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1 화무소화분 2

기자명 법보신문

부처와 중생은 무슨 물건인고?

망상 일으키면 중생이고 자각하면 부처
변화무쌍한 겉모습의 근원은 매한가지

<사진설명>경주 불국사 비로전의 비로자나좌불.

{六祖}須菩提 意謂如來 有度衆生心 佛 爲遣須菩提 如是疑心 故 言莫作是念 一切衆生 本自是佛 若言如來 度得衆生成佛 卽爲妄語 以妄語故 卽是我人衆生壽者 此 爲遣我所心也 夫一切衆生 雖有佛性 若不因諸佛說法 無由自悟 憑何修行 得成佛道
수보리가 아마도 ‘여래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나 싶어, 부처님께서 수보리의 이 같은 의심을 버리게 하려고 “막작시념(莫作是念 : 이런 생각 하지 말라)” 하신 것이다. 일체 중생이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만약 ‘여래가 중생을 구제하여 부처를 이루게 했다’라고 한다면 곧 망어(妄語)이며, 망어를 하는 까닭으로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떨어지는 것이니, 이는 나와 상대가 있다는 마음을 버리게 하려는 것이다. 대저 일체 중생이 비록 불성이 있으나 만일 모든 부처님의 설법을 말미암지 않으면 스스로 깨달을 연유가 없으니 무엇을 의지해 수행하여 불도(佛道)를 이루겠는가?

〈보충설명〉 처음 부분의 ~‘의위(意謂)’~는, ‘뜻하건대 아마도~일 것이다’ 라는 뜻을 함축하는 것입니다.

{冶父}春蘭秋菊 各自馨香
봄의 난초와 가을의 국화가 제각기 스스로 향기를 피우네.

〈보충설명〉 봄에 피는 난초나 가을에 피는 국화는 서로 모양이 다른 꽃이지만 향기가 나는 점은 같습니다. 난초와 국화는 삼라만상의 차별적인 모습을 비유하는 것이며 향기는 삼라만상의 차별 가운데 존재하는 절대 평등의 진리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生下東西七步行 人人鼻直兩眉橫 悲喜皆相似 那時誰更問尊堂 還記得在
태어나서 동서로 일곱 걸음을 내딛음이여! 사람마다 코는 수직이요 양 눈썹은 횡이로다. 옹알이 하는 아기나 우는 아기가 거기서 거기이고 기뻐하는 아기나 슬퍼하는 아기가 서로 비슷한데 누가 높고 낮은지를 어찌 물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집착하겠는가?

〈보충설명1〉 부처님께서는 태어나자마자 동서로 일곱 걸음을 걸으셨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코는 수직으로 눈썹은 횡으로 생겼습니다. 또 아기들이 불편하면 울고 좋으면 웃는 것이 모두 다 똑같은데 이런 아기들을 두고 누가 귀천(貴賤)을 묻겠습니까? 아기마다 절대 평등한데 귀천이 있을 수 없습니다.

〈보충설명2〉 환기득재마(還記得在)의 재(在)는 특별한 의미가 없는 조사입니다.

〈보충설명3〉 치()는 ‘따따따~’하는 아기 옹알이의 의성어, 화()는 ‘앙앙~’ 하는 아기 울음의 의성어입니다.

須菩提 如來 說有我者 則非有我 而凡夫之人 以爲有我 須菩提 凡夫者 如來 說卽非凡夫 是名凡夫
“수보리여! 여래가 ‘나’라는 존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곧 ‘나’라는 존재가 비워진 것이니라. 그러나 범부들이 ‘나’라는 존재에 집착하므로, 수보리여! 여래가 범부라는 것을 (진리의 차원에서) 범부가 아니고 이름이 범부일 뿐이라고 설하는 것이니라.”

〈보충설명〉 누누이 강조한대로 금강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것을 철저하게 비우고 부정해야만 합니다. 금강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리의 차원에서 명상(名相)을 부정하고 다만 이름만 ~뿐이라는 논리를 통해 대긍정(大肯定)의 대아(大我)로 나아가게 합니다.

{冶父}前念衆生後念佛 佛與衆生是何物
앞생각이 망상에 사로잡히면 중생이지만 뒷생각에 깨달으면 부처니라. 부처와 중생은 무슨 물건인고?

〈보충설명〉 부처와 중생은 깨닫고 못 깨닫고의 차이일 뿐입니다. 내가 망상을 일으켰을 때는 중생이고 망상이 망상임을 자각하면 그 순간 부처입니다. 탁한 물이 가라 앉으면 맑은 물이 되는 것처럼 망상의 당처가 부처이니 내가 부처도 되었다가 중생도 되는 것인데 부처와 중생이 어디에 따로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이 무슨 물건이겠습니까?

不現三頭六臂 却能拈匙放 有時醉酒罵人 忽爾燒香作禮 手把破砂盆 身披羅錦綺 做模打樣百千般 驀鼻牽來是
머리 세 개, 팔 여섯 개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숟가락을 잡을 때엔 젓가락을 놓아야 하도다. 술에 취에 남에게 시비 하다가도 홀연히 향 사르고 부처님께 예를 올리도다. 손에는 깨진 그릇 들고 몸에는 비단옷을 걸쳤도다. 모양을 짓고 부수는 게 백 천 가지이나, 문득 코를 들고 나타나면 바로 근원이로다. 이잇-!

〈보충설명1〉 아무리 겉모습이 현란하고 변화무쌍하게 서로 다르지만 근원의 모습은 다 똑 같은 사람입니다. 겉모습을 진짜라고 착각하고 거기에 앉아 버리면 절대평등의 진리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보충설명2〉 삼두육비(三頭六臂)는 제석천왕 앞에서 신출귀몰하며 재주 부린 나타태자의 고사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보충설명3〉 ‘이()-’는 ‘에잇- 또 쓸데없는 소리 했군~’하는 뜻을 함축한 의성어입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아무 것도 붙지 않는 청정한 부처님의 경계를 강조하기 위한 마지막 결어(結語)로 자주 등장합니다. 〈계속〉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