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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일합리상분 1

기자명 법보신문

삼천대천 세계는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

<사진설명>경주 불국사 무설전의 영산회상도.

‘일합리상(一合理相)’의 뜻은 ‘하나로 합쳐진 모습은 이치의 모습일 뿐이다’ 라는 것이며, ‘일합리상분(一合理相分)’의 주요내용은 법신과 화신이 하나인지 둘인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부수어 티끌로 만든 뒤 세계와 티끌이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 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때, 같다고 해도 틀리고 다르다고 해도 틀린 것처럼 모습이나 이름은 단지 개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법신이니 화신이니 하는 말도 따로 떼어 생각할 것이 아니고 하나로 규정지어 생각할 것도 아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須菩提 若善男子善女人 以三千大千世界 碎爲微塵 於意云何 是微塵衆 寧爲多不 甚多世尊 何以故 若是微塵衆 實有者 佛 卽不說是微塵衆 所以者何 佛說微塵衆 卽非微塵衆 是名微塵衆

“수보리여! 만약 선남자 ·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부수어 티끌로 만들면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이 티끌들이 많겠는가?”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만약 이 티끌들이 진실로 있다면 부처님께서 곧 티끌들이라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니, 그 까닭인즉 부처님께서 설하신 티끌들은 곧 티끌들이 아니고, 그 이름이 단지 티끌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보충설명〉 티끌이란 것이 진실로 있다면 부처님께서 ‘티끌’이라 명명할 것도 없이 티끌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티끌이란 것들을 부수고 부수면 모습은 없고 이름만 남게 됩니다. 그런 티끌들이 모인 이 세계도 결국은 실체가 없는 것이며 단지 ‘세계’라는 이름만 남게 됩니다.

{六祖}佛說三千大千世界 以喩一一衆生性上 妄念微塵之數 如三千大千世界中所有微塵 一切衆生性上 妄念微塵 卽非微塵 聞經悟道 覺慧常照 趣向菩提 念念不住 常在淸淨 如是淸淨微塵 是名微塵衆也

부처님께서 삼천대천세계를 말씀하신 것은, 낱낱 중생의 성품 위에 망념의 티끌이 삼천대천세계 가운데에 있는 티끌 수와 같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의 성품에 존재하는 망념의 티끌이 곧 티끌이 아니라고 말씀한 것은, 경을 듣고 도를 깨달으면 깨달음의 지혜가 항상 비추어서 보리에 나아가게 하고, 생각 생각에 머무르지 않아 항상 청정하게 있으므로, 이 청정한 티끌이 그냥 티끌이란 이름뿐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冶父}若不入水 爭見長人

만일 물에 들어가지 않으면 어찌 어르신을 뵙겠는가?

〈보충설명1〉 당나라 때 신수와 혜안스님은 그 법력을 중원 천하에 떨치고 있었습니다. 측천무후는 누가 더 법력이 높은지 시험하고 난 뒤에 두 분 가운데서 국사를 뽑으려 했습니다. 궁리 끝에 무후는 두 분에게 목욕 할 수 있도록 준비 시켰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시녀들을 시켜서 목욕시중을 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신수대사가 물에 들어갔을 때는 목욕물이 넘쳤고, 혜안스님이 들어갔을 때는 물이 그대로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시녀들에게 전해들은 측천무후는 다음과 같이 찬탄했습니다. “물에 들어감으로 인하여 진짜도인을 알게 되었도다!” 그리하여 미인을 보고도 부동심(不動心)을 잃지 않은 혜안을 국사로 모셨습니다. 이 고사를 인용하여 야보스님은, 티끌이 곧 티끌이 아니라는 부처님 말씀에 대해 고일착 합니다. 즉, 현실에 존재하는 이 몸뚱이 안에 법신과 화신이 있다는 말을 끌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보충설명2〉 장인(長人)은 거룩한 어른, 위대한 어른을 일컫는 말입니다.

一塵起磨空 碎抹三千數莫窮 野老不能收拾得 任敎隨雨又隨風

한 티끌 겨우 일어 허공을 가리는데, 삼천대천세계의 티끌은 세어서 무엇 하리. 들판의 늙은이 모두 수습할 수 없으니,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맡겨버리도다.

〈보충설명〉 세간의 모습, 이름, 숫자, 티끌 같은 망념, 번뇌 등등은 진리에 머무르는 수행자를 전혀 얽어매지 못합니다. 수행자는 이런 것들이 있어도 집착이 없고 없어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世尊 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 卽非世界 是名世界 何以故 若世界 實有者 卽是一合相 如來說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須菩提 一合相者 卽是不可說 但凡夫之人 貪着其事

“세존이시여! 여래가 설한 바 삼천대천세계는 진실한 세계가 아니요 그냥 이름 붙여 세계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세계가 진실로 있는 것이라면 곧 일합상(一合相, 하나로 합해진 모습)이니, 여래가 설한 일합상은 진실로 존재하는 일합상이 아니고 이름만 일합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일합상이란 가치를 매겨 말할 수 없는 것인데 다만 범부가 그 것에 탐하고 집착하느니라.”

〈보충설명〉 이 세계는 부수면 티끌이 되고 티끌도 더 부수어 바람에 날아가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실체가 없습니다. 역으로 티끌을 합해 거대하게 한 덩어리로 만든다 해도 이 역시 집착할 만한 실상(實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끌이 모인 덩어리에 대해 범부들은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거나 욕심낼 만한 것이라고 집착합니다.

{六祖}三千者 約理而言 卽貪嗔癡妄念 各具一千數也 心爲善惡之本 能作凡作聖 動靜 不可測度 廣大無邊 故名大千世界 心中明了 莫過悲智二法 由此二法 而得菩提 說一合相者 心有所得故 卽非一合相 心無所得 是名一合相 一合相者 不壞假名 而談實相 由悲智二法 成就佛果菩提 說不可盡 妙不可言 凡夫之人 貪着文字事業 不行悲智二法 而求無上菩提 何由可得

삼천(三千)이란 것은 이치를 잡아 말한 것이니, 곧 탐진치(貪嗔癡) 망념이 각각 일 천의 수를 갖추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마음은 선악의 근본이므로 능히 범부도 만들고 성인도 만들며 움직이고 고요한 것이 헤아릴 수 없이 광대무변하기 때문에 대천세계라 이름 붙인 것이다. 마음 가운데 명료한 것은 자비와 지혜의 두 법을 지나치는 것이 없으니 이 두 법을 말미암아 보리를 얻는 것이다.

일합상에 관한 말씀은, 마음에 얻을 바가 있다고 집착하므로 일합상이 아니라 말씀하신 것이고, 마음에 얻을 바가 없는 것이므로 이름이 일합상일 뿐이라 하신 것이니, 일합상은 빌린 이름을 허물지 않고 실상을 말씀하신 것이다. 자비와 지혜의 두 법으로 말미암아 부처의 지위와 보리를 성취하지만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고 묘함도 말할 수 없거늘, 범부는 문자와 행위에 탐착하여 자비와 지혜의 두 법을 행하지 않으면서 위없는 보리를 구하려하니, 무엇을 말미암아 깨달음을 얻겠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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