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선 스님]섬 이야기

기자명 법보신문

인생의 고해에 큰 파도 몰아칠 때
내 불성이 곧 피난처임을 알아야

서해안의 초라한 암자에 평생 숨어서 수행의 절개를 잃지 않은 이름 내지 않는 어느 노장님의 문안을 마치고 섬으로 가는 마지막 배에 올랐다.

하루해는 마치 푹 익어서 꼭지 빠지려는 홍시처럼 바다에 반쯤 몸을 적시고 섬들은 장엄한 낙조의 후광에 깊은 선정에 들은 노장님처럼 단정히 앉아 있다.

세상 인연이 다해감을 짐작하고 두 달여의 단식으로 육신의 찌꺼기마저 깨끗하게 정화해 버려서 몸은 메말라 가죽만 남았지만 얼굴빛은 동자승의 모습으로 해맑아 보였으며 두려움 없는 눈빛이 생사에 걸림 없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선상에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싸늘해 졌다.

십여 년 전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출가 한다는 마음으로 유배지에 온 사람처럼 비장한 각오로 이 섬에 들어오면서 처음 배를 탔을 때의 감회가 새롭다. 선방에서 정진 하면서 경계에 부딪쳐 활로를 잃어 미지근하게 지내던 차에 선지식의 지시로 경계가 일시에 무너지고 나니 아까운 세월을 낭비 했다는 생각에 참으로 억울하고 분한 마음으로 이 섬에 오는 배를 탔을 때는 본분사를 마치면 곧 나가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귀향이 될 줄 몰랐다.
거금도(居金島), 금인이 사는 섬으로 금인은 깨달은 사람으로 부처님을 상징하고 일찍이 보조국사님께서도 이 섬에 암자를 세우고 정진을 하였으며, 한때 프로레슬러로 온 국민의 영웅이었던 김일 선생의 고향이다.

인생이라는 고해에서 큰 파도가 휘몰아칠 때 불법을 만나야하고 스스로가 난을 피하는 안전한 섬이 되어야 한다. 저 파도소리를 따라서 곧장 들어가면 소리는 없고 다만 들을 줄 아는 성품이 나타나는데 여기가, 누구나 가지고 있어서 세상의 만 가지 난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섬이기 때문이다.

생사란 한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말함이니 이러한 때를 당하여 용맹스럽게 화두를 챙겨야 한다. 화두는 한마디로 의심인데 의심이라는 마음의 작용을 통해서 순간순간 본래 완전한 성품을 드러내는 것으로 의심을 통해서 의심하는 놈을 회광반조하는 의심이어서 일체 업력을 녹여 버리고 깨달음을 성취 한다.

무저선(無底船)에 오르니 일체 생각의 흐름이 끊어지고 오로지 현전일념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깨닫고 보니 일체 중생이 나와 더불어 조금도 차별이 없는 원만한 지혜덕상을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선에서는 이것을 마음이 본래 부처라고 했으며 마음은 닦는 것이 아니며 다만 오염 시키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은 마조 선의 핵심인데 듣고 깊은 믿음을 성취하면 큰 공덕이 되겠지만 닦아서 부처가 되려고 한다면 점점 멀어질 뿐이다.

항구에 등대 불빛이 차갑게 흔들리고 있다. 도착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어둠속으로 사라져 간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이렇게 와서 보니
어젯밤 보름달이
갈대밭에 떨어졌네

거금도 금천선원장 일선 스님 heajoum@ggseon.net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