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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 스님]병든 비구의 교훈

기자명 법보신문

승가 허물 들춰 스스로 격 낮추는 일 많아
중생 귀의처도 존귀함 잃지 않을 때 가능

부처님은 길 위의 수행자였다.

어느 한 곳에 머무시기보다는 여러 곳으로 다니시면서 교화를 하시는 편이었다. 어떤 정사에 도착하든 시자인 아난존자에게는 고정적인 소임이 있었다. 그것은 하루에 두세 차례 비구들의 거처를 돌아보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야 혹 적당한 일이 아니면 부처님께 말씀드려 시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직접 앞장서서 가셨다. 도량의 한쪽 끝에 다다랐을 무렵, 한 거처에서 역겨운 냄새가 심하게 진동하는 것이었다. 발길이 자연스레 그곳으로 옮겨졌고, 부처님은 아난존자를 데리고 움막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셨다. 안은 어두웠고, 흙바닥에 병든 비구가 신음하고 있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은 상태였고, 거동을 못하는 비구에게는 마실 물 한 방울도 없었다.

“아난아, 물을 길어 오거라. 이 비구를 씻겨 주자구나.”

아난존자가 물을 길어왔고, 부처님은 손수 비구의 몸을 일으켜가며 구석구석 씻기셨다. 제자들도 거들었다. 악취가 풍기는 가사를 빨고, 안을 치운 다음, 새로 마련한 자리에 눕혔다. 부처님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다음날 대중의 모임에서 부처님은 그 일을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저쪽 끝의 작은 움막에 병든 비구를 아느냐?”
“알고 있습니다.”
“그를 간호하는 이가 있느냐?”
“아무도 없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가 평소 남을 간호하거나 도와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비구들이여! 너희들이 건강하지 못하여 병이 났을 때 간호해줄 가족이 옆에 없다. 출가자 서로가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도와주겠느냐? 나의 제자들아! 나를 간호하고 공양하고 싶은 이는 병든 비구를 먼저 살피도록 해라.”

마음을 잘 쓰지 못한 이의 외로운 처지, 그렇지만 부처님 제자들은 서로 돕고 의지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승가가 중생의 귀의처가 될 수 있는 것은 승가 스스로 존귀함을 잃지 않을 때이다. 공동체는 항상 용과 뱀이 어우러지게 마련이다. 절집은 대중 생활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좀 못난 사람은 잘난 사람의 덕을 보고 사는 것이다. 잘나도 결국 부처님 손바닥 안의 일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어느 하나 아프지 않을 수 없듯, 부처님은 누군들 버리겠는가. 승가의 허물을 들춰 스스로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이 잦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금하신 일.

달 앞에서 뒤를 봐도 다시 달 앞이지 않은가!
 
법련사 주지 보경 스님 dharm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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