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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과 茶道로 민족정기 세운 선각자”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06.08.21 13:29
  • 댓글 0

‘효당 최범술 생애와 업적’ 추모학술대회

“효당은 해방 그날까지 독립운동 전개”
항일로 외적 독립-차로 내적 독립 추구

<사진설명>8월 1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개최된 효당 스님 추모학술대회.

만해와 함께 만당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 명성학교를 세운 민족교육자, 한국의 차도를 재건한 차인, 제헌국회 국회의원 최범술 스님. 일제 식민지와 독재 정권을 절망에 빠진 민족과 스스로에게 빛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한 명의 위인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수식어가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의 삶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수식어가 등장했으니 바로 친일승려라는 호칭이 그것이다. 임혜봉 스님은 1993년 『친일불교론』, 2005년 『친일승려 108인』에서 효당 최범술 스님을 친일 승려 중의 한 사람으로 지목한 바 있다.

8월 15일 한국불교문화기념관에서 개최된 추모학술대회 ‘효당 최범술 스님의 생애와 업적’은 최근 제기된 효당 스님에 대한 잘못된 역사적 평가를 재고하고, 효당 스님의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학술대회의 주제는 크게 항일운동, 원효교학자, 현대 차도의 중흥조라는 세부분으로 조명됐다.

「효당 최범술의 생애와 사상」을 주제로 기조발표를 한 동국대 김상현 교수는 최근 임혜봉 스님을 통해 제기된 효당 스님의 친일 논란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며 학술대회의 포문을 열었다.

김 교수는 “최근 몇몇 재야학자들이 1937년 효당 스님의 북지황군위문사를 두고 중일전쟁 전후 친일로 변절했다고 주장하는데, 위문을 다녀온 지 몇 달 후인 1938년 10월 효당은 만당의 활동으로 인해 구속된 데 이어 1942년 9월 신채호문집 간행을 주도한 죄목으로 또다시 구금되었다. 당시 만해 스님이 효당 스님을 위문하기 위해 구치소로 꽃다발을 들고갔다”며 “친일 승려가 황군 위문을 다녀온 직후 또다시 구속될 수 있으며, 그 엄격하기로 유명한 만해 스님이 어찌 친일 승려의 위문을 갈 수 있었겠냐”고 반박했다.

이어 「만해와 효당의 인간 관계 연구」를 발표한 신구대 전보삼 교수와 「만당과 효당 최범술」을 발표한 부천대 김광식 교수는 효당 스님의 항일운동을 중점적으로 조명했다.
 
전보삼 교수는 “만해와 효당의 깊은 인연은 살아생전에는 독립운동의 동지이자 사제 관계로, 만해 사후에는 만해유고를 정리해 한용운 전집을 간행해 후인들에게 전달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며 이들의 관계를 “멀리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옛 현인들과 벗하는 상우천고(尙友千古)의 관계”라고 설명했다.

만당(卍黨) 운동을 중심으로 만해와 효당의 관계를 설명한 김광식 교수는 “1933년 해산된 만당 본부는 서울에서 경남 다솔사로 그 중심지가 전환되었고 만당의 당원과 우국지사들이 다솔사를 왕래하면서 다솔사는 항일의 거점이 되었다”며 “만당의 다솔사 거점은 효당 최범술의 민족의식의 기반하에서 전개될 수 있었으며, 효당은 만당을 재건하면서 항일투쟁을 추진, 다솔사 강원과 광명학원의 설립·단재전집 발간·한국사 교육·민족의식 교육 등을 전개했다”고 설명했다. 만당은 1930년 5월 만해 한용운 스님을 중심으로 결성된 항일의식이 투철한 불교청년 조직으로, 1933년 4월 해산되기까지 약 3년 간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단체다. 그 만당 당원의 한 명이 바로 효당이었으며, 만당이 표면적으로 해산된 후 점조직의 거점이 바로 다솔사였다는 것이다.

「원효의 반야심경소와 효당의 복원해석학」을 발표한 김용표 교수와 「원효 십문화쟁론 연구의 지형도」를 발표한 고영섭 교수는 평생을 원효 연구에 매진한 효당의 학문적 업적을 집중조명했다.

서강대 안선재 교수는 차인으로서 효당의 삶을 영문 논문 「Korean Patriot and Tea Master: Hyodang Choi Beom-Sul」로 발표했다. 안 교수는 효당 스님의 차도를 ‘차도무문(茶道無門)’으로 설명하면서 “원효와 마찬가지로 효당은 출가자나 재가자 모두, 교육이나 지위고하, 도덕기준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여기 지금, 바로 이 생에서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불도를 이룰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차를 마시는 것이 자비를 함양하고 깨달음에 도달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또 「근현대 한국 차문화를 중흥시킨 초의와 효당」을 발표한 채정복 효당가 반야로 차도문화원장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성리학적 질서체계가 붕괴돼가던 시기 피폐해진 차 문화를 중흥시킨 중흥조가 초의 스님이라면, 효당 스님은 암흑과 격변의 역사 속에서 차문화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한 중흥조”라며 “효당 스님은 총체적 인생살이를 차 살림살이라고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학술대회의 총평을 맡은 김충렬 전 고려대 대학원장은 “효당의 뜻을 바르게 전달하는 후학과 그의 차도를 이어가는 차인들, 그리고 효당의 생애를 영문으로 옮겨 세계로 알리는 학자가 있으니 효당 스님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며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모함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사이니, 이와 같은 자리를 마련하여 스승을 바르게 세우고자 한 후학들의 정성을 높이 평가한다”는 찬사로 학술대회를 마무리지었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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