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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폴론나루와 유적의 최고봉 갈 비하라

기자명 법보신문

붓다 열반마저 승화시킨 랑카 예술의 걸작

<사진설명>갈 비하라에 조각된 붓다와 아난다. 태양을 상징하는 무늬가 조각된 둥근 베개 위로 붓다는 오른팔을 올려 머리를 받치고 오른쪽으로 누워 열반에 들었다.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애써 참으려는 듯 아난다는 두 팔을 끌어모아 어깨를 감싸 안고 있다.

붓다께서 쿠시나라의 사리쌍수 아래 누우셨다.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옆구리를 아래로 하고 오른쪽 발을 얹고 사자처럼 누워 바르게 생각하고 바른 마음을 가졌다. 그때 사리쌍수가 때에 맞지 않게 꽃을 피우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만개하여 꽃들이 붓다를 향해 휘날리듯 쏟아져 내렸다. 마치 열반을 앞둔 붓다께 최후의 공양을 올리려는 듯.
아난다는 기둥에 기대어 소리 죽여 울먹이며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배워야 할 사람이고 아직 이루어야할 것이 많다. 그런데 나를 불쌍히 여기는 스승은 오늘 돌아가실 것이다.’

아무리 참으려고 손으로 가슴을 움켜 줘도 복받치는 울음에 어깨는 심하게 들썩였다.

병풍처럼 펼쳐지는 붓다의 조각들

붓다의 열반 앞에서 많은 이들은 부서진 바위처럼 쓰러져 몸부림을 쳤다. 그들은 “붓다께서 너무 빨리 죽는구나. 선하고 행복한 이가 너무 빨리 죽는구나. 세상의 눈이 너무 빨리 감기는 구나”라며 땅을 치고 애통해 했다. 하지만 아라한과를 증득한 수행승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며 그 슬픔을 이겨냈다. “만들어진 모든 것은 무상하다. 어떻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라고 말하며. 하지만 아난다의 슬픔은 남달랐다. 그는 붓다의 사촌인 동시에 20년간 붓다를 곁에서 시봉하였고 피를 토하는 고통 속에서도 최후까지 진리의 말씀을 전하신 붓다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본 증인이기도 했다. 그런 아난다이기에 붓다의 열반은 땅을 치는 울음으로도 다할 수 없는 가슴을 허무는 슬픔이 아닐 수 없었다. 붓다가 열반에 들자 아난다는 자신의 슬픔을 이같이 표현했다.

“그때 두려운 일이 있었다. 그때 머리털이 곤두서는 일이 있었다. 모든 점에서 뛰어난, 바르게 깨달음을 연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때론 땅을 치는 통곡보다 눈을 질끈 감고 참아내는 속울음이 더욱 가슴 저린 슬픔을 빚어내기도 한다. 폴론나루와에서 만난 아난다, 열반에 든 붓다 곁에서 가슴을 끌어안고 슬픔에 잠긴 아난다의 석상은 바로 그런 속울음에 떨고 있는 듯 했다.

폴론나루와 유적군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갈 비하라(Gal Vihara)는 폴론나루와에서 펼쳐진 싱할라 왕조 제2의 황금시대가 낳은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폴론나루와 유적군 입구에서 잘 정비된 가로수 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에 조각된 거대한 붓다의 좌상이 먼저 순례객을 맞는다. 결가부좌를 하고 왼쪽 손바닥 위에 오른쪽 손바닥을 위로하여 포개 얹은 붓다의 모습은 당당하면서도 편안해 보인다. 마치 황금기를 맞이한 폴론나루와 시대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듯 넓고 굳건한 어깨를 곧게 펴고 선정에 든 붓다는 늠름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좌상의 복부에는 사각형의 상처가 남아있다. 누군가가 붓다의 배를 파내려 한 것이 분명하다.

<사진설명>붓다의 열반으로 슬픔에 젖은 아난다의 조각. 아난다의 눈썹을 지나 미간으로 이어지는 회색선은 슬픔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더욱 뚜렷이 보여준다.

“약 20여 년 전에 어떤 유럽인이 이 붓다를 파괴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자였는데 새벽에 이곳에 와서는 저 좌상의 배를 부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코끼리가 나타나 그 남자를 죽였데요.”

