의 색 면을 깔아놓고 그것들을 보면서 그 위에 여러 판들을 축적시킨다. 그로인해 색채들을 매 순간 인연, 만남에 따라 다르게 올려진다. 판화는 이 판과 저 판과의 우연한 만남에 의해 예기치 않는 효과가 나오기도 하고 필연적인 만남 아래 조율되기도 한다.

풍부한 색채 두꺼운 질감 독특

그는 그런 판들의 만남, 우연을 시험한다. 바람이나 물과 같이 지속해서 움직이고 흐르는 자연의 숨결이나 기운 들이 그 판 위에서 파동친다. 그것은 눈에 보이기보다는 그 너머에 존재하는 힘이고 흐름이고 숨결이자 자장 같은 것일 텐데 그는 이를 칼·선으로 잡아내고자 한다.

<사진설명>독도-너 아름다워 이땅이 온통 아름다우니. 24×30㎝ 목판화 (2006)

그것은 우주를 소리로 느끼고 운동으로 파악하고 자기 온 몸으로 감지하려는 이의 절박한 반응이자 교호인데 이는 아마도 부처님의 음성을 듣고 이 우주자연의 철리를 깨닫고자 하는 모든 불자의 자기 연마에서 빚어져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그는 불자로서의 자기 수행 과정이 자연스레 칼·목판 작업의 수행으로 연결되는 지점에서 근작들을 풀어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아마 근작들이 이전의 도상적, 디자인적 상징의 연출에서 벗어나 내부를 드러내는 것으로 나가는 것 같다.

그는 작업실에 와서 108배를 하고 자주 송광사에 가서 숙박과 법문을 듣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세속이 미진한 때를 벗고 마음을 추슬러 다시 작업실 공간으로 환속한다. 작업실은 그 법문을 통한 스님의 음성과 사찰의 기운과 자연의 청량함을 안고 나가며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부처님의 말씀을 이미지화하는 수행의 장소가 된다. 

(미술평론, 경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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