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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희망은 있는가

기자명 법보신문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대체로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는 것이 피곤하고 힘들다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워서 힘드는 것은 아니다. 그럼 무엇이 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일까? 미래를 예측할 수 없도록 우리 사회가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교육, 경제, 정치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가 도덕적으로 해이해 져 있다는 것이다. 왜 이토록 우리 사회가 살기 힘든 사회가 되고 말았을까? 우리 사회에 희망을 걸어도 좋은가?다른 모든 것은 두고서라도, 우리 사회의 도덕적인 해이와 사회적 불안정을 거론할 때마다 그 이유를 학자들은 6.25 한국전쟁과 가난을 들먹인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에게 가장 귀한 것은 생명이다. 일단 목숨을 건지고 보자는 생각에서 수단과 방법을 헤아리지 않는다.

전시에는 생존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전쟁 생활의 경험이 전쟁 후에까지 몸에 배어 이게 습관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는 학자들에게 나는 전쟁을 경험했던 다른 나라를 보라고 말한다. 독일도, 일본도 전쟁을 겪었지만 그들 사회는 우리와 같이 이토록 무규범적이거나 비도덕적이지는 않다 .

아니면, 우리 사회의 경제적인 빈곤, 즉 가난에다 그 이유를 돌리기도 한다. 50, 60년대 우리 나라 국민의 절대빈곤에 허덕이고 있었던 사람이 국민전체의 40%나 되었다. 곳집이 차야 예의를 안다는 말이 있듯이 생활고에 허덕이다보면 예의도 범절도 뒷전이다. 그러나 이젠 절대빈곤이 10%미만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먹고사는 것 가지고 아옹다옹하는 일은 없겠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는 생존투쟁처럼 허겁지겁 사는 사람이 많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내리기도 전에 밀치고 들어오는 사람들, 문을 열고 나가면서 뒷사람을 생각해서 문을 잡아주면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이 황급히 빠져나가는 사람들, 좁은 길에서 서로 부딪쳐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다. 길거리나 아파트의 쓰레기통에 자기 집 쓰레기를 매달아 놓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은 나 혼자만이라도 살아야겠다고 몸부림치는 것과 다를 바 있을까? 어찌 보면 우리 사회는 “만인이 만인에 대해서 투쟁”이라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의 이런 문제들이 서양의 개인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서양사회는 철저히 개인주의 위에서 작동하고 있는 사회이다. 개인주의나 이기주의가 모두 나를 중심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다르다.

개인주의가 내 이익을 실현하는 동안,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기주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상관없이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보다는 이기주의에 가까운 것 같아서 이런 분위기를 걱정스럽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모두들 자신이 이런 상황의 피해자라고 말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한다. 즉 가해불감증에 걸려 있다. 동시에 피해불감증에 길들여지고 있다. 모두가 피해자라고 느끼고 있는 한 우리 사회는 개선의 여지가 없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있고 희망을 걸어도 좋을 사회이다. 모든 것이 내게서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사회가 개선 가능한 사회이다.

이기주의를 넘어서 개인주의에만 도달해도 우리 사회는 발전을 이루었다 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부모의 교육을 받고 자라는 일본의 아이들이 있다. “남에게 기대지 말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는 독일의 아이들이 있다.

“남보다 뒤지지 않게 열심히 공부하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는 우리 나라의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서, 다른 사람의 처지와 형편을 배려하고 남을 생각해 주고,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더욱 힘들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며, 무엇을 가르치고 있으며, 어떤 모범을 보이고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 발전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박순영(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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