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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달은 하나에 일천의 강

기자명 법보신문

한가위-섣달그믐 달 달리 보이니
일천강에 비친 달은 같아 보일까

삶을 에워싼 주변 여건을 짧은 시간 단위로 잘라 놓고 보면 항상 변화무쌍하지만, 긴 시간으로 확장해 놓으면 항상 변화가 없이 일정하다. 낮의 해를 기준하면 하루의 변화가 여전히 일정하지만, 밤의 달을 기준하면 하루하루의 변화가 있어 보름을 주기로 기울거나 차는 변화를 느낀다. 그러나 이것을 한해라는 360일로 보면 변화가 아닌 일정한 반복이다.

사람살이의 낭만이나 풍류로 본다면, 짧은 변화가 없는 해의 대낮보다는 기울고 차는 수시의 변화가 있으면서 밝음과 어둠의 빛의 작용이 있는 달이 사람의 동물적 본능에 더 자극을 주는 것 같다. 낮이라는 밝음의 드러남보다는 밤이라는 가림이 숨어 있는 정서에 촉촉한 윤기를 주어 점감의 싹을 키우는 것 같다. 칠흑의 그믐에 깊이 잠들었던 낭만적 정서가 초승을 지나면서 달의 부피의 확장에 따라 점점 부풀기 시작하여 보름의 은은한 밝음으로 자극되어 삶의 여유로운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조개가 진주를 잉태함이 보름달의 밝음을 삼켜서 이루어진다 함은 사람살이와 달의 관계를 은연히 함축시킨 관찰로 흥미 있는 일이다.

오늘은 우리 민족으로서는 최대의 명절이라 하는 추석이다. 8원달의 보름이다. 가을 하늘이 맑다 하여 이 날의 달이 더 밝음으로 일러 오지만 달로서야 더 밝을 것도 없겠다. 그렇지만 이 날을 즐기게 되는 것은 가을의 오곡 풍성이라는 절기의 변수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중국 당나라의 시인 한유(韓愈)의 팔월십오야(八月十五夜)의 시구인 “일년명월금소다(一年明月今宵多, 한해의 밝은 달이 오늘 밤에 많구나)”라 한 것이 시공을 초월한 명시로 알려져 왔다. 올해는 가을 날씨도 좋아 오곡의 풍성함이 배가한 것 같아 달도 더 밝아 보인다.

달이 사람살이의 정서적 운치에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듯이, 사람 마음의 본바탕으로도 매우 절실하게 비유되어 온다. 항시 중천에 둥글게 떠 있어 만물의 생기를 불어넣는 해보다도 달이 왜 더 인간적 심성의 비유 대상이 되는 것인가. 이는 아무래도 항상 밝음으로 들어나기보다는 어둠과 밝음이 반분되어 은은히 가려져 있음이 사람 마음의 은근한 작동의 비유로 적합한 것은 아니었을까.

불교에서도 해가 아닌 달로써 불성의 당체를 비유하고 있다. 어디에나 불성이 존재한다는 원론적 이론이 중천에 떠 있는 하나의 달로 비유된다. 다 같은 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삼라만상으로 분류되리만큼 다른 각각의 처지는 다 같은 달의 밝음을 받고도 받은 처지의 차이에서 밝음의 농도만큼이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달의 본체야 어디에서나 그 밝음의 농도가 다를 수가 없다. 이 달의 밝은 농도에 변화가 없이 비춰지는 곳이 강물이다. 그래서 하나인 불성이 천이나 만으로 갈라지는 물성으로 존재하는 것을, 달이 일천 강에 비추어 나타나는 상황으로 설명하게 된다.

일천 강으로 도장 찍듯이 나타난 달빛의 밝음에 농담(濃淡)의 차이가 있음은 강물의 청탁의 차이이지 달 본체의 농담은 아니다. 여기에서 불성으로 돌아가야 하는 수행정진이 필요하다. 존재하는 불성을 불성으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강물인 나의 처지를 부처의 처지로 다가가야 한다. 추석의 둥근 달을 보면서 이런 결심을 다지게 된다.

사람의 심성을 선과 악으로 양분해 놓고 선으로의 수양을 달의 구름을 걷듯, 또는 때 묻은 거울을 닦듯 하라는 직설적 교계보다는, 달 하나에 일천 강을 대비시키는 비유적 어법이 자연을 아우르는 친근감이 있어 더욱 좋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sosuk050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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