좌상의 배에 남아있는 흔적은 그때의 상처란다. 주변으로 약간의 숲이 있고 20여년 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과연 안내인의 이 말이 모두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설명에서는 갈 비하라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져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좌상의 오른편엔 조금 작은 좌상이 모셔져 있는 석굴이 있고 그 옆에 아난다와 열반에 든 붓다의 모습이 조각돼 있다. 이 석굴은 선정에 든 붓다와 열반에든 붓다의 영역을 나눠주는 자연스런 구분점이 되어주고 있다.

붓다는 태양을 상징하는 무늬가 조각돼 있는 둥근 베개 위로 오른팔을 올려 머리를 받치고 오른쪽으로 누워 열반에 들어있다. 반쯤 감겨 있는 눈매는 더없이 뚜렷하지만 어느 한 곳을 응시하고 있진 않기에 이미 붓다께서 열반에 드셨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단정하게 모아 뻗은 두 다리 위로 붓다의 가사가 물결치듯 덮여있다. 갈 비하라를 조성한 이름 모를 장인은 붓다의 법체를 덮고 있는 가사자락을 표현하기 위해 섬세한 손놀림으로 옷자락의 흘러내림을 조각해 넣었다.

열반에 든 붓다의 머리맡에 서 있는 아난다는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애써 참으려 두 팔을 끌어 모아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아난다는 열반에 든 스승의 모습만은 차마 볼 수 없는 듯 질끈 눈을 감은 채 살짝 고개를 돌려 바위에 몸을 기대었다. 슬픔이 가득한 그의 모습은 다음 순간 돌아서서 바위에 머리를 묻고 소리 없는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장인의 예술은 열반에 든 붓다의 법체가 빚어내는 우아한 곡선이나 슬픔을 가득 담은 아난다의 자태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 위대한 장인은 갈 비하라가 조성돼 있는 바위 속 깊숙한 곳에 세월이 새겨 넣은 회색의 선까지도 꿰뚫어 보는 심안을 갖고 있었나 보다. 그 심안은 한낮 잡티에 불과했을 바위의 회색 줄무늬들을 또 다른 예술의 도구로 아낌없이 활용하고 있었다. 어쩌면 장인은 처음부터 이 바위가 품고 있는 회색의 줄무늬까지도 염두에 둔 채 이 거대한 석상을 조성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난다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그런 생각은 추측을 넘어 확신이 되어 버렸다.

아난다의 눈썹을 지나 미간으로 이어지는 회색 선은 슬픔으로 일그러진 그의 미간을 더욱 뚜렷이 보여주었다. 특히 높이 4.6m의 이 아난다를 올려다보아야 하는 순례자에게 이 회색 선은 슬픔에 그늘진 아난다의 얼굴을 더욱 강렬하게 각인시키며 그의 슬픔을 보는 이들의 마음 속 깊이까지 전달해주고 있었다.

바위 속 잡티마저 도구로 사용한 장인

<사진설명>20여년 전 이교도의 훼불로 상처를 입은 붓다의 좌상. 넓고 굳건한 어깨를 곧게 펴고 선정에 든 붓다의 모습은 늠름해 보이기까지 한다.

혹자는 이 입상이 연꽃 좌대 위에 서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아난다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모습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깨에 닿을 듯 늘어진 귀와 머리의 나발 등을 살펴보면 그런 주장에도 일리가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일개 순례자의 눈에 갈 비하라의 석상은 분명 열반에든 붓다와 슬픔에 젖은 아난다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진리를 깨달은 붓다께서 ‘모든 것은 소멸한다’는 진리 그대로 스스로의 육신 역시 소멸함을 보이셨다면 아난다는 위대한 스승과의 이별 앞에서 슬픔에 몸을 떨며 애통해하는 제자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이고 있는 것이다. 12세기 이곳에 갈 비하라를 조성한 싱할라 사람들은 붓다의 열반과 아난다의 슬픔을 미화하거나 과장할 생각 따윈 전혀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죽음 혹은 슬픔 역시 삶의 한 축이라면 그것을 애써 외면할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스리랑카 예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갈 비하라는 그렇게 오래도록 순례객의 발길을 잡아 두고 있었다.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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