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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노르망디의 한국인 화가

기자명 법보신문

“화폭에 담긴 부처님 통해 한국 알려졌으면”

<사진설명>프랑스에 한국과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는 것이 꿈이라는 몽생미셸의 한국인 불자 화가 박정자 씨. 늘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그림의 영감을 찾는 그녀의 마지막 바램은 몽생미셸 근처에 한국 문화 센터를 건립하는 것이다.

내가 태어난 ‘폰토송’이라는 곳은 그 유명한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으로 노르망디와 브르따뉴의 두 주(州)가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다. 약 1000년 전에 세워진 천주교인들의 성지(聖地) 몽생미셸은 유럽에서 가장 큰 조수간만(潮水干滿)의 차이를 보여주는 바위 섬 한가운데 위치한 지형적 특징 때문에 더더욱 유명하다. 유네스코에서 문화 유적지로 지정한 이 곳은 프랑스에서 에펠탑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유명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 수도원은 10세기경 수도사들이 소박한 뗏목을 타고 영국 해협으로 항해하여 그 곳에 위치한 크고 작은 섬들에서 가져온 돌들을 재료로 하여 건축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짧은 생활을 마치고 작년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 나는 한 재능 있는 한국인 화가가 프랑스인 남편과 함께 내가 태어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 전 내가 평생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로 전시회를 여는 문제를 상의하고자 폰토송을 찾아 그 곳 시장(市長)을 만날 일이 있었다. 폰토송 시장(市長)은 한 한국인 화가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가 이 지역에서 매우 유명한 분이라고 칭찬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그녀를 방문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었다. 폰토송 시내에서 몽생미셸 방향으로 차를 운전하고 가다 보니 돌로 만들어진 큰 집과 그 앞에 나란히 걸린 태극기와 프랑스 국기를 볼 수 있었다. 한국 전통 가옥 모양으로 만들어진 간판에는 “동양화, 박정자 전시회” 라고 쓰여있었다.

프랑스 폰토송의 불자 부부

화가 박정자씨의 남편이신 로제 르베리에(Roger Leverrier)씨가 문을 열고 나를 맞이했다. 70대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르베리에씨는 나이와는 달리 활력이 넘치는 듯 했다. 그는 무려 45년간 한국에서 살았으며 한국 외국어 대학교에서 불어과 교수로 일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맨 처음 천주교 선교사로서 한국에 갔다고 했다. 하지만 후에 한국 불교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본격적으로 불교를 공부하고자 결심하고 동국 대학교에서 불교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았다고 했다.

그 때 모습을 드러낸 박정자씨는 나에게 커피를 대접했다. 너무나도 예의 바르고 신중하면서도 수줍어하는 모습의 그녀는 65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젊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 가족 모두가 불자였으며 대학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고 했다. 한국에서 생활하던 그들은 1998년 프랑스로 보금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 곳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아쉽게 그 곳을 떠났다. 그리고 몇 일전 법보신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다시 그들의 집을 찾았다.

미술로 알리는 우리 전통

다시 한국인 화가의 집에 들어서자 그녀와 남편 분이 큰 미소를 머금고 나를 환영해주었다. 그 때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바닥에 잔뜩 쌓여있는 상자들이었다. 그녀에 말에 따르자면 “한국화가의 노르망디 여정”이라는 제목을 달고 그녀의 화풍을 담은 책이 출간되었다고 한다. 방금 인쇄를 마친 책들이 도착한 것이었다. 그녀가 직접 만든 맛있는 레몬 케익을 맛보며 나는 박정자씨와 남편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938년에 태어난 박정자씨는 이화여대 미술대학에서 학업을 쌓아가며 일봉 박정자로써 알려지기 시작했다. 학업을 마친 그녀는 13년간 조선 호텔 예술부에서 근무했으며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최고의 모범 직원”으로 선정되어 ‘세계 일주’라는 부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그 세계 여행은 그녀로 하여금 프랑스를 포함하여 다른 나라가 지닌 다른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는 계기를 마련했다.

