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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윳따니까야』 ⑫

기자명 법보신문

존재는 행위·의식·갈애가 만든 것일 뿐

쌍윳따니까야의 수행녀 쎌라의 경이 있다. 쎌라는 알라비 왕국의 공주로 태어났으므로 알라비까라고도 불렸다. 그녀가 아직 처녀였을 때에 부처님께서 알라비 왕국을 방문했다. 그 때 쎌라는 부왕과 함께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신도가 되었으나 나중에 발심하여 출가해서 아라한이 되었고 주로 싸밧티 시에 살았다. 어느 날 싸밧티 시에서 탁발을 하고 식사를 마친 뒤, 탁발에서 돌아와 대낮을 보내려고 안다 숲으로 갔다. 안다 숲의 숲속 깊이 들어가 대낮을 보내려고 한 나무 밑에 앉았다.

과거불인 깟싸빠 붓다가 열반에 든 직후였다. 이곳에 500명의 도둑이 살고 있었다. 재가신자이자 전법사인 야쏘다라는 탑묘를 세울 돈을 모아서 가져오다가 그들의 습격을 받아 눈이 멀게 되었다. 이 도둑들은 야쏘다라를 맹인으로 만든 과보로 모두 눈이 멀었다. 그래서 이 눈먼 맹인들의 이름을 따서 맹인의 숲이라고 했다. 이 숲은 싸밧티에서 남쪽으로 3.5km 떨어진 지점에 있었다.

이 무시무시한 숲에서 쎌라는 깊은 명상에 들었는데, 악마가 나타나서 이와 같이 물었다. 악마는 여기서 잘못된 물음을 상징한다.

“누가 이 환영을 만들었는가? 환영을 만든 자는 어디에 있는가? 환영은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이 환영은 어디에서 소멸되는가?”

악마는 자신이 괴로움의 장소이므로 우리 자신의 존재 즉 이 몸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우리가 누가 나를 만들었는가? 나를 만든 자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서 생겨나서 어디에서 소멸되는가?’라는 물음은 악마적인 것이다. 그러자 수행녀 쎌라는 ‘이것은 악마이다.’라고 알아채고 악마에게 시로 대답했다.

“이 환영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며, 이 재난은 타자가 만든 것도 아니니 원인을 연유로 생겨났다가 원인이 소멸하면 사라져 버리네. 어떤 씨앗이 밭에 뿌려져 흙의 자양분을 연유로 하고 습기를 조건으로 하여, 그 두 가지로 성장하듯이.”

내 몸은 물론이고 모든 존재는 타자가 만든 것도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다. 여기서 타자라고 하면, 자신이 아닌 것들, 예를 들어 하느님, 절대자, 악마, 시간, 운명 등이 모두 포함된다. 창조자라는 타자가 나를 만들었다고 믿는 것이나 사주팔자나 점성술에 의해서 나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 것이나 모두 타자원인설에 속한다. 타자원인설은 다른 것에서 다른 것이 생겨난다는 것으로 원천적으로 인과를 부정하는 악마적인 교설이다. 그렇다고 나는 내가 만들었다고 믿는다면, 같은 것에서 같은 것이 생겨났다는 것이 됨으로 역시 인과를 부정하는 악마적인 교설이다. 그래서 나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이나 나는 어디에서 생겨나서 어디에서 소멸하는가라는 물음은 모두 악마적인 것이다. 그렇다고 이 두가지 교리 사이에 타협을 해서 어느 정도는 타자적이고 어느 정도는 자기적이라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렇다고 타자적도 아니고 자기적도 아니므로 완전히 우연적이라는 것도 옳지 않다.

나의 몸은 물거품 같은 환영이지만 원인이 있어 생겨났다가 원인이 소멸하면 소멸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생겨나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지은 행위(業)라는 밭과 의식이라는 씨앗과 갈애라는 물기가 있기 때문이다.

쎌라는 악마에게 다음과 같이 계속 시를 읊는다.

“존재의 다발과 인식의 세계 또는 이 감각영역들은 원인을 연유하여 생겨났다가 원인이 소멸하면 사라져버리네.”

존재의 다발은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五蘊:물질(色)·느낌(受)·지각(想)·형성(行)·의식(識))을 말하고, 인식의 세계는 열여덟 가지 인식의 세계(十八界), 즉 시각의 세계, 형상의 세계, 시각의식의 세계, 청각의 세계, 소리의 세계, 청각의식의 세계, 후각의 세계, 냄새의 세계, 후각의식의 세계, 미각의 세계, 맛의 세계, 미각의식의 세계, 촉각의 세계, 감촉의 세계, 촉각의식의 세계, 정신의 세계, 사실의 세계, 정신의식의 세계를 말한다. 여섯 가지 감각영역(六入處)을 말한다. 시각의 영역, 청각의 영역, 후각의 영역, 미각의 영역, 촉각의 영역, 정신의 영역을 말한다.

쎌라는 말하고 있다. 우리의 몸은 없다. 있는 것은 존재의 다발과 인식의 세계와 감각의 영역이다. 그 속에 무수한 씨앗이 생겨나서 자라고 변화하면서 소멸하고 이어진다. 그러자 악마는 자신의 정체가 탈로 난 것을 알고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바로 그곳에서 사라졌다.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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