1998년 프랑스인 남편과 프랑스에 정착한 그녀는 한국의 미술을 프랑스에 알리기로 결심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중국의 그림이나 일본의 화풍에 대하여서는 잘 알지만 한국의 미술에 관하여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프랑스의 이러한 상황이 그녀를 슬프게 했고 그녀는 프랑스 인들로 하여금 한국의 미술과 예술은 중국이나 일본의 그것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매번 애써 알려야만 했다고 한다. “부끄럽지만 프랑스에서는 내가 한국 미술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지요”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불교의 역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박정자씨는 불교는 단연코 그녀에게 가장 큰 영감을 불러다 주며 그녀가 풍경의 진수 혹은 “모든 것이 결국 하나고 우리도 결국 하나”라는 덧없음의 철학을 화폭에 담아내고자 할 때 커다란 힘을 가져다 준다고 했다.” 그녀는 언제나 부처님의 말씀대로 또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살아가고자 애쓴다고 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과 더불어 언제나 겸손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부처님께 그녀의 소망을 빌거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려운 일이 있거나 힘든 작업 세계에 처해도 그녀 스스로 해결하려고 애쓰며 그저 좋은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한다고 했다.

박정자씨의 앞으로의 희망이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녀에 말 따르면 그녀의 스승 중 한 분이 그녀가 꿈 꾸는 것의 십 분의 일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어차피 십 분의 일이라면 보다 큰 꿈을 꾸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한국인 화가로서 인정을 받고 싶어요. 무엇보다도 프랑스에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고요”. 그녀의 남편말에 따르자면 프랑스 인과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경제적, 정치적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고 인식한다는 점이다. “완전히 잘못된 시각이지요” 그가 말했다. “단지 문화적 교류만이 오래 지속되는 법이죠. 정치적 혹은 경제적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하고 불안정하기 마련이에요. 반면 문화적 유대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뒤바뀌지 않지요”

한국 문화 센터 건립이 꿈

<사진설명>알랭 베르디에씨와 자리를 함께 한 박정자 씨 부부. 왼쪽부터 박정자 씨, 알랭 베르디에 씨, 로제 르베리에 씨.

몽생미셸을 방문하기 위해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은 길가에 걸린 커다란 태극기를 보고 꽤나 놀란다고 한다. 그들 모두 박정자씨가 그녀의 아름다운 미술 작품들을 통해 이국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애쓰는 사실에 매우 감동받는다고 한다. 두분 모두가 공통적으로 꿈꾸고 있는 것은 몽생미셸 근처에 한국 문화 센터를 건립하는 것이다. 이 한국 문화 센터를 통해 한국 미술과 문화가 잘 전시되어야 하고 한국 불교의 전통이 알려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실 이러한 그들의 소망은 거의 이루어질 뻔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 당시 한 한국의 건축가가 센터를 건립할 설계도까지 완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1997년 한국에 큰 경제적 위기가 몰아 닥치며 후원을 약속했던 대기업들이 그 계획을 취소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무산되고 말았다.

오늘날, 박정자씨와 로제 르베리에씨는 프랑스에 한국의 이미지를 심으려는 그들의 노력이 아무런 결실도 없이 끝나버릴 까봐 걱정하고 있다.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 한국 미술과 문화를 홍보하는 그 노력이 그저 사라지고 말까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어떤 기업이 혹은 개인이 이 계획을 후원해 그들의 커다란 꿈이 실현되길 바라고 있다. 몽생미셸은 페루의 마츄피츄, 그리고 인도의 타지마할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다. 이러한 몽생미셸 근처에 한국 문화 센터가 세워진다면 한국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언젠가 프랑스에서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는 대사 역할을 하는 이 노부부의 꿈과 이상과 염원이 실현되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국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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